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는 이야기2012.01.11 07:00



아침에 일어나 글을 쓰고 있는데 딩동~  딩동~ 벨이 울렸습니다.
택배 아저씨였습니다. 문을 열었더니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으로부터 생일케익과 예쁜 카드가 왔습니다.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평소 교육과학기술부 발전을 향한 귀하의 관심과 애정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늘 행복한 가정과 웃음 꽃 활짝피는 하루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이주호 -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습니다. 

교과부장관이...왜...?
평소 교과부에 쓴소릴 많이 했
다고..? 

나는 교과부가 하는 일이 참 싫습니다. '교과부가 진정으로 교육을 살릴 의지만 있다면 우리교육이 이지경이 됐을까?'하는 섭섭한 마음 때문입니다. 입시경쟁교육, 성적지상주의, 학교폭력문제... 등등 산적한 교육문제가 교과부의 철학부재가 일조했다는 생각을 하면 교과부가 좋을 리 없습니다. 

결국 힘없는 교사가 할 일이라고는 전교조에도 가입도 해 보고, 언론사를 함께 만들고 ,사회교육을 위해  노동자들을 위한 학교를 만들고 신문에서 방송에서 수없이 외쳐보았지만 달라진거라고는 없었습니다.

아니 날이갈수록 학교는 더 삭막해지고 경쟁과 폭력이 난무하는 곳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화가 나 정년 퇴임 때
개근상처럼 주는 훈장까지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교과부 장관이 주는 생일선물이라...? 
사실은 교과부장관이 저 같은 사람에게 생일선물을 보낸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가족이 교과부에 근무하면 가족 중 한사람의 생일 날, 장관이 선물을 준다는 걸 아들에게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교육과 저는 참 묘한 인연인 것 같습니다.
척박한 교육, 무너지는 교육을 바꿔보겠다고  뒤늦게
교육운동에 뛰어 들어 구속, 수배를 당하면서 가난하게 살아 온 아버지의 삶을 반복하기 싫다며 아들은 공무원 시험을 쳤습니다.

결국 간다고 간 곳이 교과부였습니
다. 지금은 아들이 교과부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딸은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아버지가 살아 온 길을 밟고 있습니다.

저는
퇴임 후에도 교육의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교를 중도 포기하고 갈 곳없는 아이들에게 제자오 ㅏ선생님들이 함께 쉼터를 만들고 있습니다.

마산에 있는 '별초학교'라는 야학입니다.
이제 별초학교는 '보리 학교'로 이름을 바꾸고 법인 신청을 했습니다. 
조만간 사회적 기업으로 신청해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의 쉼터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내가 교육관련 일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재직 기간에 못다한 얘기를 이제 함께 늙어가는 제자들에게 아니 제자들의 자녀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라도 될 수 없을까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40년의 교직생활... 퇴임 후 교육과 관련한 글을 쓰고... 딸은 초등학교에... 아들은 교과부 소속....


저는 정말 교과부 장관에게 좋은 선물하나 받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선물,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선물....  어른들에게 세상 돌아가는 진실을 알려주는 교육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선물... 그런 선물을 받고 싶습니다.

폭력없는 학교, 학생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인권을 존중받고 성적 때문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학생이 없는 학교... 그런 학교를 만들겠다는 정책... 그게 제게 보낸 생일케일보다 더 값지고 소중한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웃음을 잃어버인 학생들... 천문학적인 등록금 때문에 알바에 휴학을 반복하고 있는 대학생들... 학교폭력으로 괴로워 하고 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그런 정책, 제게는 그 어떤 선물보다 값진 선물일 것입니다. 

내년 이맘 때쯤에는 교육하는 학교, 아이들이 맘껏 웃으며 공부할 수 있는 행복한 학교가 만들어 지는 정책을 발표했다는 그런 소식을 선물로 받고 싶습니다. 

가슴 따뜻한 선물 .. 우리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그런 아름다운 선물을 받고 싶습니다.  



