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는 금과옥조인가? 진리인가? 진실만이 담겨 있는가? 초임 시절...생각하면 지금도 쓴 웃음이 나온다.
나는 교직에 첫발을 딛이면서 '교과서는 진실하고 그 교과서를 충실하게 가르치는게 교사의 책임이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순진한 교사였던 당시의 생각으로는 '교사=교과서를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믿었고 교과서를 열심이 잘 가르치는 사람이 교사락 믿었다. 이런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은 유신정권시절 윤리교과서를 가르치면서 부터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교과서를 보면서 이렇게 가르치면 통일이 아니라 분단이 계속되고 북에 대해 증오심만 기르게 된다는 것을 알고난 후 부터다.
이런 '국민윤리' 교과서를 가르치면서 수업시간 중에 우연히 "교과서가 잘못됐다"는 말이 나왔고 학생들 중에 똑똑한(?) 학생 하나가 "선생님이 책보다 더 똑똑합니까?"라고 항의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2004년 9월. 내가 가르치던 국민윤리라는 교과서에 정확하게 어떤 내용이 적혀 있었는지는 확실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북한의 좋은 점은 눈닦고 찾아봐도 없고 김일성에 대한 증오심과 그들의 호전성에 치를 떨도록 만든 내용 일색이었다.
당시 오마이뉴스에 썼던 글을 읽으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똑똑한가 덜 똑똑한가 문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옳은지 그른 지에 관한 문제"라고 했던 대답.. 아마 지금도 학생이 이런 질문을 한다면 똑같은 대답이 나올 수밖에 더 있올까?
교과서란 학습목표달성을 위한 참고도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교사는 교과서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요, "교육이란 교과서를 배우는 것"이라는공식이 교단에 공식처럼 굳어진 것 같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인생의 성패를 결정하는 수능이란 관문이 기다리고 있기에 교과서는 금과옥조가 되고 그 교과서를 얼마나 잘 외워 점수 몇 점 더 받게 하는 가의 여부에 따라 훌륭한 교사가 가려지기 때문이다.
교사는 교과서에 담긴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제자들의 삶을 안내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전문 야의 지식은 물론이요, 제자가 성인이 된 후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안내해야할 멘토이기도 하다. 입으로만 아니라 스스로 실천을 통해 모범을 보여줘야 하는 게 교사다. 인문계 교사라면 사회를, 자연계 교사라면 자연의 법칙성과 진리를 ....
현실은 어떤가?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아직도 '교사는 교과서를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공식은 그대로다. 언제쯤 우리는 교과서는 교사가 교육목표닰ㅇ을 위한 자료가 되어 교과서보다 더 똑똑한 교사가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세상이 올 수 있을까?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오래 전에 썼던 글을 여기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2004년 09월 07일 (바로가기▶) "선생님이 책보다 더 똑똑합니까?"라는 주제로 오마이뉴스에 썼던 글입니다.
"선생님이 책보다 더 똑똑합니까?"
[주장]세계화 논리를 정당화하는 사회 교과서 문제있다
2004.09.07 김용택(knms1)
20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 그 때 사회교사로서 반공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윤리 과목을 가르쳤던 일이 있다.
'동족을 적'으로 표현한 윤리 과목을 가르치면서 "이런 내용을 배우면 통일이 아니라 분단상황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며 "교과서가 너무 잘못된 것 같다"고 했더니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일어나 "선생님이 책보다 더 똑똑합니까?"라고 항의했다.
다분히 반항적인 질문에 마음 속으로 괘씸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건 더 똑똑한가, 덜 또똑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옳은지 그른 지에 대한 문제"라고 어설픈 대답을 했던 기억이 난다.
교과서도 사람이 만든 거니까 완전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민족의 문제나 통일의 문제 혹은 가치관의 문제 따위는 객관적인 자료와 검증을 거쳐 학생들이 가치내면화 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한다.
며칠 전 EBS 교육방송 'NEW 포트리스 사회 <1학기>'를 듣다가 깜짝 놀랐다. EBS 사회, 33강 '국민경제와 경제성장' 단원을 강의하던 강사가 문제 6번 풀이 중 '우리 나라가 세계화 시대에 개선해야 할 사항'을 설명하며 "우리 나라가 선진국과 비교할 때 규제를 너무 많이 하고 있다. 국제경쟁사회에서 이기고 경제발전을 위해 정부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강사가 강의를 잘못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교과서를 확인하는 순간 그게 아니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고등학교 사회(대한교과서주식회사) 교과서 224페이지 '04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과 경제성장' 단원을 보면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어느 수준까지는 긍정적인 효과를 냈지만… 경제의 곳곳에서 부정적인 효과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면서 규제개혁의 모범국 뉴질랜드를 소개하고 있다.
'1984년 이전 뉴질랜드는 경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경제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가장 심한 나라였다'고 소개하고 '1984년 이후 지구상의 어떤 나라보다 획기적인 경제 자유화 개혁을 단행하여 지금은 가장 규제가 없는 국가로… 이전보다 더 큰 번영과 안정을 누리고 있다'고 적고 있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자유방임주의 경제가 수정자본주의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자본의 논리는 결국 공해와 독점 그리고 공공재 생산부족과 같은 시장실패를 초래 한다.
사회주의의 확산으로 위기를 느낀 자본주의 진영에서는 더 이상 경제를 시장의 논리에 맡겨둘 경우 도래할 수 있는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수정자본주의를 도입한다.
시장질서에 맡겨 둔 경제를 정부가 개입해 복지국가를 실현하자는 것이 적극정부요, 행정국가다. 반면 복지사회를 지향하는 이러한 수정자본주의는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다시 경제를 시장의 질서에 맡기자는 것이 규제완화요, 신자유주의다.
'정부규제를 완화하자'는 것은 복지가 아닌 자본의 논리에 충실하자는 뜻이다. '민영화, 규제완화, 경쟁, 효율성' 등의 논리는 공공성이나 기회균등을 포기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시장개방에 대해 나라 안에서는 물론, 국가간에도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반세계화 목소리가 만만찮다.
사태가 이러한데도 국민공통기본교과인 고등학교 사회교과에 규제완화가 절대가치인양 적고 있는 것은 성장과정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편향된 이념을 심어 주는 것과 같다. 마치 반공 이데올로기로 체제 우월성을 홍보하던 과거의 윤리 교과서처럼, 세계화라는 강자의 논리를 교과서를 통해 정당화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혹자는 사회 교과서가 국정에서 검인정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할지 모른다. 대한 교과서(주)는 국정교과서를 발행하던 회사니까 그렇게 기술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회 교과가 7차교육과정에서 국정교과서가 아닌 검인정 교과서로 바뀌었으나 대부분의 검인정 교과서를 보면 미리 약속이나 한 듯 국정교과서와 목차까지 같다.
'교과서를 금과옥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은 장학지도 때 귀가 아프도록 듣는 말이다. 사실, 교육과정보다 일류대학의 전형요강이 고등학교 교육의 내용을 좌우하는 현실에서 교과서의 내용이 다양화하기를 기대하기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사회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특정가치를 주입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자기 생각을 갖도록 안내해야 한다. 강자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교과서를 하루 빨리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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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