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2.07 돈 앞에 무릎꿇은 한겨레신문, 동정해야 하나? (47)
  2. 2011.01.29 문화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 (29)




‘문화방송 시청자들께 드리는 글’

아침에 신문을 펼치다가 하단 MBC 통광고를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혹시 우리 집에 조선일보나 동아일보가 잘못 들어 온 게 아닌가 하고... 어떻게 한겨레신문에서 이런 광고를 실을 수가 있을까?

문화방송 시청자들께 드리는 글

‘문화방송노동조합의 불법파업으로 방송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MBC노동조합은 지난 1월 30일 불법파업을 강행했습니다. 임원과 국장을 교체하라고 요구하다가 뜻이 관철되지 않자 느닷없이 사장퇴진을 내걸고 파업에 나선 것입니다.....

1년 8개월만에 또 불법파업에 나섰습니다.

이런 파업에 찬성의사를 밝힌 사람은 전체직원 1,600여명 가운데 533명에 불과합니다....
1등 방송 MBC가 훼손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문화방송은 전방송사가운데 시청률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체널선호 조사에서도 1위를 기록했습니다....

재발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공영방송의 존재이유는 시청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방송하는 것입니다.....

                                                                                       2012. 2월 6일 MBC 문화방송


뻔뻔스럽다 못해 추악하기까지한 MBC!

노동조합이 불법파업을...? 그렇다면 지금까지 권력의 시녀노릇을 마다않고 저질러온 편파왜곡보도는 합법이었나?

1등방송...?

유신헌법을 지지하고 광주시민을 학살한 쿠데타세력을 옹호, 지지한 방송이 1등방송이면 진실을 보도하는 방송은 몇등 방송인가? 참으로 후안무치한 MBC는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를 ‘시청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송이기 때문이란다. 언제 MBC가 시청자들을 위한 방송을 제대로 한 일이 있는가? MBC는 한겨레신문 독자가 이 광고를 곧이곧대로 믿는 정신박약아로 취급하는 것이 아닌가?


이 광고를 본 순간 나는 MBC의 거짓광고에 대한 분노보다 한겨레신문이 어떻게 이런 광고를 낼 수 있는가하는 안타까움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MB정권에서 바른말 하는 언론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가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한겨레신문이 이런 광고를 게재했다는 데는 동정심보다 오히려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나만의 감정일까?

솔직히 말해 내가 한겨레신문을 보는 이유는 종이신문을 읽고 싶어서가 아니다. 인터넷에서 얼마든지 무료로 기사를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나 한 사람이라도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자위심이 한겨레 종이신문을 구독하고 있는 이유다. 4년 전에 나는 경향신문을 보다 한겨레도 어려운데 하는 마음에서 지난해 가을부터 바꿨다. 여행을 가면 시외주차장에서 일부러 경향신문이나 한겨레신문은 찾거나 사서 읽기도 한다.

나 하나가 경향신문이나 한겨레신문을 구독한다고 별 보탬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렵게 신문을 발간하고 있는 신문사에 대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예의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 한겨레 신문에 MBC의 광고는 충격을 너머 분노를 자아내게 했다. 얼마나 어려웠으면...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꼭 이런 광고까지 게재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가 하는 마음도 숨길 수 없다. 또 종편출범 후 한겨레신문뿐 아니라 걍향신문이며 지역언론이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짐작 못하는 바는 아니다.

우리는 지난 1974년 12월, 박정희 유신 정권의 언론 탄압으로 동아일보에 광고를 내기로 했었던 회사들이 무더기로 해약하고, 그 결과로 동아일보에서는 광고를 채우지 못한 부분을 백지로 내보내거나 아예 전 지면을 기사로 채워버렸던 ‘동아일보 백지 광고 사태’를 잊지 않고 있다. 지금은 자본이나 권력의 하수인이 된 동아일보지만 당시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는 무려 7개월간 이어져 국민성금으로 지지를 보냈던 감동을 잊지 않고 있다.

한겨레신문! 그 창간의 감동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지난 87년 '보도지침'을 통한 권력의 일상적인 제작 지시로 신문이 언론으로써 거의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을 때 열화와 같은 국민독자들로 창간한 신문이 한겨레다. 그런 감동을 잊지 못하고 있는 독자라면 오늘 신문에 실린 광고를 보고 실망하고 분노하지 않을 독자가 있을까? MBC광고를 마다하지 않는 한겨레 신문, 앞으로 한겨레신문을 믿고 광고상품을 구매하던 독자들의 신뢰는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1.29 23:33


    
고등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 보면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학생이 예상외로 많다.
청소년들은 세상 물정을 모른다. 몰라도 너무 모른다. 이유는 부모의 과보호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학교도 현실을 가르쳐 주지 않기는마찬가지다. '돈과 명예'를 함께 얻을 수 있는 화려한 직업. 청소년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스타는 원한다고 아무나 얻을 수 있는 성취지위일까?

