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교육을 일컬어 의도적인 교육이라고 한다.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교육과정(敎育課程)에 따라 교육하고 목적달성 여부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교육은 의도적인 교육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인간을 실험대상으로 하는 중요한 범죄다. 교육에 시행착오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인간은 수단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2016년 전국의 모든 중학생을 대상으로 시행할 자유학기제 얘기다.
‘자유학기제’란 ‘공부와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학생이 스스로 미래를 탐색하고 진로를 설계할 수 있도록, 중학교 한 개 학기동안 종이에 쓰는 지필시험을 보지 않으며, 교과별 특성에 맞는 체험과 참여 위주의 수업’을 말한다. 자유학기제는 ‘참고서가 없어도 교과서만 있으면 충분한 학습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교과서 완결학습체제'라고 홍보하고 있다.
자유학기제는 박근혜정부의 교육공약 핵심이다. 지난 해 2학기와 올 1학기에 각각 42개, 그리고 40개 연구시범학교를 운영하고, 2014~2015년부터 학교에서 선택 시행, 2016년부터는 모든 중학교에 자유학기제를 전면 시행하겠다는 게 교육부의 방침이다. 자유학기제의 핵심적인 골자는 ‘적성에 맞는 자기계발 및 인성 함양, 만족감 높은 행복한 학교생활, 공교육 신뢰회복 및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박근혜정부의 자유학기제를 보면 이명박 정부에서 국책사업으로 추진한 4대강과 해외자원 개발 사업이 생각난다. 실패할 것이 뻔한 정책을 어용교수와 관료들을 동원 억지논리로 밀어붙이면 자유학기제와 같은 이상이 정착할 수 있을까? 원론적으로 자유학기제란 쌍수로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자유학기제가 100%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1972년 박정희정권 때 시행한 책가방 없는 날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새벽같이 등교해 2.0m² 공간에 하루 10시간 넘게 체형에도 맞지 않는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공부하는 학생들을 생각하면 한 학기동안 학생들이 ‘공부와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학생 스스로가 미래를 탐색하고 진로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어쩌면 꿈같은 얘기다. 여기다 시험까지 보지 않는다는 게 아닌가? 점수 몇 점 더 받기 위해 혈안이 된 교실에서 벗어난다는 데 얼마나 설레이는 일이며 어떤 학생이나 학부모가 반대하겠는가?
그런데 그게 가능하다는 애기다. 지난 책가방 없는 날의 경험에 비추어 우선을 갈 곳이 없다. 도시도 그렇지만 시골이라는 곳이 자신의 꿈을 키울 체험장이 어디 있을까? 갈 곳이라고는 주민자치센터나 소방서와 파출소가 전부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학기 내내 책가방도 없이 등교애 어떤 프로그램으로 진로직업체험이 가능하겠는가? 도시도 어려움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중학교 학생들이 한꺼번에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 그들을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인프라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을까?
뿐만 아니다. 어차피 고등학교는 영재학교에서부터 특목고와 같이 서열화되어 있는데 한 학기동안 길거리를 방황하다 돌아올 수 있는 여유가 있는가? 벌써 학부모들 중에는 자유학기제는 자유 사교육기간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교사들이 자유학기제 전면 도입에 반대하는 이유는 인프라 구축 미흡, 프로그램 구성의 어려움, 진로직업체험활동에 편중된 프로그램 운영, 주당 총 수업시수 증가...와 같은 후유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출을 높이려면 옥토에다 충분한 밑거름과 정지작업부터 해야 한다. 씨를 뿌리는 일은 그 다음부터다. 성급한 농부가 밭도 갈지 않고 잡초투성이 밭이 씨만 뿌린다고 곡식이 자라지 않는다. 사람농사는 농사보다 더 중요하다. 결실을 위해서는 선조들의 지혜를 바탕으로 좋은 밭에 우량 종자씨를 뿌려 감매고 가꾸는 수고가 필요하다.
그런데 농사일도 아닌 사람을 키우는 일을 실패한 선례도 무시한 채 여건도 고려하지 않고 인프라의 구축도 없이 밀어붙이기 식으로 가능하다고 믿어도 좋은가? 의도적인 교육에 시행착오란 일을수도 있어서도 안 된다. 교육부가 자유학기제를 성공하려면 고교 평준화와 대학서열화문제부터 해결하라. 교육과정은 뒷전이고 시험문제를 풀이하다 학교밖으로 풀어놓으면 어떻게 미래를 탐색하고 진로를 설계할 수 있다는 말인가? 시범학교 단계에서 교사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강행해 박정희정권의 책가방 없는 날의 전철을 밟지 말라. 자유학기제는 여기서 폐지하는 게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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