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격차가 교육격차, 소득격차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고 현재 14조원에 달하는 영어 사교육비를 절반으로 축소하겠다던 장본인이 이명박대통령이다. 후보시절만 그런 약속을 한 게 아니다. 대통령 취임식에서도 ‘교육개혁은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획일적 관치교육, 폐쇄적 입시교육에서 벗어나야 합니다.」라며 공교육 강화론을 펴기도 했다.
「저소득층 학생들이 경제적 부담 없이 공교육 틀 내에서 질 높은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고품질 교육으로 가난의 대물림을 끊겠다」던 대국민 약속을 해놓고 정책은 오히려 정반대로 가고 있다. ‘학교만족 두 배, 사교육 절반’으로 줄이겠다면서 일제고사와 사설모의고사를 부활시키는 등 공교육황폐화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평준화 정책의 종지부를 찍게 될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도입하고, ‘2010년부터 초등학교 3~4학년의 영어 수업 시간을 지금의 주당 1시간에서 주당 3시간으로, 초등 5~6학년은 지금의 주당 2시간에서 3시간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초등영어교육이 사교육비 증대의 주범이라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1997년 초등학교에 영어교육이 도입된 이래 초등 저학년뿐만 아니라 미취학 유아와 갓난아기에 이르기까지 무분별한 영어 교육 열풍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 영어 마을을 만들어 조기 유학생 수는 늘리고 그것도 모자라 다시 영어 수업을 더 늘리겠다는 것은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대국민기만이다. 영어조기교육이 과연 교육적이기는 할까? 아동기가 ‘언어습득능력이 활발한 시기’라는 주장을 부인하자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영어교육의 과열은 어린이들의 지적, 정서적 발달을 가로막고 모국어 구사능력을 퇴보시킨다는 것은 학계에 정설로 이해되고 있다.
영어교육을 타교과목에 비해 비중을 높이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당연히 국어교육교과를 비롯한 타 교과목을 경시하는 풍토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사교육의 기회와 경제력이 있는 가정의 자녀와 그렇지 않은 아이들의 편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 세계화시대에 폐쇄적인 민족의식만을 강조하거나 영어교육의 중요성을 외면하자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영어 구사 능력이 마치 생존의 필수 조건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학교교육의 목표인 전인교육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영어교육의 강화는 학문의 편식을 비롯한 조기 유학을 부추기고 민족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 오게 할뿐만 아니라 공교육황폐화를 불러 오게 될 게 뻔하다.
초중등 교육은 부모의 경제력이나 학력, 지역 편차에 구애됨이 없이, 학생들이 이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자라갈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인성 함양과 지식 습득의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무시하고 무분별한 조기영어교육강화는 성장과정의 아이들에게 미국중심의 편향된 가치관을 심어주게 된다. 대통령의 교육공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고 공교육정상화를 통한 ‘학교만족 두 배, 사교육 절반’은 이행되어야 한다. ‘교육의 기회 균등’ 원칙을 저버리고 영어교육만을 강조하는 것은 민족적이지도 교육적이지도 못하다. 대통령이 약속한 ‘획일적 관치교육, 폐쇄적 입시교육’을 개선하지 않는 한 교육을 살릴 길이 없다. 한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초등학생들에게 미국식 영어 발음을 자랑스러워하게 하고 미국의 창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도록 강요하는 ‘초등학교 영어수업시수 확대방침’은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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