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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1.25 여성들은 왜 명품 신드롬에서 깨어나지 못할까? (34)
  2. 2010.07.09 교육인가 방치인가 (2)
정치2011.11.25 06:19



한국은 지금 ‘명품 앓이’에 빠져있다.

여중생부터 50대 아줌마까지, 심지어 아줌마들의 치맛바람 때문에 갓 태어난 아기조차 '명품 베이비'와 '평민 베이비'로 나눠지고 있다. 샤넬 등 명품 제품을 제조하는 업체에서는 한국의 명품열풍에 놀라고 있다고 한다. 한 네티즌은 대한민국은 명품에 중독된 여성들의 천국’이라고 개탄하고 있다.


실제로 얼마 전 한 케이블 방송에 출연한 20대 여성 김모씨가 자신은 무직이지만 부모의 용돈으로 명품을 구입, 몸에 걸치고 있는 것만 4억원이라며 자신이 보유한 명품을 내보이며 과시하자 이를 놓고 네티즌들간에 뜨거운 공방이 벌어졌던 일이 있다.

명품이란 이름 있는 제품이다. 명품의 사전적 의미는 ‘훌륭하기 때문에 이름이 난 물건’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의 ‘명품’은 “비싸고 사치스러운, 그래서 아무나 쉽게 구입하지 못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통한다. 사치품이 명품이고, 명품이 곧 사치품인 것으로 아는, 집단적인 마취현상에 빠져 있는 것이다. 영어권에서는 럭셔리(Luxury Goods)라는 말이 사용되는데 럭셔리에 일상생활에서는 필요없는 사치품이라는 의미가 부여되어 있는 반면에 한국의 명품에는 사회적 신분이나 계층을 나타내는 소비문화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주객전도라고 했던가? 주인과 손의 위치가 서로 뒤바뀌는 즉 사물의 경중ㆍ선후ㆍ완급 따위가 서로 뒤바뀌는 현상을 주객전도라 한다. 명품 신드롬이 그렇다. 옷이니 신발이니 시계, 가방... 이런 것들은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편리하기 위해 만든 문화다. 그런데 이런 문화가 오히려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불행하게 만드는 반문화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왜 여성들은 명품신드롬에서 깨어나지 못할까?

명품이란 황색 저널리즘이 상업주의와 결탁해 만든 병든 문화다. 얼짱, 몸짱문화가 말해주듯 돈벌일르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상업주의가 언론이 자본과 결탁해 저질 감각주의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주간조선은 11월 6일자 ‘정치인과 그 부인은 어떤 시계를 찰까?’라는 기사에서 ‘명품 곧 미인’으로 저질 소비문화를 부추기고 있다.

이 기사를 보면 오세훈의 로만손, 나경원, 불가리부터 타이맥스까지, 박근혜, 66만원짜리 스틸 시계, 정운찬의 몽블랑, 국회의원들이 좋아하는 오메가... 이런 식으로 명품문화를 부추기고 있다.

                                    <이미지 출처 : 연합뉴스에서>

때로는 인기 연예인들을, 때로는 유명 정치인을 대상으로 마치 명품이 그 사람의 인품이라도 되는 듯 명품의 가치를 개인의 인품과 등질화시켜 소비문화를 부추기기고 있다. 상업주의와 결탁한 황색 저널리즘의 효과는 예상외로 심각하다. 드라마의 인물과 실제 인물을 구별하지 못하는 순진한 사람들은 언론의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광고에 마취되어 명품문화에 오염되고 있다. 오죽하면 수능을 마친 고 3학생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더니 ‘성형수술’이라고 했을까?
명품을 구입하기 위해 회사 공금을 횡령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카드빚을 내기도 하고 어린 여학생이 제 아버지뻘 되는 중년 남자와 원조교제를 한 돈으로 명품을 구입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바로 잡아야 할 언론은 ‘명품’이나 ‘럭셔리’나 ‘엔틱’이나 ‘노블레스’와 같은 단어를 남발하며 소비자들의 욕망을 부추기고 있다.

여성들은 왜 명품에 목을 매는 것일까?

첫째 자기과시 욕구 때문이다.

자기 과시욕구란 병든 사회, 감각주의 사회가 만들어 놓은 마취현상에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사실보다 자신을 크게 나타내어 보이려는 욕심에서 나타나는 문화다. 내용보다 형식을, 본질보다 현상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상대방에게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로 실력이 아닌 외모나 명품으로 남에게 돋보이려는 경향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런 욕망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열등하다는 의식 때문에 이를 보상하고자 하는 심리적 기재에서 나오는 것이다.

둘째 허영심 때문이다.

허영심이란 자기 분수에 넘치고 실속이 없이 겉모습뿐인 마음으로 필요 이상의 겉치레를 하는 욕심이다. 이런 마음은 허영에 들뜬 자기 억제가 약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세다. 히스테리를 일으키기 쉬운 성격, 자기중심적이며, 감정이 쉽게 변하고, 암시에 걸리기 쉬운 사람들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심리다.

