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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혁명3

41년 전 오늘 유신에 저항한 부마항쟁 기억하십니까? 나의 인생은 어쩌다 역사의 소용돌이를 아슬아슬하게 비키며 살아남았다. 내가 태어난지 7개월째 되던 1945년. 8월15일. 일본 제국의 쇼와 왕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종전 조서〉를 발표함으로써 1939년 9월 1일 시작된 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리고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는다. 6·25전쟁 때도 그랬다. 영덕에서 채 입학할 나이도 되지 않았지만 부모를 졸라 초등학교(현 초등학교)에 2개월도 되지 않은(당시는 4월 1일이 학년도 시작이었다) 6월 25일 전쟁을 만나 피난을 간다는게 격전지 포항으로 피난을 갔으니... 용케도 살아남았다. 부마항쟁도 그랬다. 경부 칠곡군에서 교직생활 시작한지 꼭 10년이 되던 해인 1979년 9월 1일 마산여상(현 무학여고)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내가 마산으로 학교를 옮긴.. 2020. 10. 16.
우리나라 국호가 언제 왜 대한민국일까? 우리나라 이름 대한민국...! 지금은 어디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대~한민국!’이지만 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에는 우리 민족의 5천년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애환과 역사와 정서가 담겨 있다. 우리민족과 함께 해온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언제부터 정해져 민족과 함께 했을까? 우리는 의미 없이 듣고 지나쳐 온 나라 이름 국호에 대해 얼마나 깊이 있게 알고 있을까? 개인의 이름이든 국호든 이름이란 대상을 일컬어 부르는 호칭이다. 마치 얼굴처럼... 개인의 얼굴에도 그 사람의 인격이 담겨 있듯이 나라 이름도 마찬가지다. 개념을 표현하기도 하고 때로는 명예·명성·평판과 같은 정서가 담겨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 이름이 대한으로 처음 불리게 된 것은 대한제국에서부터다. 대한제국은 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 2020. 8. 19.
3·1운동인가, 3·1혁명인가? 올해는 3·1절 100주년, 건국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3·1절 100주년을 맞아 정부가 3·1운동을 3·1혁명으로 바꿔 부르자는 이른바 '정명(正名) 작업'을 언급하고 나서 관심을모으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의 제안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이른바 '정명(正名) 작업'은 일부 보수층에서는 '건국절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전략이 숨겨져 있다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3·1절 하면 유관순열사를 떠올리지만 3․1혁명은 ‘전국 각지의 면소재지 단위로까지 확대된 만세시위로 3월부터 5월까지 1500회가 넘었다. 시위 참여자는 일제의 통계만으로도 200만 명이 넘었으니 당시 인구 1700만을 감안하면 엄청난 사건이었다. 더구나 이 과정에 7500여명이 사망하고 1만6000여 명이 부상하였으.. 2019.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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