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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14 자기 반 친구 보고 ‘바이러스’래요 (39)



“얘, 얘~, 저기 ‘바이러스’ 온다”

“재수 없다, 저리가자”

뒤에 자기반 선생님이 따라 온다 것도 모르고 친구 서너명이 앞에 가는 같은 반 친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초등학교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딸에게 들은 얘기다. 딸은 직원 모임이 있어 급히 지나쳤지만 그냥 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직생활 10년이 넘고 보니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을 문젠지 아닌지 구별이 되는 모양이다.

‘바이러스’라고 왕따를 당하고 있는 아이는 다른 애들보다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 때문이란다.


‘바이러스’란 뭔가? ‘동물, 식물, 세균 따위의 살아 있는 세포에 기생하거나 세포 안에서 증식하는 미생물’이다. 원래 뜻은 그렇지만 ‘컴퓨터를 비정상적으로 작용하게 만드는 악질적인 프로그램’을 바이러스라고 한다. 아이들이 말하는 뜻은 상종 못할 '병균’을 가리킨다.

어떻게 같은 반 친구를 ‘병균’ 취급을 할까? 그것도 몇 사람이 한 친구를...?

딸의 얘기를 듣고 생각해 보니 ‘바이러스’라고 왕따 당하는 학생보다 왕따를 시키는 아이들이 더 문제인 것 같다. 무엇이 이 아이들로 하여금 친구를 더불어 함께하는 존재가 아니라 병균이나 퍼뜨리는 상종 못할 존재로 여기게 했을까?


학교사회는 언제부터인지 못생긴 아이. 공부 못하는 아이, 가난한 아이들을 왕따 시키고 같은 친구로 취급하지 않는 분위기가 됐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끼리, 부잣집 아이들은 부잣집 아이들끼리, 잘생긴 아이들은 잘 생긴 아이들끼리... 이렇게 교우(敎友)가 되어 공부하는 학급에서 인성교육이 가능할까? 공부를 못하는 아이를 왕따 시키는 것도 그렇지만 경제적으로 가난한 아이나 못생긴 아이들이 왕따 시키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아이들의 문화는 환경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엄마는 어떤 친구와 만나 어떤 대화를 주고받는지, 텔레비전의 연속극이 어떤 내용으로 채워지는지, 아이들은 민감하게 듣고 배운다. 그래서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닌가?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환경의 중요성을 알고 교육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는다.

의도적인 교육기관인 학교가 못생겼다는 이유로 혹은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왕따 시키는 분위기에서 진정한 교육이 가능할까? 친구가 적이 되는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지식전달이 인간관계보다 소중하다고 할 수 있는가? 이런 분위기에서 왕따 당하는 학생은 차라리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이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지 않겠는가? 왕따 당하는 학생이 아니라 왕따를 시키는 학생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다.


엄밀하게 따지면 왕따를 시키고 있는 학생도 피해자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공부 잘하는 사람들만 모여 사는 세상도 없지만 그런 세상에 저희들끼리만 살 수도 없다. 자기보다 못났거나 공부를 못하는 학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고방식은 저보다 더 잘난 학생, 더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을 만나면 다시 왕따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국어 점수 몇 점, 수학 점수 몇 점 더 많다고 인간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국어 낱말 몇 개, 영어단어 몇 개를 깨우쳐주기보다 자신을 던져 이웃을 위해 살았던 분들의 감동을 받게 하는 게 옳은 교육이다. 슈바이처 박사까지 거론할 필요가 없다. ‘울지마 톤즈’라는 영화를 통해 너무나 잘 알려진 이태복 신부님은 왜 아프리카에서 자신의 건강조차 돌보지 않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살다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까? 평생을 고생, 고생해서 번 돈을 불우한 학생들을 위해 장학기금으로 내놓는 사람들은 왜일까?

딸에게 말해줘야겠다. 아이들에게 일과가 끝나면 매일 하루 한가지씩 동화를 들려 주거라. 그리고 왕따를 당한 학생은 장점을 찾아 전체 학생 앞에서 칭찬을 해 주는 것더 한 방법이 되겠구나. 그리고 그 잘난 채 하는 학생들. 그들을 위해 시간이 나는대로 감동 받을 수 있는 영화를 전체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개인별 과제로 좋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도록 해 보아라. 혹 이런 방법이 무너져 가는 교실을 바로 세우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됐으면 좋겠다. 

더불어 사는 세상은 만들 수 없을까? 몸이 불편하거나 병든 아이. 못생긴 아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혹은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없인 여김을 당하는 아이들이 있는 학교는 좋은 학교가 아니다. 머리가 똑똑한 아이보다 가슴이 따뜻한 아이로 키우고 싶어하는 교사. 그런 교사들이 교단을 지키고 있을 때 교실은 무너지지 않는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