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문제에 대해 정부 부처가 종합대책을 내놓은 지 한 달여 지났으나 대책이 실효성을 거두기는커녕 용두사미(龍頭蛇尾) 꼴이 되고 있다’ 중앙일보가 23일자 사설에서 ‘손발 안 맞는 학교폭력 종합대책’이라는 기사의 일부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내놓은 학교폭력근절대책이 서울을 비롯한 친(親)전교조 교육감들이 대책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란다.

 

정말 진보교육감 때문에 학교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학교폭력이란 학교가 폭력을 저질렀다는 어폐 (語弊)가 있는 잘못된 말이지만 언제부터인지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 진짜 학교폭력이란 무엇일까? ‘학교폭력’이란 ‘학생들이 학교에서 당하는 폭행과 금품갈취, 협박... 등 육체적이나 정신적인 고통’을 일컬어 학교폭력이라고 한다. 그런 폭력을 교과부가 내놓은 대책을 잘 이행하면 사라질까?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정부의 쏟아왔던 관심은 이름그대로 ‘폭력과의 전쟁’이었다. 폭력방지를 위한 법률을 만들고 전문 상담사를 배치하고,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비상전화를 개설하고, 경찰을 비롯한 검찰의 전담반을 구성하고, 학부모 도움이를 조직하고, 가해자처벌을 강화하고 복수담임제를 두고....

 

 

중앙일보를 비롯한 수구세력들은 학교폭력을 어떤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을까?

 

학교란 정상적이고 평화로운 공간에 폭력을 저지르는 나쁜 학생들이 있다. ‘이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선량한 학생들에게 금품갈취나 폭행, 심부름을 시키며 괴롭힌다. 피해를 당한 학생은 보복이 두려워 어른들에게 말하지도 못하고 피해를 목격하는 학생 역시 자신들도 표적이 될까봐 불의를 보고 눈감는다. 따라서 이러한 학교폭력가해자, 일진들을 제압하는 것은 정의의 사도인 힘센 교사들이 할 일이다.’

 

학교폭력이란 좀 더 엄한 교칙으로 학생들을 꼼짝 못하게 묶어두고 교사들이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감시감독하고 문제가 있는 학생은 색출해 엄벌을 하거나 재발방지를 위해 격리 수용하는 것이 폭력을 줄이는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학교폭력이 이 지경이 된 것은 학교가 학생지도를 게을리 해서 혹은 교사들의 무관심이나 무능이 불러 온 결과라고 이해한다.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좀 더 관심 있게 다가가면 학교폭력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게 교과부를 비롯한 수구 언론의 시각이다.

 

 

정말 학교폭력이 남을 괴롭히는 나쁜 아이들이나 교사들의 지도 소홀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까? 가슴에 손을 얹고 한 번 생각해 보자. 초등학생들조차 일제고사를 대비해 아침 자율학습에 보충수업에 방학까지 반납하고 시험문제를 풀이하는 학교에 모든 아이들이 잘 적응할 수 있다고 믿어도 좋을까? 영재학교나 자사고를 들어가기 위해 혹은 수학능력고사라는 인생의 승패를 좌우하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4당5락의 삶을 살아가는 학생들은 모두가 일등이 될 수 있을까?

 

일류대학을 입학하지 못하는 낙오자는 인생의 실패자가 되는 나라. 국영수 점수로 서열을 매기는 학교에 모든 학생이 다 승자가 될 수는 없다. 성적이 나쁘면 인성까지도 나쁜 문제아로 취급하는 학교...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인권조차 반납하고 숨죽이며 살아가는 청소년... 그들을 괴롭히는 게 어디 학교뿐인가?

 

학부모들도 청소년들을 괴롭히기는 마찬가지다. ‘다 너를 위해서야!’, ‘참아야 해!. 모든 아이들이 잘 견디는데 너라고 못 견딜 이유가 있나? 너는 우리 가문을 이어갈 사람이야, 내가 못 이룬 꿈, 네가 대신해 줘야 해. 의사가 돼야 해! 판검사가 돼야 해!’ 학원으로 또 학원으로 들 떠밀어 점수가 교육이라고 우기는 부모들의 과욕은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닐까?

