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2013.02.06 07:00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외국 남성과 한국 여성의 비밀 음란파티'뿐만 아니다. 그 기사의 사실여부를 덮어두고라도 우리나라 국민들의 영어학습 열풍은 가히 필사적이다. 기저귀를 찬 영아가 고액과외를 받는가하면 미국식 발음을 잘하기 위해 혓바닥 수술까지 시키는 부모도 있다.

 

어머니들의 치맛바람만 탓할 일이 아니다. 자식의 학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파출부 노릇을 한다는 소리는 흔해빠진 얘기다. 이제 조기유학이나 기러기 아빠라는 신조어도 우리 귀에도 크게 낯설지 않다. 영어만 잘하면 일류대학이나 취업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영어에 대한 애착 때문일까? 인수위원회장의 "'프레스 후렌들리'에서 시작된 영어 사랑은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이 나서서 "몰입식 교육을 국가적으로 추진할 계획 없다."는 진화를 하면서 진정되긴 했지만 이명박정부의 영어 사랑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포스텍은 2010년부터 대학내 강의와 회의를 영어로 진행하는 영어공용화 켐퍼스를 추진하고 학부전공과목과 대학원 강의를 100% 영어로 진행하고 학위논문도 쓰게 했다. 삼성전자도 2011년부터 영어 공용화방안 계획을 추진한 바 있다. SK와 LG(LG는 뒤에 영어 공용화계획을 없었던 일로 하기로 결정...)도 영어공용화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했다.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 유치를 계기로 송도국제도시를 영어 공용화 도시로 만드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보도도 심심찮게 흘러 나왔다. 

 

 

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장래희망인 학생이나 시인이 되는 것이 꿈인 학생도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영어공부를 하는데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영어는 일류대학으로 가는 지름길이요, 좋은 결혼 상대자를 만나는 길이기도 하다. 취업에 우선권이 주어지는가 하면 좋은 직장을 구하는 첩경이다. 평생 외국인과 상대할 일도 없는 공무원 시험이나 대학 편, 입학시험에도 토익점수로 당락이 결정된다. 세상이 바뀌는데 무슨 시대에 뒤떨어진 잠꼬대 같은 소릴 하느냐고 핀잔을 할 사람도 있겠지만 영어 실력은 적어도 우리사회의 인간의 가치를 좌우하는 바로미터다.

 

문화지체현상에 빠진 노인의 망령된 소리가 아니다. 위대한 조상. 적어도 언어와 문자에 한해서만은 우리 조상들은 세계에서 그 어떤 민족보다 위대한 문화를 창조하고 다듬고 지켜왔다. 수천년간 중국문화의 영향권에서 살아오면서도 우리 조상들은 우리 고유의 독창적인 언어를 지키면서 글까지 만들었다. 청의 지배 하에서는 일부 소수의 지배세력이 그들의 언어를 고급언어로 그리고 일제 식민지시대는 역시 소수의 지배계급이 그들의 언어를 모국어로 섬긴 일이 있지만 민족과 운명을 함께 해 온 민초들은 우리의 문화유산인 우리말과 우리 글을 지켜 온 것이다.

 

 

식민지시대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소수의 친미세력들은 영어가 세계 공용어이기 때문에 영어를 모국어로 섬기고 싶어 한다. 그들은 신자유주의라는 강자의 논리가 진리라고 믿고 서구의 사상, 종교, 언어까지 동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들은 교육을 상품이라고 우기고 교육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길이라고 강변한다. 외국인 학교를 세우고 국어도 국사도 가르치지 않은 초·중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학력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민족문화에 대한 긍지나 자부심은 물론 한글에 대한 애착도 관심도 없다.

 

문화 사대주의자들은 오직 내게 이익이 되는 것은 선이요, 불이익은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처신하고 있다. 미국의 힘을 부인하자는 것이 아니다. 영어가 세계 공용어라는 사실을 몰라서도 아니다. 조상들이 아끼고 다듬어 온 문화유산을 없인 여기는 민족치고 잘 되는 나라는 없다. 한 나라의 말과 글은 단순히 의사를 전달하는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역사와 가치관 그리고 민족의 혼이 담겨 있는 것이다.

