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과의 전쟁'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2.04 교육은 없고 사법처리만 하자는 '폭력 가해자 처벌' (19)
  2. 2012.04.18 학교폭력, 해결 못하는 건가, 안하는 건가? (34)


 

                                        <학교폭력 예방 종합 포털 사이트 StopBullying>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학교폭력, 폭력 가해학생은 지금까지 어떻게 처벌했을까?

 

그동안 학교폭력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는 기준이나 원칙도 없이 학교에 따라 시기나 위원구성에 따라 천차만별로 처벌해 왔다. 원칙도 없는 이러한 가해학생의 처벌을 두고 지금까지 형평성 문제제기가 끊이질 않았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범죄행위에 따른 양형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사법 현장이 어떤 모습이 되겠는가?

 

때늦은 감은 있지만 2013년 1월 31일, 교과부가 학교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 세분기준을 마련한 것은 다행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번 장관고시로 발표한 ‘학교폭력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적용 세부기준’을 보면 ‘교육은 없고 사법처리만 있어 교육적인 배려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장관고시로 발표한 행정예고안을 보면 객관화된 처벌결정에만 무게 중심을 두고 있어 학교교육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교육적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장관고시로 발표한 세부기준을 보면 학교폭력 사안 조사 시, 폭력의 핵심요소를 파악하고 경중에 대한 판단을 하도록 했지만, 그 어디에도 피해자의 감정과 생각을 고려하는 기준은 보이지 않는다. 학교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학급 안에서 발생한 경우 반드시 가해 동조자, 방관자 등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학교폭력이 처벌만능이 아니라 교육적으로 해결되기 위해서는 폭력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합리적으로 해결되고, 화해되는 과정을, 함께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가해자 개인의 사과와 억지스런 피해자의 용서수준에서 상황을 마무리 짓는다는 것은 학교를 교육 없이 사법처리만 하는 기관으로 전락시킬 개연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 가해자가 사과할 경우, 피해자는 보복이 두려워 의지와 다르게 화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피해자와 피해자 부모와의 면담수준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예방하기는 어렵다.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가해자와 피해자자간의 중재와 화해를 위한 세밀한 프로그램과 절차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학급과 학교를 학교폭력 없는 평화의 공간, 교육의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담임교사에게 중재조정권을 부여하고 학급수준에서 중재조정화해의 절차를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일상적인 학교폭력을 해결하려면 가해자의 사과와 피해자의 용서를 바탕으로 한 화해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학급 학생 모두를 참여시켜야 한다. 중재 조정은 모든 학교폭력 해결과정에 전제되어야 하고, 그래야 학교폭력을 사법처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적으로 해결 할 수 있는 것이다.

 

                                                        [폭력 유형별 중점파악 요소]

 

 

 

 

                                               [가해 학생에 대한 유형별 조치 기준]

 

학교폭력문제는 교과부만이 나서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학교폭력은 사회전반의 폭력적인 질서와도 직결되어 정부차원의 모든 부처가 책임 있는 대책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국회는 문제투성이 학교폭력관련 법률을 재정비해야 하고, 범 정부차원에서 교원단체와 현장을 포괄한 학교폭력대책기구를 만들어 운영해야 한다. 학교폭력문제는 사회와 교육의 총체적 모순과도 직결되어 있는 만큼 국회와 모든 정부부처가, 함께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

 

2월 6일은 교과부의 학교폭력근절대책이 시행된 지 만 1년이 되는 날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범정부차원의 근절대책을 마련했지만 학교폭력은 전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해도 폭력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교육과정을 왜곡하고 있는 학교스포츠클럽 강제와 오래전 실패가 검증되었던 복수담임제의 졸속적 추진, 반인권적인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 등 청맹과니처럼, 신고 건수 증가, 학교스포츠클럽의 증가, 학교폭력예방 동아리 등 주판 튀기기와 실적 홍보에 골몰해 온 탓이다. 1년이 지난 이 시점,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부분은 살리고 졸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대책은 당장 중단해야 한다.

 

교육은 없고 사법처리만 하겠다는 학교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 세분기준으로는 학교폭력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교육은 없고 처벌만 하는 폭력대책으로 어떻게 학교폭력을 근절하겠다는 것인가?