  
아들 덕에 교과부장관으로부터 생일케익까지 받은 생일날을 보내며...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1.15 05:54




<아들의 승진 소식에...>

"아버님 남우 아빠 승진했데요!"


며느리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들의 승진 소식에 밥을 먹다말고 목이 메였다.
한창 사춘기 때인 고등학생 시절 전교조관련(가톨릭회관 소식에에 쓴 글을 서거법위반으로...)으로 수배가 떨어져 아파트 앞에서 지키고 선 사복경찰을 보고...

"아버지가 하시는 일, 옳은 줄은 알지만 왜 우리 아버지여야 합니까?"라던 아들....(당시 나는 전교조 경남 지부장 임기가 끝나, 민주주의 민족통일 경남연합상임의장을 맡고 있었다. 당시 전국연합 조직의 하부조직인 경남연합은 농민, 노동자, 학생, 전교조 등을 결합한 해방 후 최대 거대 연합 조직으로 울산연합과 서부경남, 동부경남을 하나로 묶은 연합조직이었다) 

혼자서 5일가족 생계를 책임맡고 있던 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직장에서 쫒겨나는 것도 모자라 수배까지 당해 전화를 걸어도 도청을 당하고 집 앞에 사복경찰이 지키고 있던 모습을 보고 항(?)의조로 하던 말이다. 


딸은 고등학생. 아들은 중학생이었던 시절... 5년의 해직기간동안 외식 한 번 제대로 시켜주지 못하고 쫒겨 다니던 시절. 아이들은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그래도 특별히 원망 한 번 하지 않고 건강하데 자라중 아이들...
남의 아이들 살리자고 내 아이는 팽개친 아버지가 속으로는 얼마나 야속했을까? 
덕분에 아내까지 보험 아줌마로 내 몰았으니....

그런 한이 있었는지 군대를 제대하자 말자 공부원 시험준비를 시작하더니 7개월만인 2006년. 서울시청직과 국가직 7급을 동시에 합격해 우리 부부를 울먹이게 만들기도 했다.... 다 하는 취업이고 승진이지만 내겜 이런 사연이 있어 혼자서 식당에서 밥을 먹다 목이 메였던 것이다. 

아들은 사회운동가가 됐으면 했던 애비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직장을 구하고 아이의 아버지가 되더니 지극 정성으로 가정적인 남편, 아버지 노릇을 하는 모습을 보고 아들이 그렇게 대견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런 아들... 그 아들이 4년만에 승진을 했다는 소식은 애비 노릇을 제대로 못한 나로서는...  

이런 일이 있으면 아내와 축함께 축하라도 해줘야 하는데... 객지에서(가족이 청주로 이사를 가 버리는 바람에 고향이 객지가 됐다) 그것도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저녁끼니를 떼우려고 식당에서 전화를 받았기에...

<내가 떠돌이가 신세로 사는 사연...>


정년퇴직을 하고 이제 아내에게 속죄(?) 하는 마음으로 함께 살아야 하는데 이 못말리는 역마살 때문에...
"선생님 우리 함께 일해 봅시다"는 교장선생님의 간절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해 수술한 지 겨우 일년.
"우선 살고부터 봐야지요"
"난 모른다. 당신 건강 당신이 책인져라" 아내의 따가운 잔소리를 뒤로하고 보따리를 싸, 정착한 곳이 태봉고등학교 기숙사다. 방학인데도 별초야학법인추진 때문에 학교 기숙사에 와 있다 혼자 식다에서 저녁을 먹다 며느리 전화를 받은 것이다 .

대안학교설립 추진 팀장을 맡았다는 이유로 그리고 모든 학교는 대안학교로 바뀌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별초 야학을 설립을 고집하는 이유>
 
교육운동이라고 어줍잖게 한다면서 가족까지 팽게친 내게는 말못한 사연이 있다. 중학교를 도저히 다닐 수 없었던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 때문에 야간 사립중학교에 알바를 해가며 다닐 때였다. 알바라 해야 요즈음처럼 자리가 많은 것도 아닌 시절. 죽도록 일해도 일당을 못받기 일쑤이다 보니 공납금을 내지 못해 친구들은 교실에서 시험믈 치는데 쫒겨나와 나무 밑에 앉아 울고 있었다.

