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철학2018.04.13 06:30


나는 가끔 시인이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단어 몇 개로 쾌재를 부르게 하는 공감대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놀랍기 때문이다. 수백 쪽이나 되는 책보다 단어 몇 개로 무릎을 치게 하는 감동을 안겨 줄 수 있는 시가 참 부럽다. 159. 그것도 펜드선생, 한아름, 장필독,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대화조로 풀어 가는 <아리스토텔레스, 이게 행복이다>를 읽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말했고 플라톤은 그 철학을 체계화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지금 배우고 익히고 있는 모든 학문을 체계화한 사람이다. 삼단논법은 알아도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삼단논법뿐만 아니라 논리학, 이론철학, 실천철학, 언어학, 예술이론 생물학...에 이르기까지... 무려 4~5백권을 썼다면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도 지금부터 2400년 전에 살던 사람이...

나는 왜 사는거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내 삶의 목적은 뭐지?”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답안지와 같아. 그렇다고 이 책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고 인생을 잘 사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야. 다만 우리는 태어났고(원해서 태어난 건 아니잖아?) 배우고, 살아가고, 결국엔 죽어.

그 과정에서 단순히 죽지 못해 사는 거지라는 식의 푸념 섞인 대답을 내놓는 게 아니라 어떻게 값진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방향을 알려준다는 거야. 목적지가 분명하다면, 길을 좀 헤매더라도 결국엔 도달하잖아? 가는 방법이야 배를 타고 가든, 비행기를 타고 가든, 걸어가든 자기상황과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목적지가 분명하다면 어쨌든 길을 잃지 않아.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는 행복이라고 한마디로 명쾌하게 정리한다. ‘삶의 목적은 행복이다. 다들 그렇게 살고 있을까?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생물학적인 욕구충족에서부터 옷을 입고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하고...하는 것도, 열심히 일해 돈을 버는 것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도...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는 거다. 그런데 나는 지금 이 순간 행복한가? 아니 일생동안 아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얼마나 될까? 아니 그런 목적의식도 없이 사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나는 지역 시민단체가 유명인사라는 사람들을 초청해 하는 인문학 강의를 들으면 뜬 구름 잡는 말에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특히 철학을 전공한 학자들... 현실과 괴리된 공허한 얘기를 하는 본인은 박학다식에 자기도취에 빠져 있는지는 몰라도 그게 왜 어때서..? 내 삶과 무슨 상관이야?’ 이렇게 따지고 들어 가보면 마치 플라톤의 이데아 같은 공허한 소리로 들린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르다. 사람이 왜 사는가? 행복하기 위해서...그럼 행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책이 <니코마코스의 윤리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행복해지는 방법을 안내해 준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모두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권은 좋음의 목적과 행복의 정의를... 2권은 도덕적 미덕, 3권 도덕적 책임, 4권 다른 미덕, 5권은 정의, 6권은 지적 미덕, 7권 자제력과 자제력 없음 쾌락, 8권 친애 , 9권 친애 , 마지막 10권은 쾌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의 정의부터 시작한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2권부터 나오는 덕은 4권까지 이어지는데 도덕적인 덕과 습관, 선과 중용의 관계, 중용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등이 나오는데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이런 방법이 필요하다는 게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이다. 저자 이성주는 이렇게 어려운 얘기를 깨소금 맛으로 풀어내는 마술과 같은 능력이 있다.

나쁜 것과 좋은 것 사이에서 사람들은 왜 좋은 것을 선택하지? ‘좋은 걸추구하는 삶을 사는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본 적 있어?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기에 지금까지 고민해본 적 없었지?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윤리학>은 이렇게 당연한 것을 질문하는 내용으로 시작해. 왜 사람들은 좋은 걸 선택하는 걸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사고과정을 쉽게 말하자면 인간이 좋은 걸 선택하는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야. 그런데 행복이 뭐야? 행복이란 걸 본적이 있어?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이런 거야..그렇다면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캐묻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어!”철학 하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정도는 알지만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왜 예수보다 400년이나 먼저 태어난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성서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만나면 내가 왜 사는지 행복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아니 삶이 힘들어 방황하는 모든이들에게  아리스토텔레스, 이게 행복이다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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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8.25 05:30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이 쓴『자서전』에는 미국인들이 지켜야할 열세 가지 덕목을 제시했다. 절제,침묵,질서,결의,절약,근면,성실,정의,중용,청결,평온,순결,겸손을 미국인들이 추구해야할 아메리칸 드림의 성취 조건이란다. 이상적인 사회라면 인간으로서 누구나 지켜야 할 당연한 도리요, 건강한 국민, 자질 높은 국민의 상이다.

그러나 베트남에서 미국이 저지른 만행과 이라크에서 이라크 국민을 살상한 것이 아메리칸 드림이라면 이는 건강한 국민의 자질이 아니라 비판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다. 청교도주의(puritanism)의 전통에 바탕을 둔 이들의 꿈이라는 게 ‘능력을 발휘해 돈과 명예를 얻는 것’이라는 것도 우습지만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미국의 패권정책이라는 게 지식인들을 침묵케 하는 바탕 위에나 가능하다는 논리로 이해가 안 된다.


군주는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이 필요로 했지만 자신에 대해 비판을 하는 사람은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독재자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러한 독재자의 성향을 악용해 출세하고 인정받기 위한 경쟁은 치열했을 것이고 그 경쟁이 공정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다.



군주를 위한 충성이 시나 음악이라는 예술의 형식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철학이나 종교의 외피를 쓰고 탄생하기도 했다. 중세 종교가 정치를 압도하던 시대에 찬란했던 예술은 권력의 크기에 비례해 꽃필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인들의 역할을 긍정적인 측면만 아닌 곡학아세의 도구로, 자신의 출세를 위해 진실을 호도해가면서 출세도 하고 인정받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불의한 권력이 지배하는 시대나 전제 군주가 지배하던 사회에서는 진실을 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진리를 외치다 혹은 죽고 혹은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다. 이런 경우 침묵이 생존의 수단이 되기도 해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스스로 불이익을 당하기를 자처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오늘날이라고 달라질 리 없지만 지식인들의 침묵은 독재 권력에게는 정당성을 약자에게는 운명론을 정당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마련이다. 몇 년 전 강정구교수 사건이 그 좋은 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학자가 학문적인 양심에 따라 주장한 내용을 놓고 색깔을 뒤집어씌우고 그것도 모자라 실정법운운하며 진흙탕 쌈을 두고 진보와 보수라는 흑백논쟁으로 왜곡한 사건이 그렇다. 이렇게 온통 나라가 소용돌이치고 있을 때 그 잘난 역사를 했다는 수많은 학자님들. 누가 나서서 “그 사람 강정구 말이 맞소!” 한 사람 몇이나 있었나?


전문성 얘길 꺼내면 자존심 상해할 사람도 있겠지만 역사적으로 지식인들에게 후한 대접을 해 온 것은 진짜 전문성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논리나 그 분야의 나름대로의 지식으로 다수를 설득시킬 수 있는 영향력(권력이라 해도 좋고...)을 잠재우기 위한 당근책이라는 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이들 중 정말 자신이 잘나고 똑똑해서 대접받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희소가치의 배분에 특혜를 받는 대가로 희생을 운명이라고 주장해 순진한 민초들을 마취시켜 온 것이 그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유명인사가 되고 오히려 피해자는 가해자면에서 그들의 존경까지 받고 살아 왔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역대 독재권력이 폭력을 행사할 때 언론과 지식인들의 침묵은 간접적인 공범이 아니리고 강변할 수 있을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