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심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05.20 세상이 모두가 ‘내 맘’ 같다고 생각하세요? (9)
  2. 2012.05.16 똑같은 현상을 보는 다른 시각... 왜? (13)
정치/정치2016.05.20 07:00


일체 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습니다. 화엄경의 핵심사상인 이 말은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뜻입니다. 원효스님이 의상스님과 함께 중국으로 유학을 가다가 어느 초막에서 하루 밤을 새웠는데 그 날 밤에 잠을 자다가 목이 말라 개울에 가서 물을 마셨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다시 물이 마시고 싶어 어제 밤에 마신 물이 생각나 그곳을 바라보니 해골들이 여러 개 널려 있었다고 합니다.

<이미지 출처 : BOOK REVIEW>


그 순간 지난밤에 맛있게 먹었던 물이 올라오는 듯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원효스님은 세상이 훤히 밝아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즉 한 생각이 나면 온갖 만물이 생겨나고, 한 생각이 멸하면 만물이 소멸한다는 것입니다. 이 해골바가지 속의 물에 대한 일화에서 보면 똑같은 물인데, 모르고 마셨을 때는 감로수가 되었으나, 썩은 해골바가지 물인 줄 알고 나니 속이 뒤틀린 것입니다.


같은 말이라도 해석하기에 따라 다르다는 뜻입니다. 일체유심조는 불교신자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세상사 마음 먹기달렸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좋은게 좋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은 좋고 나쁜 것은 나쁜 것입니다. 이렇게 지식인의 특권인 비판조차도 부정적으로 본다며 세상사는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이데올로기가 되고 맙니다.


가난한 사람도 가난이 내 팔자라고 받아들이라는 뜻이 된다면 빈부격차를 정당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불평등사회에서 '못배우고 못났으니 가난하게 사는것은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은 강자의나 부자들의 이데올로기입니다. 사람들이 순수했던 농업사회에서는 심은대로 거두는 세상이지만 정치권력이 부의 배분을 하는 사회에서는 옳지 않은 이데올로기입니다. '이익이 되는 것이 선'인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에 '팔자소관' 운운하는 것은 가난을 정당화하는 운명론자를 만드는 논리입니다. 


일체 유심조라는 화엄경의 핵심사상도 '이현령비현령'이 되는 세상에는 온갖 지배이데올로기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거나 못 올라갈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 혹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와 같은 말이 그렇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하다는 것은 개인의 잘못만이 아닙니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면치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농사를 열심히 지었는데 농업국과 FTA를 체결해 정부가 쌀을 헐값으로 수입해 버리면 농민들이 농산물을 제값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정부가 쌀을 수매할 때 가격을 얼마로 책정하는가에 따라 농민들이 더 가난해질 수도 있고 약간의 인건비라도 건 질 수도 있습니다. 자판기 커피 한 잔에 400원이고 밥한 공기에 200원입니다. 이 가격을 놓고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이런 현상을 두고 일체 유심조를 말하면 바른 해석이 되겠습니까?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는 자본의 논리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눈만 뜨면 보이는 TV화면에 나오는 광고.. 이광고들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요? 과자 속에 들어 있는 첨가물이 얼마나 건강을 해친다는 걸 소비자들은 계산하지 못하고 사먹고 있습니다. 이런 과자를 먹고 성인병에 걸리면 누구 잘못일까요? 일본산 생선과 국산을 속여서 파는데 무조건 상인의 말만 믿고 사 먹으면 건강이 부지하겠습니까? 공기청정기니 바퀴벌레 약이 광고 선전처럼 좋기만 할까요?


소비자들은 옥시라는 제조회사에서 파는 가습기 살균제를 믿고 쌌다가 수백명의 어린이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이들이 먹는 과자류에 든 식품첨가물은 아이들의 건강을 지켜 줄까요? 우리가 먹고 있는 유전자변형식품은 소비자들의 건강을 지켜 줄까요? 상품을 장기보관하기 위해 투여한 방부제며 수입산 일본상품에 방사능이 없는지 확인하고 사먹을까요? 심지어 학교 교훈에까지도 성실, 근면이라는 자본의 이데올로기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아는 부모들이 몇이나 될까요?



