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대책위원회'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7.28 숫자로 서열 매기는 반교육문화. 이제는 바꿔야... (16)
  2. 2012.02.02 학교폭력문제, 이렇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24)
교육정책2013.07.28 07:00


“글쎄, 초등학교 일학년 짜리가 틀린 낱말을 고쳐 100점으로 만들어 왔지 뭡니까? 저는 순간 가슴이 철렁해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해 의젓한 학생이 된 모습을 보는 부모들은 지금까지 힘들게 키워온 수고도 잊고 가슴 뿌듯함을 느낀다. 받아쓰기도 늘 100점을 받아 오는 걸 보면 더 없이 대견스럽고 기특하다.

 

 

그런데 어느날 느닷없이 100점짜리 받아쓰기 공책에 뭔가 이상하다고 낌새가 들어 자세히 본 이웃집 학부모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틀린 낱말을 지워 다시 쓰고 점수를 고친 것이다. 100점을 받아 오면 문방구에 가서 친구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사준다고 약속한 다음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어머니는 다시는 아이에게 점수를 강요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마음속으로 다짐했다고 한다.

 

평가란 무엇인가?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평가란 문제의 난이도에 따라 점수로 표현되는 개념의 조작적 정의다. 자칫 점수라는 수치로 서열을 매기는 마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주객전도의 성적지상주의 문화에 매몰되기 십상이다. 경쟁사회에서 너무나 당연시되고 정당화되는 점수니 등수라는 것은 학습자가 학습한 내용을 가치 내면화했는지의 여부를 수치화한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학교문화는 수치로 나타난 점수가 곧 인격이라는 ‘성적=사람의 가치’라는 등식을 만들어 놓았다.

 

학교에서 평가란 본질을 형식과 뒤바꿔놓는 주객전도가 될 때가 많다. 학생들의 학력평가, 교사의 근무평가, 학교평가... 등등 평가로 시작해 평가로 끝난다. 경쟁사회에서 평가란 어쩔 수 없는 필요악으로 치부해 버리고 타성에 젖어 생활하면 끝일까? 그러나 평가가 개인의 가치는 물론 학급간의 혹은 학교간의 서열을 매기는 척도가 되어 수치로 나타난 실적으로 개인의 명예나 학교의 서열로 이러진다면 이건 좀 얘기가 달라진다.

 

 

‘봉사점수’의 경우를 보자. 공동체 사회에서 서로 돕고 산다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다. 그런데 이 봉사를 점수화해서 일류대학 입학에 당락을 좌우한다면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라는 봉사의 의미는 사라지고 이해관계를 수치화한 결과로 나타난다.

 

학교가 학생들의 봉사를 생활화하기 위해 만든 게 ‘봉사점수제’다. 그런데 방학만 되면 관공서며 시민단체, 심지어 종교단체까지 찾아다니며 점수를 부풀리거나 하지도 않은 봉사 확인서를 받아 오는 등 반교육적인 행위가 반복되고 있다.

 

중학생의 경우 내신 성적 총 300점 중 봉사활동 점수가 18~20점이 반영된다. 고등학생은 봉사점수가 내신성적에 반영되지 않지만 봉사 시간이나 관련 수상 경력 등을 기준으로 수시모집에서 학생을 뽑는 대학이 있어 ‘봉사 점수’를 중요하게 관리하는 학생들이 많다. 이러다 보니 하지도 않은 봉사를 부모들이 대신 받아오게 하거나 2시간 봉사를 하고서는 3시간 혹은 4시간으로 시간 부풀리기를 하는 등 비교육적인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잘못된 정책이라면 개선을 하거나 중단해야 옳지만 교육부의 하는 일은 보면 요지부동이다. 최근 서울시교육청 산하 각 급 학교에는 ‘독서평가제’를 도입, 시행하고 있다. 문용린 교육감이 당선 된 후 3년마다 하던 학교 평가제가 매년 평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학교 경영자를 비롯한 학교 구성원은 당연히 긴장할 수밖에 없다. 학교평가가 교원의 성과급과 연계되기 때문이다.

 

 

독서평가제가 무엇인가? 독서평가제란 학생 1인당 도서대출 건수를 점수로 매겨 학교경영평가와 연계해 학교간 서열을 매기는 제도다. 물론 결과는 교사들의 성과급까지 차등지급하는 근거가 된다. 학교평가 점수를 잘 받으려면 이웃 학교보다 0.1점이라도 더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책을 많이 읽기를 권장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게 원칙대로 잘 될리 없다. 봉사점수제가 봉사는 없고 점수만 남듯 독서평가제도 마찬가지다. 서울시 교육청 산화 각급학교에서는 교사들이 앞장서서 책을 제대로 읽지도 않은 학생들에게 또 다른 책을 대출하라고 독촉하는 일이 다반사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에는 42가지에 이르는 수치화한 지표들로 학교의 정상적인 교육을 방해하고 있다. 새로 도입된 독서평가제며 형식적으로 치러지는 수업 공개며 학교별 특색 사업 등 보여주기 사업이 대부분이다. 독서평가제가 주객전도가 되는 이유도 지금까지 학교에서는 독후감을 잘 쓴 학생에게 주던 상이 책을 많이 빌려간 아이들에게 주는 주어지는 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인성교육을 한다면서 교실에 비디오 하나 틀어주면 실적이 되고, 진로교육도 비디오를 한번 더 틀어주느냐, 여러 번 틀어주느냐는 차이로 실적이 쌓인다. 학교폭력 횟수가 많아지면 학교평가 점수가 낮아지니까, 대부분의 폭력 사건은 학교폭력대책위의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적당히 넘어가고 있다. 학생이든 학교든 수치로 서열을 매기는 실적 쌓기 반교육 문화는 이제 그만 바꿔야 하지 않을까?