그 때 수학선생님이셨던,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태혁선생님!
친구를 시켜 들어와서 시험을 치란다. 선생님이 당신의 월급으로 밀린 공납금을 대납해주신 줄도 모르고 시험을 치뤘다. 선생님도 넉넉하지 못한 가정이라는 것과 공남금 대납소식을 졸업 후 오랜 세월을 지나고 나서야 알았을 때는 이미 선생님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빚을 지고 산다. 그러나 내겐 이런 빚이 있어 전교조 파동 때도 탈퇴각서를 끝내 쓰지 못하고 해직됐다. 

정년퇴임을 한 사람은 기간제도 허용 안 된다느 규정 때문에 태봉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겨우 상담이나 인턴십 안내자 역할을 해주면 서 1년이라는 세월 을 보냈다.   

<별초 야학을 살려주세요>

태봉학교에서 더부살이를 한 지 1년. 대안학교인 태봉에서조차 퇴학을 당하는 학생을 보고 '저 버려진 아이를 어쩌랴...?' 
'학교가 포기한 학생들을 우리가 한 번 맡아보자'고 시작한 게 야학이다. 이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선생님과 자원봉사를 나선 선생님들...  선생님의 뜻이 그렇다면 제가 돕겠습니다. 30평 남직되는 교실을 전세내고 월세까지 감당하고 나선 제자... 이런 사람들의 의기가 투합해 시작한 것이 별초학교라는 야학이다.(별초야학 카페 주소(http://cafe.daum.net/hi-changdong)
별초야학후원구좌 : 경남은행  계좌번호  5 0 1 - 2 2 - 0 4 9 3 5 5 3  별+초학교

문을 연지 6개월. 식구가 하나 둘 늘어 11명이나 됐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 법인으로 가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소식이 알려지자 약사이기도 한 이옥선창원 시의원의 주선으로 마산 약사회에서 도움을 주기도 하고 미국에서 무료로 노인 복지관을 운영하고 있는 김혜경시인( http://hmmh.co.kr/ )도 자원해서 후원 이사가 되겠다고 연락이 왔다. 

마산 YMCA 시민사업위원회와 전교조 마산지회, 경남대학교 교수님들, 이옥선창워시의원, 조형래, 여영국 도의원도 함께 참석하겠단다.  

내가 해직기간 중 이름없이 후원금을 내, 우리 가족이 버틸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주신 선생님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은사님들...  살아 오면서 힘이 되어 준 제자들... 지인들.. 이런 분들의 빚을 만분의 일이라도 갚는 길이라면... 하는 마음으로 대안학교는 꼭 살리고 싶다. 건강이 허락만 된다면 이 지역의 청소년 보금자리로 키워,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보살펴주는 쉼터 학교로 키우고 싶다. 이 일만 끝나면 이제 손자들과 친구도 하고 아내에게 돌아가 미안하다고 사과라도 해야지...(그 때는 받아줄 지 모르지만..) 

아들 승진소식에 들떠 안 해도 될 온갖 얘길 다 털어놓은 것 같다. 

얘기가 나온 김에 이 글, 읽으시는 분들 중 별초 야학에 동참을 원하시면 함께 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오늘 1월 21일 대우백화점 7층 식당(이름은 나중에...)에서 모임을 합니다. 위에 거론한 사람들과 그리고 함께 하시겠다는 분. 누구나 환영합니다.       

지난 10일은 아버지의 68회 생일을 축하한다고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아들 딸이 전부였던 가족이 이제 아들, 딸 부부 외손자, 손자 이렇게 늘었습니다. 

별초 야학 교실과 운영모습(학교위치: 마산 창동 부림시장입구 송월타올 3층) 

아래 사진은 박경화선생님과 별초가족의 집단 상담시간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