                                 <사진 : 이하 모든 사진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오늘날의 메스 미디어의 영향은 부모나 교사의 영향을 초월하다. 자기 방에다 좋아하는 스타의 사진으로 도배를 하거나 펜클럽을 만들고 그들을 만나기 위해 밤을 새워 쫓아 다니는 아이들도 있다. 이제 그런 문화가 텔레비전에 등장해도 별로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청소년들의 삶의 한 부분이 되고 롤 모델이 되기도 하는 스타. 그들은 누구인지 살펴보자. 

문화란 무엇일까? 문화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없이, 속성이나 본질애 대한 이해없이 스타를 꿈꾸는 청소년. 오늘은 문화의 속성과 본질에 대해 살펴보자. 청소년들이 꿈꾸는 스타는 그 본질이 무엇일까?
청소년들의 눈에 보이는 스타는 본질이 아니고 현상이다. 그 본질이 자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할 때 순진한 청소년들은 문화라는 이데올로기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문화의 이데올로기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들이 무엇에 '익숙하다'는 것에 대해 살펴보자. '안다'는 것, 또 무엇에 익숙하다는 것은 단순히 '친숙함'의 의미만은 아니다. 그것은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친밀감'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메스미디어 문화의 속성을 자본은 백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문화가 그렇지만 TV의  드라마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내가 아는 사람, 내가 들어 본 노래, 더 나아가 나의 이상적인 여성상, 또는 남성상은 시청자들의 눈을 잡아 둘 수 있다. 특히 극중 인물과 실재인물을 구별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면... '스타'는 상품판매원으로서의 충분한 첨병 구실이 가능하다. 자본은 이러한 문화의 속성을 이용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자본의 논리에 복무하고 있는 것이다.


 얘기를 좀 더 단순화 시켜보자.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자본주의에서 텔레비전의 드라마 제작자는 PD가 아닌 '자본'이라는 사실이다. 자본이 없으면 연출도 조명도 없다. 드라마는 텔레비전의 순기능이나 역기능에 상관없이 자본의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에서는 '이윤의 극대화'는 곧 선(善)이다. 다시 말하면 자본은 속성상 '목적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결과가 이익이면 선(善)이고 결과가 손해면 악(惡)이 된다. 이와 같은 자본의 논리는 드라마의 제작에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드라마의 내용이 음란하냐? 아니면 폭력적이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시청률'이다. 시청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매출고'를 올릴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뜻이다. 

 '스타'도 예외가 아니다. 자본주의에서 스타는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자본의 필요에 의해서 스타는 생성되고 명멸한다. 드라마에서 말탄 왕자로 또는 악의 무리를 소탕하는 영웅으로 만들어진 스타가 등장하는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을 수 있지만 스타는 자본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스타의 재능을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만 그만한 미모와 능력을 가진 사람은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스타는 시청률을 높이는 자본의 요구를 소화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미디어가 가지는 다양한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지는 역기능은 순진한 청소년들로 하여금 희생을 강요받게 한다. 현대전에서는 군인이 아닌 약자인 여성이나 어린이가 더 많은 희생자가 되듯, 정보화사회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미디어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청소년이 된다. 교육의 위기를가 극복하지 못하고 입시위주의 교육이 반복되는 이유가 해결이 불가능 해서일까? 아니면 자본이 필요로 하는 인간양성의 요구에 충실하기 때문일까? 

 불의한 힘 앞에 살아 남을 수 있는 생존의 법칙은 스스로 힘을 키우는 길밖에 없다. 자연의 법칙은 적자생존이라는 법칙이 확인됐지만 인간 사회에서 생존의 법칙 또한 '힘을 얼마만큼 가지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힘이란 무엇인가? 그 힘이란 지식일 수도 있고 돈일 수도 있고 명예일 수도 있다. 

 지식도 힘이요, 권력도 힘이다, 미모(美貌)힘이요. 무력(武力)도 힘이다. 미분화된 사회에서는 학벌(學閥)이나 지연. 혈연도 힘이 된다는 것은 두 말할 여지가 없다. 

힘은 사회적 가치(돈, 권력, 지위 등 희소가치)의 배분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자본주의에서 힘의 본질을 이해 못하면 역시 일방적인 희생자가 된다. 기득권자는 이 힘을 수호(?)하기 위해 이데올로기를 이용한다. 종교라는 이데올로기로, 또는 철학이라는 이데올로기로, 또는 교육이나 도덕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체제수호를 정당화하고 현실을 정당화한다. 

 문제는 현상과 본질을 구별하는 안목이다. 문화가 그렇고 권력이 그렇고 예의도 도덕도 그렇다. 현상은 전부가 아니다. 부분이 전체가 아니고, 형식이 내용을 담지 못한다. 문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총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다.

힘은 생존의 법칙이다. 자연뿐 아니라 인간세사에도 예외가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본질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희생자가 된다. 그러기에 인간은 자기수준만큼의 더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그 정도 대접을 받고 살 뿐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