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2014.02.09 07:00


저녁을 먹으면서 본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이라는 프로그램!

 

아이들이 난리다. 이겨야 한다는 경쟁의식이 TV화면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출연자는 탤런트와 저명인사들의 자녀들이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 요즈음 아이들 참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맘이 편치 않다. 이긴 아이들은 좋지만 진 아이는 얼마나 맘이 아프고 상처를 받을까? 경쟁에서 지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 그렇다.

 

[이미지 출처 : 한겨레신문]

 

모든 경쟁은 선인가? 경기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고 경기 과정에서 승자와 패자가 가려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얘기다. 경기에서는 공정한 룰을 적용해 패자가 억울하다고 항의할 수는 없다.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경기규칙에 뭇시적으로 동의했으니 패배했다고 항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뭔가 맘이 편치 않다. 저 알토란같은 아이들에게... 저 어린 것들에게 패배의 아픔을 저렇게 아리도록 안겨줘도 될까? 나는 가끔 여성 권투나 킥 복서들의 경기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든다. ‘연약한 여성들에게 저렇게 무리한 경기를 시켜도 좋을까?’

 

소나 닭싸움을 보면서도 그렇다. 적의도 없는 말 못하는 짐승들에게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 죽음을 건 싸움을 시키는 게 사람으로서 할 짓(?)일까? 동물 학대는 아닐까? 그런 경기를 보는 사람들의 정서에는 문제가 없을까?

 

경쟁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사회 속에서 선의의 경쟁은 때로는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는 걸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데 붕어빵이나 도전 골든 벨 같은 프로그램이 정말 교육적인가 라는 문제는 다시 한 번 집고 넘어가야할 문제다.

 

우리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 구성원들은 참 다양한 소질과 취미와 특기를 가지고 있다. 다양성으로 표현되는 이러란 개성과 특기는 우리사회를 유지하는 저력이요 발전의 원동력이다. 그런데 한 줄로 세우는 경쟁이 우리사회의 지속적인 발전과 공존에 과연 긍정적이기만 할까 하는 문제는 또 다른 문제다.

 

<이미지 출처 : 레디앙>

 

암기에 뛰어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휘력이나 수리력에 남다른 재능이 있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은 건축에 어떤 사람은 예능에 또 어떤 사람은 봉사에 남다른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재능을 발휘한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나 산악인에게 수학공부나 죽도록 시킨다고 성취감을 가지거나 능력이 올라갈까?

 

붕어빵 얘기로 돌아가자. 그 프로에 등장하는 아이 중 컴퓨터를 잘하는 아이도 있고 노래를 잘하는 아이도 있다. 아버지를 닮아 연예인으로서의 소질과 재능이 있는 아이도 있고 달리기도 잘 하는 아이도 있다. 그런데 그런 잠재력을 가진 아이들에게 패배의 아픔을 안겨주는 게 교육적인가 말이다.

 

사람들은 어릴 때 심한 열패감이나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한다는 것은 평생 마음 속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는다. 한 줄로 세우는 학교, 성적으로 줄 세우는 서열화가 그렇다는 얘기다. 학생 들 중에는 저학년 때 공부를 못하는 학생도 고학년이 올라가서 잘 하는 학생도 있다. 그런데 한번 ‘공부 못하는 놈’으로 낙인이 찍히면 그 학생은 공부할 의욕을 느끼지 못하고 평생 무능한 인간으로 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레디앙>

 

영어 단어 몇 개 더 암기해 등수가 한 둘, 올라가는 것보다 사회성이나 인간관계가 좋고 부지런하고 성실한 자세로 살아 간다면 그게 어떻게 열등한 인간인가? 비록 영어는 못하더라도 달리기를 잘하고, 수학문제를 잘 풀지 못하더라도 음악에는 남다른 소질을 가진 학생도 있지 않은가? 국영수를 못하는 인간을 사람의 가치까지 등급을 매기는 것이 과연 온당하고 공정한 일일까? 