 

-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2.02.02 07:00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학교폭력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아니 날이 갈수록 학교폭력은 더더욱 잔인해지고 흉포화 되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대책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는 학교폭력이란 도대체 어떤 양상일까? 학교폭력이란 ‘학교 내․외에서 초․중․고생 간에 일어나는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유인, 추행, 명예훼손, 모욕, 공갈, 재물손괴 및 집단 따돌림(왕따) 등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통털어 학교폭력이라 한다.

나라 전체가 하교폭력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학교폭력문제, 해결은 불가능한 일일까? 해결을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안 하는 것인가? 지금가지 정부가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내놓은 대책만하더라고 수십가지가 넘는다. 폭력이 사회문제가 되기만 하면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대책이란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만들고, 피해학생의 보호, 가해학생에 대한 선도 및 징계,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간의 분쟁조정 같은 시책을 반복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학교폭력대책을 보자. 폭력대책반을 만들고 Wee센터를 설치하고 대안교실의 확충, 학교폭력 담당교사 인센티브 강화, 단위학교 배움터지킴이 예산지원, CCTV통합관제센터 운영, 예산의 국고 지원, 전문상담교사 배치 확대... 등 지겨울 정도로 듣는 해묵은 카드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전문상담교사를 학교에 배치를 하기 위해 600억을 투입하고 학교폭력 근절 대책팀의 학교지원국 배치하고, 또래상담자 활성화하고, 학부모상담주간 운영을 하겠다고 한다. 어제는 한나라당의 황우여대표까지 나서서 학교폭력대책특별법까지 만들겠다고 한다.

학교와 학부모, 경찰, 검찰 그리고 입법부가지 발 벗고 나선 폭력 대책, 과연 효과가 있을까? 한마디로 말하면 잠시는 주춤할지 몰라도 이런 식의 언발에 오줌누기식의 대책으로는 폭력이 근절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학교폭력은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까? 폭력이 더 잔인해지고 흉포화될수록 처벌을 더 무겁게 하기를 반복한다고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할까? 사형제를 도입한다고 범죄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

의사가 처방을 해도 병이 낫지 않는 이유는 진단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열이 난다고 무조건 해열제를 처방하는 의사는 돌파리 의사다. 원일을 두고 언발에 오줌누기식 혹은 아랫돌 빼 윗돌괘기식 폭력대책으로는 학교폭력을 절대로 해결하지 못한다.


해결방법은 없는 게 아니다. 학교가 교육과정운영만 정상화한다면 해결 못할 리 없다. 교과 과정(敎育課程)이란 ‘교육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그 내용을 체계적으로 조직한 교육의 전체 계획’이다. 연간 수업일수는 며칠이며 국어는 연간 몇시간, 수학은 몇시간... 이렇게 대통령령으로 정해 놓은 게 교육과정이다. 교육과정에는 국어영어수학 문제풀이나 하고 체육이나 음악, 미술은 공부하지 않아도 좋다고 하지 않았다. 학생들의 발달단계에 맞춰 예체능도 인성교육도 제대로 하라는 게 교육과정이다.

문제의 발단은 학교가 교육과정이라는 법을 어김으로서 비롯된 문제다. 현행 법체계는 헌법-법(국회)-령(대통령령,부령등)-조례(지방의회)-규칙(지자체장)의 순으로 짜여져 있다. 교육과정은 대통령령이다. 법 다음 지켜야할 령을 학교는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법을 어겨서 나타나는 현상이 교육 위기며 학교폭력이다. 근본적인 원인을 두고 엉뚱한 데서 답을 찾으니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는가?

학교는 왜 ‘대통령령’을 어기는가? 교육을 해야 할 학교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문제풀이로 날밤을 세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다 교육을 살려야 할 감독관청이 전국단위 일제고사와 같은 시험을 치러 학생과 학교를 서열매기고 성적에 따라 학교예산을 차등지원하고 교원들의 성과급까지 차등 지급하겠다는데 교육과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겠는가?


오늘날 교육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은 다름 아닌 교과부다. 학벌사회를 만들어 학교가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만든 범인(?)이 교과부라는 말이다. 공교육정상화가 교육을 살리고 학생들을 바르게 교육하는 길이라는 걸 지도·감독해야 할 교과부와 교육청이 앞장서서 교육과정을 어기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돈벌이를 위해 학생들을 대상화하는 상업주의가 있고 먹고살기 위해 아이들 가정교육은 뒷전이 되는 무너진 가정교육에도 책임이 있다. 승진을 위해 교육은 뒷전인 교원들의 책임이며 제자들 전과자로 만들 수 없다는 교사들의 온정주의 또한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보기 어렵다. 점수에 목매는 부모며, 점수가 교육이라고 착각하는 교사, 경쟁에서 이기는 게 선(善)이라고 교육을 상품으로 만든 교과부의 책임 또한 면키 어렵다.

사회적인 여건을 개선함과 아울러 학교가 교육과정만 정상적으로 운영한다면 교육도 살리고 학교폭력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교과부는 정말 모를까? ‘연목구어(緣木求魚)식’ 대책으로는 영원히 학교폭력은 해결되지 않는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