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올라가고 수요가 적으면 가격이 내려간다.” 맞는 얘길까? 경제원론에 나오는 이론이니까 틀릴 리가 없다.
“오른편 뺨을 때리거든 왼뺨을 내 놓아라” 이 역시 성경에 나오는 말씀이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리로 받아들인다.
“교육의 질은 교원의 질을 능가하지 못한다.” 교사라면 교사 양성과정에서 귀가 이프도록 듣는 얘기다. 교육을 말하는 사람들이라면 하나같이 금과옥조로 믿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말의 성찬! 바야흐로 말찬치 시대다. 선거를 앞두고 나오는 구호들을 보면 금방 좋은 세상이 될 것 같다. 말로 천양 빚을 갚기도 하지만 말이 이데올로기가 되어 멀쩡한 사람이 바보가 되기도 한다. 위의 말도 액면대로 믿어도 좋을까?
▲ 시민사회인사 2398명은 27일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전교조 교사 해직 방침 철회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올라가야하는 데 시장에서 공급자가 제한되어 있어 공급되는 상품의 수량을 조절하는 상황에서는 원론적이 수요와 공급이론은 옳지 않다. 수요자가 아니라 공급자가 가격을 조정하는 독과점시장에서는 수요가 가격을 좌우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두 번째 명제를 보자. 신약성서의 산상보훈에 나오는 이 가르침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갚으라.’는 비유적인 가르침으로 오른뺨을 때려놓고도 분이 풀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같이 뺨을 때리는 똑같은 사람이 되지 말고 왼뺨을 맞아줘 회개하도록 만들라는 성인다운 가르침이다. 그런데 만약 왼뺨을 다시 맞아줬는데 가해자가 전혀 뉘우치지 않고 다시 오른쪽, 왼쪽 뺨을 때린다면 계속 맞고 있어야 하나? 도덕도 양심도 다 무너진 사회에서 일방적 희생을 강요한다는 아가페사랑은 현실적이지도 못하고 공정하지도 못하다.
마지막 명제는 어떤가? 사람들은 의아해 한다. ‘왜 오늘날은 예수님 같은 분 석가모니 같은 분, 공자님 같은 위대한 스승은 없는가?’라고……. 만약 오늘날 같은 시대 예수님이나 석가모니 같은 분이 태어났다면 옛날의 그분들 같은 위대한 스승이 될 수 있을까? 만약 예수님 같은, 석가모니 같은 스승이 오늘날 학교 교사가 됐다면 옛날같이 그런 존경과 추앙을 받는 교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예수님이나 석가모니부처님을 욕보이자고 한 말이 아니다. ‘교육의 질은 교원의 질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위의 사례와 같이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전부 옳은 말은 아니다. 왜 그럴까? 교실로 들어가 보자. 우리나라 교실에는 교과서라는 성서가 있다.
물론 과거처럼 모든 교과서가 국정교과서는 아니다. 국어와 국사, 도덕과 같은 과목이외는 검인정교과서로 교사의 선택권이 인정된다. 그러나 도구교과인 영어를 비롯한 일부교과서 외에는 수능이라는 과목이 버티고 있어 교과서는 국정이든, 검인정이든, 자유발행제든 다를 게 없다.
교실에서 교사의 자율권이 어느 정도 인정되는가? 진도를 나가기 전에 세상사는 얘기를 5분이라도 넘기면 “선생님 공부합시다.”라는 범생이의 서슬 퍼런 질타가 쏟아진다. 아무리 위대한 철학과 세상을 통찰하는 안목을 가진 교사라도 우리나라 교실에는 그 능력을 발휘할 여백이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교과서 뒤에는 교육과정이라는 괴물(?)이 버티고 있어 ‘한 시간은 50분(초등40분, 중학교45분)이다. 국어는 일 년에 몇 시간 수학은 몇 시간, 영어는 몇 시간, 1년간 수업시수는 며칠이어야 한다.' 는 교육과정이 있다. 물론 교과서 외에는 수업시간에 교사가 만든 교재라도 들고 들어가면 어김없이 징계를 당하기 마련이다.
교원평가(교원능력개발평가)를 하겠다고 난리다. 결국 행정의 그물망에 잡히지 않은 교실 수업까지 통제하지 않고서는 마음을 놓지 못하겠다는 신자유주의 논리가 교실까지 침투하고 있는 것이다. 말로는 평가와 성과급제를 연계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결국은 가고 말 성과급 임금제를 안고 반대하는 세력들을 초토화시키며 올해부터 초중고 모든 학교에 전면시행에 들어간 것이다.
교원평가로 과연 교육의 질이 향상되고 사교육비도 줄어들고 공교육도 살아날까? 만약 교원평가로 교원의 자질이 향상되고 공교육이 살아난다면 이른 반대하는 교원단체나 교사는 ‘국민의 이름으로 처벌 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도 하고 있는 교원군무평가를 두고 도입하겠다는 교원평가를 액면대로 받아들여도 좋을까?
자질미달교사를 추방해 교육을 살린다는 교원 평가 뒤에는 ‘노동 관리와 통제’라는 신자유주의논리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믾지 않다. ‘평가를 교육의 일부로 보는가? 아니면 통제(서열, 분류)의 수단으로 보는가?’의 여부도 가리지 않고 강행할 경우 평가 결과란 ‘집단 안에서 상대적 지위만을 알려줄 뿐, 교육의 성과를 질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교육은 그 자체가 사회적 과정이다. ‘집단적 노동과정을 통해 장기간에 걸쳐 결과가 나타나는 인간의 집단적 실천행위’(진보교육37호)를 개별화시켜 서열을 매기면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까? 동반자요 조력자인 동료교사를 상호평가관계로 왜곡시켜 서열매기면 교육의 질이 향상된다고 믿어도 좋을까?
교육과학부가 추진하겠다는 교원능력개발평가는 ’수업평가를 통해 개별교사자신의 단점(고쳐야할 점)을 파악하여 개선‘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교원의 고쳐야할 점이 동료교사나 학부모, 학생들로부터 들추어내 ’우수교사와 무능교사‘로 분류하면 교원의 전문성 신장에 기여할 수 있는가? 이러한 평가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무결점으로 형식화되고 결국은 ’실속 없는 보여주기 수업’으로 변질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학생의 학업성취도라는 결과물로 교원의 자질을 가리겠다는 의도는 성공할 수 없다. 수업을 형식적이고 기술적인 차원에서 형식적인 평가로 서열매긴다는 것은 교직사회를 황폐화시킬뿐만 아니라 교육은 없고 학업성취도경쟁만 부추기게 된다. 평가로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는 발상도 그렇거니와 교원평가제는 교육평가제가 아니라 노동정책의 일환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원론적으로 혹은 학부모의 이해관계나 정서에 편성해 도입하는 교원평가제는 결과적으로 그 피해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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