 

왜 어른들은 왜 순진한 어린이들까지 우열을 가리고 서열을 매기지 못해 안달일까? 그것도 개성도 소질도 취미도 다양성도 무시한 한 줄 세우기를... 그래서 순진한 학생들에게 자만심과 열패감을 갖도록 가르치는 게 교육적일까? 조금 부족하고 모자란다고 불량품 취급하는 것은 교육적이지도 못하고 어른답지도 못하다. 공정하지 못한 경쟁으로 서열을 매겨 결과로 정당성을 가리는 막가파식 경쟁은 이제 그칠 때도 되지 않았는가?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책 보러 가-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학부모님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2011학년도 교원능력개발평가 시행계획에 따라 학부모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고자 합니다.

이번에 실시하는 ‘자녀의 학교생활에 대한 학부모만족도 조사’는 온라인으로 실시합니다.

그 결과에 대한 비밀은 절대 보장되며 평가자(학생, 학부모)에게 어떠한 불이익도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

 

학부모들은 지난 연말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보낸 ‘자녀의 학교생활에 대한 학부모만족도 조사’라는 이런 내용의 안내문을 받은 일이 있을 것이다.

 

안내문을 읽어보면 ‘소속 교육청 학부모서비스 홈페이지로 이동한 후, 왼쪽에 위치한 ‘교원능력개발평가 학부모만족도조사’ 배너를 클릭‘해 만족도 대상 선생님을 선택한 후 하나를 선택케 했다.

 

1. 선생님은 자녀가 흥미를 갖고 학습에 참여하도록 준비한다고 생각하십니까?

2. ‘선생님은 자녀가 학습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고 생각하십니까?

3. 선생님은 자녀가 학습에 성취감을 갖도록 지도한다고 생각하십니까?

4. 선생님은 자녀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매우 그렇다. 그렇다. 보통이다, 그렇지 않다, 매우 그렇지 않다. 잘 모르겠다. -

 

#. 교사 1

 

교사 : 훌륭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이지요?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학생 1 : 대통령요.

학생 2 : 검사나 판사요!

학생 3 : 남을 위해 봉사를 많이 해 이웃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학생 4 : 돈을 많이 벌어서 재벌이 되는 거예요.

 

#. 교사 2

 

시험점수를 잘 받는 요령을 알려주겠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정답을 찍을 때 꼭 틀린 문항을 찾아서 찍는 멍청한 학생이 있다. 운동선수들을 봐! 그들은 아침부터 밤 10시까지 교실에서 공부한 학생보다 시험점수를 더 잘 받는데 그 이유가 뭘까? 잘 생각해 봐! 아무것도 모르면 차라리 정답지에 1번에서 25번까지 같은 번호에 마킹하는 게 더 유리하다는 말이야!

헷갈리는 보기문항이 있으면 설명지문이 긴 게 정답일 확률이 높은거야!

 

자~ 그럼, 오늘은 문제집 00쪽부터 풀이를 시작하겠다..... 실력이 있는 선생님들은 교과서를 충실하게 가르칠 준비를 하지 않는다. 일년동안 배울 교과서는 한두달 안에 진도를 다 나간다. 그리고 문제집을 들고 들어가 수업시간이나 보충수업시간에 죽기 살기로 문제풀이에 매진한다.

 

‘#. 교사 1과 #교사 2’ 중 어떤 사람이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을까?

 

‘#. 교사 1’ 선생님이 진도를 나가거나 문제풀이를 하지 않고 조금만 길게 예기하면 “선생님! 공부합시다”라는 이야기가 튀어나오는 게 우리교실의 현실이다.

 

교육과정 정상화!

 

선생님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평생동안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의 하나가 ‘교육과정 정상화’다. 도대체 교육과정 정상화란 무슨 얘긴가?

 

‘국어시간에는 국어를 하고 수학시간에는 수학을 하는거.... 50분 수업에 확실하게 50분을 다 채워라... 수업 종이 친 후 천천히 들어가 마침 종도 울리기 전에 나오면 안 된다....’

 

더 쉽게 말하면 교육과정 정상하란 ‘시간표대로 수업을 충실히 하라’는 말이다. 장학사들이나 교장선생님들은 말한다. ‘교육과정만 정상적으로 운영하면 학교위기는 없다.’ 교육과정을 그런데 뭐가 이상하다.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지 않는 선생님도 있을까? 정답은 ‘거의 없다.’ 그런데 왜 학교는 위기인가?