착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는 착한 사람이 대접을 받습니다. 그러나 나쁜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에는 순진한 사람, 착한 사람은 희생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내게 이익이 되는 것이 선이라는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 소중한 자신을 지키며 살기 위해서는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요? 나의 건강을 오염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는 지식보다 지혜가 필요합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원론이나 지식만으로는 상업주의가 만연한 세상에 살아가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학교는 지식의 양으로 사람의 가치를 서열매기는 시대착오적인 평가를 그쳐야 합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교육, 옳고 그른 일, 해서 될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는 철학을 가르쳐야 합니다. 시비를 가리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되는 세상에는 일체유심조와 같은 성구조차 악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착한사람이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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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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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5.16 06:30


 

학교폭력문제를 보는 시각이 천차만별이다. 한쪽은 안절부절이고 한쪽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느긋하다. 환경문제를 놓고도 한쪽은 위기라 하고 한쪽은 과학이 해결해 줄 것이라며 태평이다. 광우병문제를 놓고도 한쪽에서는 여전히 ‘없어서 못 먹는다’고 사먹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한쪽에서는 육류를 끊고 식당에조차 가지 않는 사람도 있다.

 

현상을 보는 시각의 차이는 왜,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첫째, 성격이나 감각의 차이다.

 

똑같은 병을 앓아도 어떤 사람은 더 힘들고 어떤 사람은 잘 견딘다. 인내심이나 겉으로 표현을 잘 하지 않은 성격 때문에 나타나는 차이로 볼 수도 있다.

 

둘째, 나의 일인가 아니면 나와 상관없는 일인가에 따라 나타나는 차이다.

 

내가 당하면 펄쩍 뛸 일지만 한 다리가 천리라고 남이 당하는 일이니 건성으로 넘어간다. 이 경우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이익이 되는 일인가 아니면 나와 무관한 일인가에 따라 반응이 다르게 나타난다.

 

셋째, 인식의 차이다.

 

현상에 대한 내용을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 진실의 여부를 아는가의 여부에 따라 나타나는 경우다.

예를 들어 한미FTA 체결을 보는 시각의 차이기 이런 경우다. 한쪽에서는 한미FTA가 체결되면 우리나라 농축산물은 물론 의료나 교육, 심지어 주권까지 내준다며 반발하는가하면 한쪽에서는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듯 태연자약하다.

 

넷째, 가치관의 차이다.

 

흰색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빨강색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외모가 잘 생긴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성격이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돈이 좋다는 사람, 돈보다 건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자유가 평등보다 소중하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등이 자유보다 소중한 사람도 있다. 불교를 믿는 사람도 있고 기독교를 믿는 사람도 있다. 자본주의가 좋다는 사람도 있고 사회주의가 좋다는 사람도 있다.

 

‘일체유심조’라고 했던가?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는 뜻으로 불교의 세계관이다. 배가 고픈 것도 배가 부른 것도 마음이 만들어 낸 마술이다. 귀한 것, 천한 것도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요,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는 것도 마음먹기에 달렸다... 다 내 생각, 내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불교의 세계관이다.

 

‘내탓이오’는 세상이 이 지경이 된 것은 다 내 잘못이라는 뜻이다. 천주교의 세계관이다. 환경이 이 지경이 된 것도, 정치가 타락한 것도, 학교가 무너진 것도, 사회가 온통 향락주의로 빠져 있는 것도 다 내 잘못이라는 뜻이다. 결정론적 세계관인 종교의 시각에서 보면 세상이란 천국이 따로 있을 필요가 없다. 그런데 현실은 온갖 이해관계와 가치관의 차이로 하루가 다르게 삭막해지니 앉아서 구경만 하고 있어도 될까?

 

 

 

 현상을 인식하는 가치관에는 기준과 원칙이 있다.

 

기본적 가치가 있는가하면, 보편적 가치도 있다.

사회적 가치도 있고, 개인적 가치’도 있다.

 

 

기본적 가치란 ‘인간의 존엄성의 보장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며 근본적인 것으로 보는 가치로서, 가치 충돌 시 선택의 1차적 기준이 되는 가치다.

 

보편적 가치는 여러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이다. 생명 · 자유 · 정직 · 신뢰 · 평화와 같은 가치는 육체적 쾌락 · 개인적 즐거움 · 금전적 욕구보다 보편적이다.

 

기본적 가치의 하위가치인 보편적 가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정직 근면과 같은 가치다.

사회적 가치란 ‘공공의 이익을 중시’하는 질서와 같은 공익 우선가치다.

 

개인적 가치란 개인적인 성향을 기준으로 한 기호와 취미와 같은 가치를 말한다. 상위가치 우선의 원칙에 비추어 개인적 가치보다는 사회적 가치가, 보편적 가치보다는 기본적 가치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가치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원칙도 기준도 없이 ‘내게 이익이 되면 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기준이고 내게 좋은 것이 선이라는 가치관이 우리 사회를 가치부재의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 사회지도층 인사나 언론이 이런 원칙이라도 고수해 준다면 우리 사는 세상은 보다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 이미지 출처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