셋째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명품이란 자본과 언론이 만든 병든 문화다. 승지독식주의, 일등 지상주의가 만드는 사회는 승자나 일등을 제외한 나머지는 피해자가 된다. ‘내가 학벌이나 공부는 뒤지지만 의복이나 외모로는 뒤질 수 없다’는 잘못된 경쟁의식이 몸짱이나 얼짱 혹은 명품 구입의 욕구로 나타난다. 심리적으로 속이 비어 있는 사람, 열등의식이 있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증세다.

                                          <이미지 출처 : 뉴시스에서>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라는 말이 있다.

‘가격이 오르는데도 자기 과시욕과 허영심으로 수요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무조건 남의 소비경향을 좇아간다고 해서 ‘소비편중현상’이라고도 한다. 명품이라는 사회병리현상이 그렇다. 이런 병든 문화를 부추기고 만든 장본인은 바로 자본과 언론이다.

무너진 교육, 언론의 대회개운동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고칠 수 없는 만성 질환이다. 돈벌이를 위해서란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황색 저널리즘이 있고 철학이 없는 우민화 교육을 하는 학교가 있는 한 명품 신드롬은 영원히 고칠 수 없는 고질병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장면. #1

하교하는 학생들로 만원이 된 시내버스 안

발 디딜 틈도 없는 버스 안에는 학생들의 잡담소리,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시장판을 방불케 한다. 존칭도 붙이지 않는 학교선생님의 흉을 보는 소리. 남자친구가 어떻다느니 하는 소리가 악을 쓰듯 들리고 그 와중에 자리를 일찌감치 차지한 학생은 다리를 꼬고 앉아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고 있다. 곁에는 다리가 편치 않아 보이는 할아버지가 손잡이를 잡고 가까스로 버티고 있지만 자리 양보 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다. 공중도덕이니 예의 같은 것 따위에는 버스 안에서는 없다.

장면. #2

골목을 걷다보면 몇몇 학생들이 교복을 입은 채 담배를 피워 물고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어른들이 지나가도 상관 않는다. 교복을 입은 채로 차도를 무단 횡단하는 학생도 있다. 길거리에 아무 곳이나 가래침을 뱉기도 하고 담배 갑이나 과자 껍질을 아무 곳이나 버리기도 예사다. 교복을 입을 채 남녀 학생이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이나 다솜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학생들도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지만 지나가는 행인들도 이들의 행동을 하나같이 못 본 채한다.

장면. #3

교실 안. 선생님은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는데 여기저기서는 엎어져 자고 있다. 어떤 아이는 옆에 앉은 학생과 끊임없이 잡담을 나누고 있다. 선생님이 눈치를 주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참다못한 선생님이 다시 주의를 주면 기분 나쁜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한마디만 더하면 책상을 차고 교실을 뛰쳐나갈 기세다. 구석에 앉은 한 학생은 휴대폰을 꺼내 열심히 만지작거린다. 문자를 보내고 있는 모양이다. 선생님도 지쳐서 못 본 채 한다. 교실 구석에는 여기저기 휴지들이 뒹군다. 휴지를 아무 곳에나 버리는 게 습관이 된 듯하다.

장면. #4

가방을 메고 나가면서 “엄마 돈!” 무슨 돈이냐고 몇마디만 물으면 신경질적인 언사가 튀어 나온다. 부모와 대화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부모는 아이들 앞에 죄인이다. 부모와 자식 형제간의 관계며 예의 따위를 얘기할 수도 없다. 아침부터 밤 10시까지 학교에서 고생하는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참아 주는 게 좋은 부모라고 생각한다. 자녀가 수험생이면 부모도 함께 수험생이 된다. 집안에서 발소리도 죽이고 부부싸움도 자제해야 한다. 


자녀가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부모의 분신으로 생각하는 자녀관은 아이들을 병들게 한다. 하나 아니면 둘, 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딸에게 힘든 일, 거슬리는 말을 할 수 있겠느냐는 배려(?)로 아이들은 버릇없이 커 간다. 아무리 잘못한 일도 100점만 받으면, 공부만 잘하면 모든 걸 용서하는 가정교육에 아이들은 인간관계며 윤리도 모르고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존재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옳고 그른 것,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은 지 오래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출세를 위해, 성공을 위해서라면 버릇쯤이야 문제될 수도 없다. 그런 자잘한 것(?) 따위는 커면 다 고칠 수 있다는 믿음에 아이들은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가슴은 없고 머리만 있는 아이들, 일등만 하면... 일류대학에만 입학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양보하는 교육으로 우리사회는 병들어 가고 있다. 친구나 이웃에 대한 배려나 나의 언행으로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 할 것이라는 마음 따위에는 관심도 없이 자라나는 아이들. 나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 내 부모와 우리가 소중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나밖에 모르는 마마보이로 자라는 아이들... 사회성도 없고 인간관계도 좋지 못한 인격자가 어떤 사회, 어떤 직장에서 환영을 받을 수 있을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은 한없이 무력하고 나약한 존재로 병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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