 

실력 있는 선생님! 존경받는 선생님이란 어떤 선생님일까?

 

성적 지상주의, 입시위주의 교실에서 훌륭한 선생님은 ‘#. 교사 1’가 아니라 ‘#. 교사 2’다.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다 안다. 그걸 모르면 바보다. 그런데 왜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 교사 2’과 같이 수업을 하지 않고 ‘#. 교사 2’와 같이 수업을 할까?

 

 

연말이 되면 학교에서는 학부모들에게 ‘가정통신문’이라는 걸 보낸다. 앞에서 본 학부모평가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교원평가제’란 학교교육이 위기라는 현실에서 ‘교사들의 자질향상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오늘날 학교폭력이며 교실이 난장판(?)이 된 이유가 ‘교육과정을 제대로 운영하지 않는 무능한 교사 때문일까? 교사의 자질부족으로 학교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아 학부모들은 사교육비를 감당하지 못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가?

 

4가지 설문 중 ‘매우 그렇다. 그렇다. 보통이다, 그렇지 않다, 매우 그렇지 않다. 잘 모르겠다’ 6가지 설문에 응답해 좋은 선생님, 실력 있고 자질 높은 선생님을 찾을 수 있을까? 위기의 학교, 무너진 교실을 공부하는 학교, 가고 싶은 학교로 만들 수 있을까? 백번 ‘그렇다’ 치자.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이나 영어선생님이 가르치는 방식, 내용, 평가의 적정성, 타당성, 신뢰성... 이런 건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교사가 아무리 간이 큰 사람이라도 교육과정을 무시하고 수업시간에 다른 짓(?)을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학교평가, 교원평가를 한 지도 벌써 몇 년이나 지났고 학생들의 학력향상을 위해 정부에서 초등학생에게까지 시행하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도 하는데 학교는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왜 학교는 날이 갈수록 더욱 황폐해지고 학부모들은 사교육비로 허덕이고 입시는 더더욱 치열해지기만 할까?

 

무너진 교실, 위기의 학교는 교사의 자질에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다. 학교가 교육위기를 맞게 된 것은 학교가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가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하면 교사들에게 몰매를 맞을 얘기지만 사실이 그렇다.

 

이미 언론을 통해 문제점이 드러났지만 교육정책일 입안하고 감독하는 정부나 교육관청은 ‘시험점수를 학력’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학부모들도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점수가 자녀의 장래를 좌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등만 하면... 수학능력고사 점수만 잘 받으면... 일류대학에 졸업 후 좋은 직장과 사회적 지위를 보장 받을 수 있는 기준이 점수이기 때문이다.

 

 

수능 끝난 학교를 보라! 교문에는 ‘축! 000 서울대 00과 합격!’ ‘축! 000, 고려대 000과 합격!’ 이렇게 프랙카드를 붙여 자랑하지 않는가?

 

초등학교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점수를 잘 받으면 ‘놀이동산 자유 이용권’을 주고 ‘시험 우수반에 현금 30만원’을 주기도 한다. 경북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학력인증제’라는 이름으로 등급을 나눠 상품권을 주기도 하고 부산의 한 중학교에서는 7교시까지 강제 자율학습을 위해 기타와 배드민턴과 같은 동아리 활동을 중단했다고 한다.

 

주 5일제 학교에서 토요일에 등교를 시키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어떤 학교는 정규수업이 끝난 후 ‘특별교실’을 열어 문제 풀이를 하는 학교도 있다.

 

일등만이 살아남는 학교, 점수를 학력이라고 착각하는 학교에는 교육은 없다. 학교평가든 교원평가든 그런 건 의미가 없다. 오직 소수점 아래 몇점이라도 더 받는 것.. 그것이 가장 훌륭한 교육이요, 우수학생이다. 점수 몇점을 더 올리는 학생이 우리학교, 우리지역을 빛나게 만드는 학생이 되는 학교에 어떻게 교육다운 교육이 가능하겠는가? 아무리 착각은 자유라지만 교육과 학력을 구별 못하는 학교에는 진정한 교육을 기대할 수 없다.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  이 글은 '맑고 향기롭게'(2013년.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대학이 평준화되면 고등학생들이 공부를 하지 않아 ‘교실이 무너진다’고 걱정들을 하는데 가능한 이야깁니까?”