 

청소년들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상인들은 어떤가? 청소년들이 읽을 책들은 건강한가? 그들이 보는 영화며 PC방의 게임들은 건강한가? 어른들은 우리 청소년들이 건강한 정서를 키울 수 있는 환경조건을 갖추어 주고 있는가? 경쟁지상주의, 교육을 상품이라며 교육과정을 바꾸고 이기는 게 선이라며 경쟁 지상주의로 내모는 교육과부는 학생들에게 폭력 아닐까? 지식의 암기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길이라며 ‘지면 죽는다’는 이들이 철학은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잘 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는가?

 

양극화로 가난이 죄가 되는 세상에서 주눅들어 살아가는 아이들은 폭력에 일상적으로 내 몰리고 있다. 가난한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빈곤도 억압이요, 폭력이다. 고액과외를 받고 사랑을 넘치도록 받으며 자라는 아이들과 과외 한 시간도 못 받는 아이들이 치르는 시험이 공정한 경쟁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은 이들에게 폭력이 아닌가? 자신의 특기를 살리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여러 줄로 세워, 청소년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조건을 만들어 주는 게 진정한 폭력 대책이 아닐까?

 

- 의의 이미지는 다음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 이 글은 충청남도청인터넷신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ttp://news.chungnam.net/news/articleView.html?idxno=80615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학교폭력 이야기로 세상이 떠들썩할 때 있었던 이야기다. 첫 번째 이야기는 필자가 울산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이성에 눈뜨기 시작하는 남녀공학의 중학교 2학년 반에서 있었던 얘기다. 중학생들은 장난이 심하다, 특히 남녀 공학 반에서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장난으로 애정표현을 하기도 한다.

                                                               <사진출처 : 뉴시스>

<첫번째 이야기>

악의 없는 개구쟁이들은 쉬는 시간만 되면 교실이 난장판이 되기 일쑤다. 어느날, 연필깎이 칼을 들고 장난을 하던 한 남자학생이 여학생이 예쁘다는 표현을 칼로 얼굴을 긋는 흉내를 내다가 얼굴에 3cm 정도나 찢어지는 사고를 냈고, 교실은 순간 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담임교사는 사고를 당한 학생의 부모와 가해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을 했고, 피투성이가 된 여학생을 담임선생님이 부랴부랴 병원으로 옮겨 응급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가해 학생은 편모 가정에다 형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 직장에서 일하는 돈으로 동생의 학비를 대는 소년 가장의 집안 아이였다. 

반면에 피해 학생의 가정은 부모 모두 대학을 나오고 경제적으로도 여유 있는 집안이었다. 당시의 분위기로 피해학생의 말 한마디로 가해 학생은 병원 치료비는 물론 폭력학생으로 형사 책임까지 져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연락을 받은 가해자의 형은 사색이 되어 부랴부랴 병원으로 뛰어왔다.

곁에서 담임은 어쩔줄 몰라하며 상황를 지켜보고 있었다. 얼굴에 칼로 상처를 냈으니, 그것도 여학생의 얼굴을.... , 이런 경우 가해자의 가족은 사색이 되어 처분만을 기다리는 것이 통례다. 피해 학생의 부모의 경우, 가해자의 멱살을 잡거나 욕설이 나오는 것이 통례다. 성인(聖人)이 아닌 이상, 딸의 얼굴에 3cm정도의 상처를 냈으니 어느 부몬들 곱게 넘어갈 리가 없다.

가해자의 형이 사색이 되어 병원 문을 들어서는 순간 옆에서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던 담임도 자기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피해학생의 아버지는 표정도 변하지 않고 피해학생의 형을 맞았다. 딸이 저지경이 되어 누워 있는데 어떻게 저렇게 침착할 수  있을까 의아심마져 들었다. 가정형편 이야기를 듣고 난 피해학생의 아버지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아이얼굴은 잘 치료하면 나을 것이니 치료비는 10만원만 마련하여 내시오"

물론 치료비는 100만원도 넘었다.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가해자의 가정 형편을 듣고 난 피해학생의 아버지는 가해학생의 심리적인 죄의식을 들어주기 위한 배려까지 했던 것이다. 담임뿐만 아니라 이 소문을 들은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어떻게 그럴 수가...,  내가 그 입장이 됐더라면 피해학생의 아버지처럼 할 수 있을까?' 라며 피해학생의 아버지의 인간적인 배려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필자는 그 후 인사이동으로 그 학교를 떠나, 피해학생이 그 후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사건을 아는 사람들은 당시의 피해학생의 보모에 대한 인간적인 모습을 잊지 않고 있다. 

