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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9.10 학교는 있어도 교육은 없다, 왜? (11)
  2. 2012.09.16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8)


우리나라에 한해동안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아세요?

2012년 한 해 동안 국내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만 무려 12,243명이나 됩니다.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도 1,196명이고요.

 

25∼34세 청년층의 고등교육 이수율이 98%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고, 25~64세 성인의 고등교육 이수율이 80%로 OECD 평균(고등학교 74%, 고등교육 31%)을 상회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초・중등학교의 전체 교원 수는 476,065명이나 됩니다. 교원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교대나 사범대를 졸업해 교원 자격을 취득한 사람과 일반대학에서 교직과정을 이수해 교원 자격증을 받은 사람까지 치면 아마 수십만명이 될 것입니다.

 

 

박사학위소지자, 교등교육이수자, 그리고 교원의 수가 이렇게 늘어나는 데 교육은 무너지고 왜 날이 길수록 황폐화되어 갈까요? 교원 자격증을 가진 사람만 교육자가 아닙니다. 자식을 키우는 모든 부모가 교육자요,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주변 사람들은 모두 교육자입니다. 교육을 다른 말로 ‘사회화’라고 하는 이유도 환경의 영향을 받고 자란다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학교는 있어도 교육이 없다?

 

학교가 교육을 하지 않는다면 존재해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학교는 아직도 건재하고 있습니다. 학교가 싫어 떠나는 학생도 있지만 2012년 고교 졸업자 636,724명 중에서 대학에 등록한 학생 수(진학률)가 71.3%입니다. 그것도 2004년 79.7%에서 많이 떨어져 그렇습니다. 고등학교 학생 중에서 고 3학생이 100% 진학하는 학교도 수두룩합니다.

 

이렇게 박사도 많고 교육자도 많고 대학을 나온 사람도 많은데 왜 교육은 이 모양일까요? 우리네 사회는 학교만 무너진게 아니라 가정교육도 사회교육도 무너진 지 오랩니다.

 

보장되지 않는 특별한 날의 하루를 행복해지기 위해 모든 날을 희생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목적전치현상...? 그렇습니다. 목적전치현상...! 수단과 목적이 바뀐... 먹기 위해 사는 지 살기 위해 먹는지 모르는 현상, 일하기 위해 사는 지 살기 위해 일하는지... 이 기막힌 목적전치현상을 확인하기 위해 오늘 주제는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얘기하려 합니다.

 

<교육이 무엇이기에...>

 

교육에 관한 한 박사가 아닌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전문가들이 많아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지만 제 나름대로 한번 풀이해 볼까 합니다.

 

왜 교육을 해야 하는가? 옳고 그름과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별할 수 있고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디서 하느냐고요? 가정에서 해야지요. 학교에서도 하고 사회에서도 하고요.

 

그런데 가정이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까? 학교가 그런 일을 제대로 하고 있습니까? 사회가 그런 일을 제대로 하고 있습니까?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컬어 교사라고 합니다. 교사자격증이 있는 사람만 교사라고요? 자격증이란 무엇입니까? 국가가 법으로 정해 일정과정을 이수했다고 증명하는 게 아닌가요? 자격증이 없으면 교사가 아닌가요?

 

그렇다면 자격증이 없는 예수님은, 부처님은, 공자 맹자님은 왜 스승이라고 할까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사는 자격요건을 갖춘 사람뿐만 아니라 사랑을 가르치는 사람, 삶을 안내하는 사람,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장 훌륭한 교사가 아닐까요?

 

<학교가 무너졌다... 왜?>

 

학교가 무너졌다고들 합니다. 무너졌다는 말을 교육을 해야 할 학교가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교육이 무너졌으면 사랑하는 자녀를 당연히 학교에 보내지 않아야 하는데 학교는 지금도 문전성시입니다. 왜 그럴까요?

 

 학교뿐만 아니라 학원까지 만원입니다. 도대체 학교는 무얼하는 곳일까요? 교육하는 곳이라고요? 맞습니다. 그런데 학교가 교육을 하고 있다고요? 한번 교실 속을 들어다 보세요. 국어교육의 기초는 ‘말하기, 듣기. 쓰기’입니다. 국어를 그렇게 많이 배우지만 말하기 듣기 쓰기를 잘 하고 있을까요?

 

 

아이들이 말을 잘 할까요? 바른 말, 고운말을 쓸까요? 조리 있게 자기주장을 맞춤법에 맞게 논리정연하게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는가요? 요즈음 학생들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알아듣지 못하는 말, 욕설 투성이, 더듬고 빠르고, (隱語)까지... 친구들끼리도 그렇고 대중 앞에 세워 놔 보세요? 얼마나 설득력 있게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말 할 수 있는지를...?