“고등학교는 공부를 많이 하지 않는 게 정상입니다. 하기 싫은 공부를, 그것도 시험을 치기 위해 달달 외운 지식은 시험이 끝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입시폐지와 대학평준화’를 주장하며 전국 2000Km를 자전거로 대장정을 벌이던 경상대 정진상 교수가 마산에 도착해 강연회 자리에서 주고 받았던 얘기다.

처음에는 그 대답이 무슨 말인가 했다. 
"음악을 전공해 음악가로 살 학생이 미분적분을 그렇게 깊이 배워야 하는가? 또 국악을 할 사람이 영어를 그렇게 잘할 필요가 있는가?' 고등학교는 보통교육기관이고 대학에서 정말 열심히 자기 분야 공부를 해야 합니다."
 설명을 다 듣고 난 참가자들은 그제야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 밤 10시까지 그리고 건강을 잃을 만큼 공부를 한다는 게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부모들은 왜 그렇게 아이들에게 ‘공부공부’ 할까? 
“‘마음도 몸도 건강한 아이’와 ‘공부는 잘하지만 심신이 허약한 아이’ 중 당신의 아이는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학부모들에게 이렇게 질문을 하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백이면 백 하나같이 ‘몸도 마음도 건강한 자녀’를 원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기저귀를 찬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영어발음을 더 잘하기 위해 혓바닥 수술도 마다않는 부모들은 과연 내 자녀가 어떤 아이로 자라고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 본 일이 있을까? 학원으로, 또 학원으로 내몰다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됐을 때 몸도 마음도 건강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을까?


초등학교 입학도 하기 전, 학원에 가지 않으면 놀 친구들이 없는 현실. 그렇게 학원으로 학교로 또 점수 몇 점 더 받게 하면 인격적인 성장을 하 수 있을까? 학교에서 그렇게 많은 지식을 암기해 그 암기한 지식의 양으로 서열을 매기면, 성취감 보다는 열패감을, 체념을,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학부모들은 알고나 있을까? 


  ‘사랑한다’는 언어로 표현된 사랑은 이미 사랑의 의미가 실종된 관념일 뿐이다’는 말이 있다. 인간은 책속에 담긴 지식을 암기한 관념이 아니라 직간접으로 얻은 경험을 통해 체화될 때 올곧은 인격체로 자랄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유아기의 놀이는 개인적인 존재인 인간을 사회적인 존재로 만드는 1차적인 학습과정이다.

태어나 부모로부터 정서적인 감정을 터득한 후 부모와 자식간에 사랑 때문에 깨닫지 못한 사회성이 친구들을 만나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사회성’과 ‘관계’를 배우게 된다. 물론 가정에서도 역할이나 의무, 책임과 같은 사회성을 가르칠 수 있지만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데 얻어지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은 이미 학자들을 통해 검증된 지 오래다.


  유아기의 부모들이 인내심을 가르치기 위해 옛날이야기나 책을 통해 가르치기란 그렇게 쉽지 않다. 그러나 친구들과의 놀이를 통해 질서나 책임의식 또 소속감이나 인내심을 기르는 것은 효과적인 학습이다. 책상 앞에 앉아 아무리 감동적인 책을 수없이 읽혀도 그런 교육적인 효과를 얻게 된다는 학자들의 주장을 들어 본 일이 없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또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성취해 주기를 부모들이 바란다는 것은 자녀를 ‘인격체’로서가 아니라 ’소유의식‘으로서의 자녀를 보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일등을 향한 부모들의 집념은 이와 무관할 것은 아닐까? 이러한 자녀관은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의 길을 가로 막고 있는 암초와 같은 생각이다.

<부모들의 자녀관 이제는 바꿔야>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내가 못 이룬 꿈이나 한을 풀어 줄 존재는 더더구나 아니다. 동물들을 어떤가? 물론 이성에 의한 판단은 아니지만 본능적인 새끼사랑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오히려 배워야할 점도 많다. 인간 이상의 지극한 사랑으로 키우던 새끼조차 자립이 가능하게 되면 매정하게 관계를 끊고 스스로 갈 길을 간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어떤가? ‘귀한 자식일수록 엄격하게 키우라’는 선조들의 충고조차 아랑곳없이 놓으면 꺼질세라 불면 날려갈세라 자식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해줘야 하고 오냐오냐 하면서 온상 속의 꽃처럼 키운다.

