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에서는 목적전치현상을 사회병리현상으로 규정한다. ‘점차 그 수단이 중요해지면서 수단이 목적이 되는 현상’을 일컬어 목적전치현상이라고 한다. 어떤 목표를 위해 계획을 세웠는데 나중에 보니 그 계획을 지키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경우라든지, 공부를 자아성장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 가기 위해서 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사람이 인격이 아니라 그 사람의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로 평가받는 경우가 그렇고, 자격증이란 자신의 능력을 위해 필요한 것인데, 대학이나 취업을 위해 필요하게 된 경우나 예수를 가장 많이 닮아야 할 성직자들이 예수가 가장 싫어하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그렇다. 학교는 어떤가? 오늘날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가 교육목적과는 상관없이 상급학교 진학이 교육의 목표가 된 경우가 전형적인 목적전치현상이다.
과정이 무시되고 결과로 성패를 가리는 사회는 막가파 사회다. 매춘을 하든, 도둑질을 하든, 돈만 벌면 존경받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종교의 목적이 교주의 교의대로 살아가기를 포기하고 세상에 재미를 붙이면 변질되듯이 학교가 사람다운 사람을 길러내지 못하고 일류대학이 목표가 된다면 교육이 무너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지금 학교는 목적전치의 총체적인 멘붕상태다.
도덕공부는 시비를 가리고 옳고 그름을 분별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5개 지문 중 정답을 골라 점수를 잘 받게 하기 위해서라면 그것이 교육이라고 강변할 수 있을까? 어디 도덕만 그런가? 민주의식을 길러야 할 사회공부가 그렇고 수학문제까지 암기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교육은 병이 들어도 중병 든 상태다. 더더욱 기가 막히는 일은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과학부와 교육청이 이런 현상을 부추기도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학교가 더 교육과정을 더 충실히 이행하는가? 어느 학교가 더 훌륭한 사람을 많이 길러내는가?’가 아니라, ‘어느 학교가 더 만이 특목고에... 어느 학교가 일류대학에 더 많이 입학시키는가?’를 가리는 경쟁을 시켜 줄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재산이 많은 사람이라도 돈을 모르는 사람은 쉬 탕진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첨단의 지식을 습득한 사람이라도 그 지식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어렵다.
학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더러운 그릇에 아무리 귀한 물건을 담아둬도 그 가치를 발할 수 없듯이 자신이 소중하다는 걸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 아무리 귀한 학식을 전수받았다 해도 그것을 유용하게 쓸 수 없다. 자기 생각은 없이 머리 속에 지식만 채워 넣으면 유능한 사람이 되는가? 학교가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학교를 떠나 방황하고 있다.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 내리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목적의식도, 방향 감각도 없이 부모가 원하는 아바타가 된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천칭은 무게 중심이 무거운 쪽으로 기운다. 학교가 교육다운 교육을 못하고 목적전치현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무너진 학교로 인해 이익을 보는 집단의 힘이 크기 때문이다.
6만명의 10대가 학교를 떠나고 있다. 해마다 쏟아지는 '탈학교' 아이들이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지난 한 해동안 학업 중단 학생은 5만9165명, 전체 초·중·고교 재학생 1000명 중 9명(0.85%)꼴이다. 학업 적령기에 학교 밖을 떠돌고 있는 10대 아이들을 합친 누적 숫자는 한 해 2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학교가 교육하는 곳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입시문제풀이가 아니라 교육과정대로 학사를 운영하면 된다. 왜 학사운영을 제대로 못하는가? 일류대학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일류대학에 가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일류대학을 나와야 사람대접을 받고 좋은 회사에 취업도 하고 좋은 남편, 좋은 아내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품이 아니라 ‘일류대학 졸업장’이 사람 가치를 좌우 하는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면 제 아무리 뛰어난 재능도 인정받기 어렵다. 학교가 목적전치 현상은 바꾸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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