 

A4용지 한 장을 내놓고 주제를 줘 글을 써보라고 해보세요? 한반에서 한 장을 다 채우는 학생이 몇 명이나 되는지...? 듣기는 잘 들을까요? 그런데 이런 학생이 문법이며 고전이며...정답을 맞히는데는 귀신같습니다. 학교는 학생들을 정답을 찾아내는 족집게처럼 그런 사람을 길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학교의 우등생이 사회에는 열등생이 되는 이유를 알만하지 않습니까? 시험문제를 풀이해 성적이 좋은 학생과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두고 가르쳐야 하겠습니까? 시비를 가리고 바르게 사는 게 무엇인지를 가르치면 ‘선생님! 공부합시다’라는 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제 인생 선생님이 책임지시겠습니까? 라는 항의가 빗발칩니다. 지금 학교는 사람다운 사람, 인격자를 길러냅니까? 아니면 시험문제를 쪽집게처럼 잘 풀이하는 인간을 길러내고 있습니까?

 

<사회는 어떨까요?>

 

학교를 한발짝만 벗어나면 학생들에게는 지뢰밭처럼 ‘위험지역’입니다. 아이들이 자주 가는 오락실, PC방, 노래방, 만화방, 오락실, DVD방은 안전할까요? 청소년들이 갈 곳이 없다고 합니다. 그 말을 바꿔 말하면 청소년들의 문화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런 호기를 장사꾼들이 놓치겠습니까? 그들을 유혹하는 온갖 상업주의문화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생각하고 접근합니다.

 

상업주의가 청소년들의 세계를 침투하는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상업주의뿐만 아닙니다. 매일같이 전파를 타고 흘러나오는 정치인들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학교가 길러낸 인간상이 저런 모습일까’ 하는 생각에 교육자는 몸 둘 곳이 없습니다. 내 아이가 자라서 정치인이 된다면....? 저런 사람이 훌륭한 사람으로 주권자인 국민의 대변인이 되고 존경의 대상이 된다는 게 부끄럽습니다.

 

 

힘의 논리가 정당화되는 사회, 그 이유가 무엇일까?

거짓말하고 법을 어겨도, 탈세를 하고 병역을 기피하고 부동산 투기에 논문 위조에 주가 조작까지... 그것도 금방 탄로 나고 말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정치인들이며 돈이면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장사꾼들... 사회며, 경제며 종교며 문화 등 어느 한 군데라도 건강한 곳이 있습니까? 이런 세상을 사랑하는 나의 아들, 딸에게 물려주면 그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정치며 경제, 사회, 문화가 이 지경이 된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요? 나라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부가 교육을 상품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교육은 상품이요, 학생과 학부모는 수요자, 교사와 학교는 공급자’라고 합니다. 이름하여 수요자 중심의 교육입니다. 과정은 생략되고 결과로 승패를 가르는 교육, 내용은 없고 형식만 쫒는 교육, 일등 지상주의, 일류대학이 교육의 목표가 된 사회...

 

교육을 살릴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한 줄로 세우는 교육, 경쟁 지상주의, 성적 만능주의, 대학서열화...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교육으로 가난의 대물림을 끊겠다느니 꿈과 끼를 살리는 교육을 하겠다느니 하는 말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거짓말입니다. 출세하고 사회적 계층상승이 눈에 보이는 데 누가 원칙만 고집하고 앉아 있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학교가 교육을 하는 곳, 선생님들이 삶을 안내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 원인치료를 하는 것, 그것이 교육도 살리고 아이들도 살리는 지름길입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 이 기사는 맑고 향기롭게(2013. 9)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사는 그는 누구인가?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을 졸업하여 임용고사에 합격해 발령을 받은 사람을 교사라고 하는가? 교과서나 참고서에 있는 지식을 제자들에게 암기시켜주는 지식전달자인가? 자기가 맡은 제자들을 일류대학에 많이 보내는 능력이 있는 사람을 교사라고 하는가?

 

국민 전체의 평균학력은 높아지는데 교육의 위기는 왜 오는가? '교사는 있어도 스승은 없다'는 언론의 질책을 들으면서 이 시대 교사에 대한 정체성을 확인할 필요를 절감한다. 가치혼란의 시대, 교사에 대한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은 교원들이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학교가 교육의 기능을 감당하기 전, 전통사회에서의 교육은 가정의 몫이었다. 농업사회에서 교육은 삶을 이어가는 능력을 터득케 하는 일이었다. 농사를 짓는 기술을 배우고 조상과 가문에 대한 예의와 제사법을 익히는 것이 교육이었다. 남자는 남자로서 여자는 여자로서 역할을 분담하고 그 역할에 충실하는 것, 사회를 계승하도록 유지시켜주는 기능을 가정교육이 담당해 왔다.