 

최근 길거리의 간판을 보면서 우리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얼마나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는가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열등의식에 젖은 사람이 큰일을 할 수 없듯이 제나라 말과 글을 업신여기는 사람이 어떻게 그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있는가? 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사람은 헐벗고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소중한 줄 모르는 사람, 자기 민족의 문화유산을 귀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교육자들 중에 ‘내가 지금과 같이 가르치면, 내가 지금과 같이 학교를 관리하면 내 제자가 훌륭한 인격자로 자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교육을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왜 이렇게 많은 지식을 가르쳐야 하는가?’, ‘제자들에게 열심히 문제풀이를 해주어 일류대학에 하나라도 더 보내는 게 교육자로서 할 일을 다하는 것일까‘를 회의에 젖어 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지식기반사회에서 교육과정이 길러내고자 하는 인간상은 어떤 모습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그 많은 지식을 습득한 사람들이 ‘왜 향락적이고 소비 지향적이고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로 사는 사람이 되는지, 일류대학을 나와 사회지도층이 되면 왜 도덕결핍증 환자(?)가 되기도 하는지……. 그런 문제를 교육을 통해 고칠 수 있다는 신념을 실천하지 못하는지...’ 이런 고민을 해 본 교육자들은 얼마나 될까?

부끄러운 얘기지만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나 자신이 가르치는 내용이 기득권자의 논리, 자본의 논리에 순응하는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해 보는..’ 그런 고민을 하는 교사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다. 내가 교사이니까, 내가 전공한 과목을... 교과서에 담긴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교사가 할 일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의 교사들이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부모들은 어떨까? 이 세상의 부모들 중에서도 ‘내 아이가 현재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배우면 어떤 모습으로 자랄까?’ 그런 회의를 해 보는 부모들은 몇이나 될까? 학교에 맡겨 놓으면 어련히 첨단의 지식과 도덕과 예의를 배워 훌륭한 인격자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을까? 아니면 내 아이만 일류대학에 갈 수 있다면.... 경쟁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어떤 인격자로 길러질 것인가는 생각할 관심도 여유도 없다는 것일까?

학교에서 길러내고자 하는 인간상을 교육과정은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교사들은 ‘교과서만 열심히 가르치면 나의 제자가 훌륭한 인격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학부모들은 자녀를 학교에 맡겨 놓기만 하면 바람직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음대로 학교는 그런 인간을 양성할 수 있을까?

교육이란 그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을 양성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봉건제 사회에서는 봉건제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을...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인간, 그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양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원하는 인간형은 어떤 인간일까? 자본주의 학교에서 길러내고자 하는 인간은  '홍익인간(홍익인간의 핵심은 '이타주의')의 이념' 아래 '지덕체를 겸비한 조화로운 인간의 양성'(교육법 제1조)이다.

                                                    <이미지 출처 : 교육희망에서>

오늘날 학교가 이런 인간을 길러내고 있다고 믿어도 좋을까? 학교의 교훈이나 급훈을 보면 기러내고자 하는 인간상은 주로 '근면한 사람' '정직한 사람' 또는 '성실한 사람'이다. 학교 교훈이 왜 천편일률적으로 '근면'이나 '정직' 혹은 '성실'일까? 식민지시대 일제가 학교를 세운 것은 조선인민들을 똑똑한 인간을 양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인(황국신민)으로 키우기 위해서였다.

근면이나 정직, 성실은 조건이 어떤가에 따라 전혀 다른 뜻을 지닌 이데올로기가 될 수도 있다. 의식이 없는 노동자, 의무만 있고 권리가 없는 노동자에게 근면이나 성실한 사람은 자본이 원하는 인간형이다. 정직, 성실, 근면한 인간은 학교가 자본이 원하는 인간을 양성하겠다는 증거다.


아이들을 키워 본 부모라면 말을 배우는 단계의 아이들의 지칠 줄 모르는 지적 호기심을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많은 호기심 중에 ‘선악에 대한 관심 예쁜 것과 더러운 것, 좋은 것과 싫은 것, 귀한 것과 천한 것…….’ 그런 것에 대해서 말이다. 단순한 것은 예외지만 복잡한 것은 겉으로 보아서는 시비분별이 어렵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특히 산업사회 이후 사회문제는 복잡하게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이렇게 사리를 분별하고 시비를 가리고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는 것은 개인의 됨됨이요, 그 사람의 인격이다.

                                                         <이미지 출처 : 교육희망에서>

요즈음 TV를 보면 온통 서바이벌 게임투성이다. 승자만이 살아남는 세상... 교육을 비롯해 모든 게 상품이요, 약자는 공존이 아니라 제거의 대상이 되는 가치가 지배하고 있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왜 아이들에게 시비를 가리고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가치관을 길러주지 않을까?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 혹 사리분별을 할 줄 알고 시비를 가릴 수 있는 세계관을 가진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 자본이 원하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은 아닐까? '방황하는 교육!' 그것은 학교가 피교육자를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에 대한 정체성의 부재가 만든 결과가 아닐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