                                                <사진 출처 : 울시시교육청 블로그에서>

<두번째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는 그로부터 3, 4년 후의 일이다. 필자가 고등학교 1학년 담을을 맡고 얼마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실업계 고등학교 입학식이 있고 난 후 한 달도 채 안 된 어느날. 새로 편성된 학급의 '주먹 서열 정하기'를 하다가 물걸레 채로 경쟁자의 머리를 때려 피투성이가 된 것이다.

순간 교실은 수라장이 됐고, 피해학생을 병원으로 옮겨 머리를 15바늘을 꿰매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가해자와 피해자 학생의 학부모가 달려와 서로 마주 앉았다. 피해자 부모는 가해자 학부모에게 백배 사죄하고 치료비를 내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희들끼리 놀다가 다친 것을 가지고 문제삼을 것이 뭐 있느냐"는 투로 쉽게 넘어갔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이튿날 다시 벌어졌다. 다친 학생의 학부모로부터 전화가 온 것이다. "아이가 열도 나고 해서 병원에 있기 때문에 학교에 보낼 수 없다"며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웬걸, 일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풀리는가 싶었는데, 역시... 뒤에 안 일이지만 피해학생의 어머니는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만 친척 중에서 '요즈음이 어떤 세상인데 폭력학생을 그냥 두느냐, 고발하면 구속까지 되는데 치료비라도 충분히 받아야 하지 않느냐'라는 얘기를 듣고 담임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이번 사건의 가해학생의 부모는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운 형편에 있었다.

가해학생은 자기 토지도 없이 소작으로 겨우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어려운 형편의 학생이었다. 피해학생의 어머니는 가해학생의 부모에게 300만원을 요구하였고, 가해 학생의 부모는 그 돈을 마련하느라고 동분서주 하다가 결국은 빚을 내어 주고 합의를 했다는 뒷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피해 학생은 몇 달 후 친구를 폭행해 가해학생으로 둔갑, 학부모가 학교에 몇 번씩이나 불려와 곤욕을 치르더니 결국은 가정불화로 가출을 하고 말았다. 가해학생은 학교 생활을 견디지 못해 중간에 학교를 자퇴하고 말았다. 

<학교폭력이란 무엇인가?>

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학교폭력은 학교 안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폭력없는 학교 어쩌고 하면서 문제학교라는 오명을 받기 싫어 쉬쉬하거나 학교차원에서 학부모끼리 해결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학생득간의 언어폭력과 왕따와 같은 문제도 학교 안에서는 빈번히 발생한다.

학교폭력은 왜 일어나는가? 학교폭력하면 학생 개인의 이기적이고 도덕적인 인성의 부재... 등,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 일쑤다. 정말 그럴까? 학교폭력은 현상만 힉교에서 일어났을 뿐 그 원인은 제도적인 한계와 문화적 요인, 환경적 요인이 결합한 폭합적인 원인에서 찾아야한다. 개인의 도덕성의 결여가 원인제공자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학교폭력문제만 발생하면 개인에게 책임을 묻고 다른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데 폭력학생 개인이 문제라고 책임을 씌운다.

<학교폭력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교폭력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꼭 한번 들려 볼 곳이 있다. PC방이다. 아이들이 자주가는PC방의 게임 내용이 어떤 것인가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게임만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이 즐겨보는 영화나 만화는 어떤가? 여기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정서적으로 힘든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 판단능력이 있기나 할 것일까?

인간을 사회적인 존재라 하면서 문제만 생기면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는 풍토는 문제해결을 위한 바람직한 태도일까? 학교지킴이가 어떻고 하지만 그런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다. 학교폭력을 그본적으로 해결할 길은 없을까? 해결책이 없는 게 아니다. 학교가 교육다운 교육을 하면 된다.

그 교육다운 교육이란 일류대학 입학을 위해 문제풀이에 날밤을 세는 학교가 아니라 사회적인 존재로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철학)을 가르치는 학교를 만들면 된다. '아랫돌 빼 윗돌 괘는 식'의 폭력대책으로는 학교폭력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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