 

모든 사회가 그렇듯이 교육을 비롯한 각 영역별 기능이란 그 사회의 성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사회가 농업사회냐, 산업사회냐, 봉건사회냐, 자본주의 사회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산업사회가 시작되면서 전통사회가 담당하던 교육의 기능은 전문기구가 분담하게 된다. 유치원과 학원, 학교 등이 교육을 감당하는 전문기구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산업사회로의 이행이 급속히 진전되면서 가정이 감당해야 하는 기본적인 교육을 가정이 수행하지 못함으로서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가문중심의 유교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교육은 계층상승의 수단이요, 부모가 못다 이룬 꿈을 성취시켜주는 한풀이 수단이 되기도 한다. 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도 교육은 계층상승의 기능으로서의 역할이 달라지지 않는다.

 

산업사회에서 음악학원, 미술학원, 피아노 학원 등은 기능을 습득하는 전문 교육을 담당하는 기구다. 기본적인 인간교육은 가정이나 학교가 감당해야 하지만 우리 사회의 특수성에 비추어 학교가 인간교육을 수행하지 못한다. 대신 학교는 개인의 계층상승을 위한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부담까지 떠맡게 된다. 교육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교사자격증이라는 조건을 갖춰야 한다.

 

물론 교사는 피교육자에게 전문적인 지식도 전수해야지 만 삶을 가르쳐야 한다. 기계적인 기능인을 키우는 것만 아니라 사람다운 사람이 되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더불어 사는 관계와 사랑과 예의를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은 인성보다 기능이 더욱 높이 평가됨으로서 학교교육은 산업사회의 요구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인성교육이 교육의 본질적인 임무다. 그러나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을 양성하기 위해 '경쟁을 통한 서열 매김' 때문에 그 임무를 이행하기 어렵다. 교육은 지시와 복종이 아닌 사랑과 대화로 이끌어야 한다.

 

사랑과 존경이 없는 지시와 복종, 통제와 단속이라는 수단이 동원되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순치다. 교사의 권리만 인정하고 학생의 인권이 무시되는 분위기에서는 진정한 교육이란 불가능하다. 서커스단에서 동물을 순치(馴致)시키는 것과 인간교육이 같을 수 없다.

 

교육의 본질적인 기능을 말하면 '현실론'을 들고 나오는 사람이 있다. 경쟁사회에서 인성보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 살아 남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유능'이 자신의 개인적인 출세나 소득의 차이로 해석한다면 학교에서의 본질적인 교육은 불가능하다. 문제는 경쟁사회에서의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소질이나 특기을 무시하고 획일적인 지식을 주입하고 특정 가치에 의해 줄 세우기를 하는 무모함에 있다.

 

산업사회의 교육은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건,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건,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건,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국어, 영어, 수학의 점수가 사람의 가치까지를 서열 매기는 무모함을 고집해 왔다. 1등이라는 가치가 정직이라는 가치보다도 순수라는 가치보다도 인격이라는 가치보다도 더 상위의 가치로 평가돼 왔다.

 

 

자본주의에서는 서열매김이라는 가치를 거의 광적인 원칙으로 고수하고 있다. 제도교육의 틀 안에서 학생이 그렇고 여자나 남자, 교사나 일반 직장인이나 가릴 것 없이 그렇게 서열화에 익숙해 졌다.

 

성적이라는 서열, 일류와 이류라는 학교서열, 연봉이 얼마냐에 따른 소득에 의한 서열, 인물이 얼마나 잘생겼는가에 따른 생김새에 따른 서열, 심지어는 가슴둘레와 허리 사이즈로 사람을 표준화 시켜 서열이나 가치를 매기는 미스 코리아, 미스 월드와 같은 행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게 사회가 만든 원칙도 기준도 없는 서열매김에 학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돈이 사람의 가치를 차별화하는 사회에서는 보통사람들이 건강한 이성이나 비판력정신은 오히려 걸거침이 될 뿐이다. 법(실증법)이라는 것, 도덕이라는 것, 교칙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다.

 

교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표준품'이라는 전형을 만들어 놓고 그런 사람에 가깝도록 만드는 도공(陶工)인가? 머리 모양이나 옷의 모양이 사람의 가치보다 소중할 리 없다. 옛날에는 남자들도 치마를 입었다(두루막, 도포..) 머리모양도 조선시대 500년 동안 남자들이 처녀처럼 길렀다.

 

교문에서 소신을 가지고 가위로 머리를 자르는 사람은 과연 교육자인가? 물론 법이나 교칙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규범은 구성원들이 지켜야 할 의무다. 그러나 구성원들의 합의 없는 법이나 규칙은 원인 무효다. 법도 마찬가지다. 소수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법을 악법이라고 한다. 국가 보안법이 그렇다.

 

교사는 공식을 암기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원칙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깨닫게 하는 사람이다. 스스로의 모범을 보이는 사람이다. 교육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다. 입으로는 도덕을 말하면서 부도덕한 일을 하는 교사는 교사가 아니라 지식 전달자이다.

 

오늘날 학교 현장에 교육을 하는 사람보다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교사나 성인이 이중성을 가지고 청소년 앞에 섰을 때 그들은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교사는 몸으로 가르쳐야 한다. 마음으로 가르쳐야 한다. 입으로 가르치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