 대학입시 때가 되면 부모도 입시생이 되고, 부모의 정보나 능력에 따라 어느 대학에 가느냐가 결정될 정도다. 일류대학에 가고 공부만 열심히 해라. 나머지는 부모가 무슨 짓이라도 해서 뒷바라지를 해주만. 노후 설계도 없이 자식 뒷바라지라면 이산가족도 기러기 아빠도 마다하지 않는다. 결혼비용이나 결헌 후 살아갈 집도 마련해주고 사업자금까지 마련해 주는 게 부모의 능력이고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는 게 단연하다는 것이다.

<내 자식만 손해 볼 수 없다?>


  경제적인 능력이 안 되는 부모들도 아이들을 힘겨운 학원에 보내는 이유를 물어보면 ‘놀고 있는 걸 보면 불안하다’고 한다. 노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 학원에 가야 안심이 되고 학교에 보내야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웃 아이가 피아노를 치면 내 자식이 피아노에 대한 소질이나 적성에 관계없이 피아노 학원에 보내야 맘이 편하고 선수학습을 시키면 그게 약인지 독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선수학습을 시켜야 안심이 된다는 것이다. 이웃 아이가 상을 받아 오면 내 자식도 상을 받아와야 하고 이웃 아이가 일등을 하면 내 자식도 일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아이들이 똑 같이 자라기를 바라는 것은 부모의 무지요, 욕심이다. 아이들에게는 개성이 있고 소질과 적성이 다르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어른이 되지 못한 미완성품’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그들에게 책임과 의무를 부여하고 스스로 책임을 질 줄 아는 자존심과 주인의식을 길러 줄 생각보다 부모가 알아서 챙겨주는 것이 부모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마보이라는 무능력자를 만들고 있으면서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온실의 꽃이 되건 말건 내 자식이니까 내 생각, 내 판단 기준으로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일까>


  남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부모가 일일이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책임이요 의무일까? 흔히 이렇게 출세한(?) 사람 중에 부모님의 고생이나 어려움을 모르고 제가 잘나서 성곡한 것이라고 기고만장한 경우를 가끔 본다. 이제 이러한 현상이 드라마에서만 나오는 얘기가 아니다. 물론 이런 인격 결손자를 만든 것은 부모만의 책임이 아니라 학교가 교육을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하는데 학교는 지식을 암기하도록 해 서열에서 남보다 앞섰기 때문에 반대급부로 얻은 지위를 받은 것이다.

<공부를 많이 하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


  학교가 지식이나 기술을 전수해 주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경쟁에서 패배자는 승자에 배한 부러움과 열패감, 운명론자를 만들어 놓는 다는 것을 아는 부모들은 얼마나 될까? 공부만 잘하면 ‘오냐, 내 새끼...’하며 예절이며 도의면 그런 자잘한 것들이야 커면 다 저절로 알게 될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하루 교실에 열대여섯 시간을 가둬놓고 모든 지식을 똑같이 암기해 서열을 매겨 평생의 운명을 결정하게 하는 체제에 순응하도록 하는 진정으로 인격자로 키우는 교육일까? 이런 교육을 계속하면 학교교육이 지향하는 ‘전인교육’, ‘홍익인간’이라는 교육목표를 과연 달성할 수 있을까?


  한참 성장할 나이에 먹을 것을 먹지도 못하고 잠 잘 시간까지 빼앗는 것은 인간에 대한 학대요, 권리 침해요, 횡포다. 내 자식이기 때문에, 아직 미성년이기 때문에 개성을 무시해도, 인권정도야 무시해도 좋다는 생각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독선이다. 자녀들은 교사나 부모가 보기 좋아라고 존재하는 꽃이 아니다. 부모나 교사의 뜻에 따라야 모범생이라는 주관적인 부모의 생각으로 아이들의 창의력을 좀먹고 아이들의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 이제 교사도 부모도 아이들의 편에서 그들의 인권을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아이들의 권리를 무시하면서 어떻게 민주시민이라고 말할 것인가?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