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사회주의... 같은 이념 다른 길...왜?
평등. 복지, 분배, 기회균등, 형평성, 약자배려, 공유사상....과 같은 가치는 기독교가 지향하는 가치이기도 하지만 사회주의 이념이기도 하다. 그런데 교조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자본주의와 공생하는 기독교는 평등이나 복지, 분배, 기회균등, 공유사상을 우선가치로 보지 않는다. 카를 마르크스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했기 때문일까? 기독교가 가장 싫어하는 게 사회주의다. 약자배려라는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기독교와 사회주의는 왜 앙숙관계가 됐을까? ‘기독교는 ‘아나빔’의 종교다. 유대어의 아나빔(anawim)이란 ‘예수가 사랑한 사람들’ 즉 하느님밖에 의지할 곳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예수는 어부를 자기 제자로 삼고, 전염병자, 과부와 고아, 창녀, 앉은뱅이... 와 같은 버림받은..
2018. 8. 6.
가해자를 짝사랑하고서야 어떻게 사람사는 세상이 가능할까?
“모든 동포에게 동등한 권리와 부를 보장하며 남녀와 빈부의 불평등을 철폐하고 학력과 연령에 상관없이 동등한 지식과 건강을 실현해 온 인류를 포용하는 것이 우리 건국의 깃발이다.” 1919년 2월 1일 대한독립선언(무오독립선언)에 나오는 내용 중 일부다. ‘동등한 권리’, ‘동등한 부’, ‘남녀평등’,,,! 해방된 조국이 꿈꾸던 나라가 노예생활을 하던 우리 선조들이 꿈꾸던 세상이다. 우리는 독립선언 하면 1919년 2월 8일 발표한 2. 8선언이나 민족대표 33인이 태화관에서 발표한 기미독립선언 정도로 알고 있지만 만주 지린, 연해주와 중국, 미국 등 해외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 39명이 무오독립선언서 외에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표한 성명회(聲明會) 선언서, 중국상해에서 신규식, 박은식, 신채호 등 14..
2018. 3. 8.
자본주의에서 주인은 사람일까? 자본일까
만지면 황금으로 변하는 미다스왕의 손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미다스의 손이다. 맘만 먹으면 무엇이든 다 가질 수 있고 원하는 것은 뜻대로 다 할 수 있다. 자본의 목적은 자선이 아니라 이윤의 극대화다. 소비자들을 위해 생산하는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소비자들은 자본의 의도를 알지 못한다. 아니 자본이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믿는다. 자본은 착하기만 할까? 무조건 믿어도 좋을까? 가습기 살균제... 주인공은 자본이다. 자본은 몰라서 그런 독성물질을 사용했을까? 설마 사람을 죽이려고 한 일은 아니겠지만 돈벌이가 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게 자본이다. 질산염, 인산염, 글루타민산나트륨, 소르빈산카륨, 아질산나트, 합성착향료, 설탕, 쇼트닝, 화학색소, 화학향료, 인공보존료, 감미료..
2017. 10. 11.
예수님은 왼쪽인데 기독교는 왜 오른쪽일까?
예수님은 오른 쪽일까 왼쪽일까? 예수님은 소외된 자, 과부, 중풍 걸린자, 문둥병자, 고아, 죄인, 이방인을 아끼고 죄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으신 분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기독교인이란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삶을 사는 사람일까? 마태복음 산상수훈을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한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천국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한 것 보면 예수님이 추구하는 가치는 분명이 오른 쪽이 아닌 왼쪽이다. 가난하고 소외 받고 사는 자와 병든자와 고아와 과부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한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이 천국의 주인이라고 했다. 그런데 기독교 교인들 중에는 왜 오른쪽이 많을까? 가 전한..
2012. 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