성서해석은 학자들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성경학자들은 아담의 탄생 년도를 예수탄생 전 4173년으로 본다. 그렇다면 하느님이 창조한 아담은 태양력으로 계산하면 6,193년 전이었으니 200만년 전 지구상에 나타난 인류의 시조는 누가 만들었을까? 신의 정체성을 놓고도 예수가 신인가 아니면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인가를 놓고도 기독교와 이슬람교로 갈라진다. 같은 유일신을 믿으면서도 성서와 코란이 다르다. 기독교는 3위 일체 신인 하느님을 믿는데 반해 이슬람교는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다”고 믿는다.
최근 코르나 19의 진원지로 국민의 적이 된 신천지교는 개신교와 같은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천국’의 해석을 놓고 앙숙의 관계다. 기독교는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다음 죽은 사람의 영혼이 종말에 있을 부활을 기다리며 안식을 취하는 곳’을 천국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신천지교는 사람의 육체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육체영생”을 믿는다. 특히 신천지교는 이만희 교주가 창립한 이후 "요한계시록을 모르면 천국을 못 간다"고 믿는다.
한겨레신문 고병섭논설위원은 3월 12일자 「아침 햇발」에 성서를 재미있게 풀이해 놓고 있다. 그는 성서의 12지파와 예수의 12제자는 동아시아에서 12간지의 12와 같이 상징을 뜻하는 것이라며 심판의 날에 신천지 신도 14만4000명이 구원받아 왕과 같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주장도 같은맥락으로 풀이했다. 신천지가 주장하는 천국이란 희랍어의 ‘바실레이아’(basileia) 즉 ‘왕국’ 또는 ‘통치·지배·질서’를 상징하는 ‘새로운 세상의 질서’로 풀이하고 있다.
과학의 시각에서 보면 종교란 황당하기 짝이 없다. 종교인들은 무속신앙을 이단이라며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하지만 자연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무속의 기복신앙이나 그들의 기도가 다르지 않다. 기독교의 3위일체 신은 전지전능의 신이다. 코르나 19가 온 지구를 뒤덮고 수많은 교인들까지 죽어가고 있는데 전능의 신에게 코르나가 물러가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면 코르나 따위야 금방 물리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신천지교나 기독교는 이런 문제를 아전인수격으로 ‘하느님의 뜻’이라고 해석하는가? 이것이 과학과 신앙의 차이다.
성서 무오류설만 해도 그렇다. 성서 무오설은 인류 구원을 위한 복음을 담은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는 보편교회 전통의 주요 개념이다. 초대교회부터 성경이 구원의 지침으로 완전하고 무오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는 원본이 될 성경은 불행하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약성경의 경우 5600개가 넘는 그리스어 성경 사본들(전체 혹은 부분)과 1만 개가 넘는 라틴어 사본, 그리고 500개 이상의 타 언어 성경 사본이다. 가장 오래된 완성본 신약성경 'Codex Sinaiticus'을 비교해보면 다양한 사본들 사이의 차이점이 20만 에서 30만 개가량으로 추정된다. 이럴 두고 무오류설의 주장을 믿을 수 있는가?
신약성서 중 4복음서 중 가장 일찍 기록된 책이 마가복음이다. 4복음서의 원전 격인 마가복음이 기록된 연도는 예수 사후 50년이다. 마태와 누가복음이 예수 사후 60~70년경, 누가복음 61~2년경, 요한복은 90년경이다. 녹취도 못하던 시절, 예수의 말씀이나 행적은 구전(口傳)이라는 수단이 유일하다. 또 신약시대에는 복음서만 해도 무려 50개가 넘는데 대부분의 기독교 교파들은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정경으로 채택된 4권의 복음서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다. 4복음서도 마태복음 5장 3절의 ‘마음이 가난한자’와 누가복음 6장 20절의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두고 수많은 목회자들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오늘날 종교인들은 기도를 하면 신이 들어 주신다고 믿는다. 수학능력고사를 앞둔 불교신자의 100일기도나 기독교의 철야기도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심지어 헌금의 액수에 따라 기도의 효험이 더 있을 것이라고 믿는 신자까지 있다. 기독교의 예수가 가르쳐준 주기도문은 ‘일용할 양식에 감사’와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는 일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결의가 아닌가? 이를 오역해 구복이나 기복으로 바뀐 기도를 그들의 신은 정말 들어 주실까? 더구나 불교는 무신론이다. 3법인 4성제로 연기를 가르친 부처님은 불제자들에게 부처가 되는 길을 가르쳤지 100일기도를 하면 소원 성취한다는 주술을 가르친 일은 없다. 오늘의 종교인들은 마치 기도를 많이 하는 신도가 ‘신령한 사람’으로 믿는 ‘은밀한 욕망’을 기도라고 해석하는 "영적 탈선"을 정당화 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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