 

 첨부 자료 :

붙임_학교폭력_가해학생에_대한_조치별_적용을_위한_세부_기준(고시)_제정안(행정예고).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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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약이 무효라고 했던가?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 이후 교육당국이 학교폭력 예방 기본 지침을 만들어 일선 학교에 내려 보냈으나 무용지물이었다. 범정부 차원에서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폭력은 근절하겠다던 게 몇 달 전이다. 그런데 불과 몇4개월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또 한 학생이 친구들의 괴롭힘에 시달리다 못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16일 오전 9시 30분, 경북 영주 휴천동 한 아파트에서 중학교 2학년생 이 모(13) 군이 20층 아래로 투신해 숨져 있는 것을 관리사무소 직원이 발견, 경찰에 신고함으로써 밝혀졌다. 영주는 지난 2월 전국 최초로 시의회가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활동 지원에 관한 조례'를 채택한 지역이다.

 

 

'나는 2012년 4월 15일 이 유언장을 쓴다. 내가 죽으려는 이유는 학교 폭력 때문이다. 나는 왕따를 당하지 않는다. 친구도 있다. 그런데 내가 죽으려는 이유는 우리 반에 있는 ×××이란 놈 때문이다.' 이군은 '그 녀석은 내 뒤에 앉았는데 교실에서 매일같이 나를 괴롭혔다. 수업시간에 뒤에서 때리고 했다. 쉬는 시간에는 나를 안으려고 하고, 뽀뽀를 하려고 하고, 더럽게 내 몸에 침을 묻히려고 했다'고 유서에 밝혔다.

 

 

 

 

이군의 자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학교와 교사들의 무능에 분노가 치민다. 도대체 학교는 무엇을 하는 곳이며 교사라는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학생이 이렇게 죽음의 고통에서 시달리고 있는 동안 시험문제 풀이에만 여념이 없었다는 말인가? 학교뿐만 아니다. 정부가 나서서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학교폭력을 근절하겠다며 징계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고 체육수업 확대와 복수담임제를 도입하는 등 수많은 대책들을 내놓았지만 하나같이 백약이 무효였다.

 

학교폭력은 정말 영원히 근절 못하는 문제인가? 병을 고치려면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학교폭력도 마찬가지다. 학교폭력은 근절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도 폭력에 대한 원인진단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은 학생 개인의 부적응이나 폭력성 때문이 아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폭력을 가하고 피해자가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현상으로 나타나지만 본질은 교육부재에서 비롯된 문제다.

 

 

 

 

학교폭력은 가해자는 좁게 보면 가해자 한사람 혹은 폭력집단의 조종을 받은 학생 때문으로 보일지 몰라도 근본적인 이유는 교육의 부재가 낳은 결과다. 교육은 학교에서만 하는게 아니다. 가정과 학교와 사회가 조화롭게 의도적으로 추진해 나갈 때 청소년들의 교육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무너진 가정, 인성교육을 포기한 학교, 청소년들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회의 합작품이 아니가?

 

학교폭력은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빼앗아 간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가 만든 결과물이다. 일등만능주의, 점수가 교육이라고 착각하는 부모와 교육당국, 인격이 아니라 일류대학이 교육의 목적이 되고 학벌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어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빼앗아 갔기 때문이 아닌가?

 

희망을 잃은 청소년들이 방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들에 핀 꽃들을 보라. 붉은 색깔의 꽃도 있고 흰색 꽃도 있다. 노랑색 꽃도 있고 분홍식 꽃도 있다. 키가 큰 나무가 있는가하면 키작은 예쁜 풀이며 이름 모를 나무들이 서로 어울려 화려한 계절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농사는 짓는 사람도 있고, 장사는 하는 사람도 있다. 어부도 있고 광부도 있다. 공무원도 있고, 교육자도 있다. 청소미화원도 있고, 대통령도 있다. 청소미화원은 없어도 되고 국회의원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가? 먹이사슬 중 호랑이와 사자는 반드시 있어야 하고 너구리와 토끼는 없어도 좋은가? 수학을 잘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달리기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가진 학생도 있다.

 

열심히만 하면 모든 학생이 다 일등이 되는가? 일등만 존중받는 사회는 꼴찌란 무용지물일까?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의 총체적인 모순을 두고 몇몇 교육 관료의 머리에서 나온 정책을 금과옥조로 생각해 채택했다가 결국 이지경이 되지 않았는가? 지금까지 수백까지 폭력대책이 유명무실하게 된 이유는 근본원인을 두고 현상만 치료하겠다는 근시안적인 단견 때문이 아닌가? 교과부는 지금이라도 실패한 정책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시민단체를 포함한 범국민폭력대책위원회라도 만들어 해결책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