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마음'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08.11 부모의 과욕, 사랑인가 폭력인가? (10)
  2. 2011.03.27 댁의 자녀는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44)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을 얻은 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다 그렇겠지만 이 어머니의 자식사랑은 남달랐습니다. 임신을 하면서부터 태아교육을 시키고, 애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름까지 짓고 태어나면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미리 미리 계획까지 다 짜 놓았습니다. 집에는 애기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이며 좋다는 것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갖춰놓고 성장 단계별 읽을 수 있는 전집류까지 방안에 가득 채웠습니다. 혹시나 건강을 해칠까 가습기에 공기정화기까지 갖추고 나이에 맞는 놀이기구까지 없는 게 없이 모두 마련해 두었습니다.

 

 

 

 

애기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좋다는 어린이 집과 유치원을 수소문해 보내면서부터 어머니는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자녀교육관련 강좌라는 강좌는 빼놓지 않고 찾아다니며 배우고, 컴퓨터를 검색해 육아관련 정보를 섭렵해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를 남보다 더 훌륭하게 키울 수 있는지를 배우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입을 옷은 어떤 색깔을, 먹거리는 어떤 것이 건강에 좋은지... 이렇게 아이가 좋다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다 해주면서 키웠습니다. 영어는 필수니까 영어 학원을, 교양인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할 피아노며 미술학원에 보내고 호연지기를 위해 웅변학원, 태권도 학원에도 보내고... 이렇게 학원이라는 학원은 빠지지 않고 보냈습니다.

 

끼니마다 먹는 식단도 5대 영양소를 챙기고 비타민이며 칼슘이며 아이에게 좋다는 영양제도 하나 빼놓지 않고 챙겨 먹였습니다. 이렇게 지극정성을 다한 갸륵한 엄마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엄마가 원하는 모습으로 자라지 않아 어머니는 안달을 합니다. 100점을 받아야 해! 남에게 지면 안 돼... 엄마의 욕심은 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엄마의 욕심과는 다르게 나약한 마마보이로 자라고 있다는 것을 어머니는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놓으면 꺼질새라 불면 날아갈새라 그렇게 키우는 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는 아이는 어떤 모습일까요? 엄마가 도와주지 않으면 아침에 자고 일어나 무슨 옷을 입을 것인지, 무얼 먹을 것인지, 집밖을 나가면 집을 찾아오지도 못하는 방향감각까지 잃고 있다는 사실을 엄마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 언제부터인지 아이는 엄마의 인형처럼 그렇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매일같이 입는 옷도 엄마의 취향대로, 먹는 음식도 엄마의 식성대로... 학교에서 하교할 때도 엄마가 승용차로 데려다 주고 있었습니다. 이런 엄마의 사랑이 과면 교육적이기만 할까요?

 

엄마의 욕심이 아이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사람도 자연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자연의 구성체에 불과합니다. 식물이 자라는 데는 물과 햇볕과 공기가 필요하듯, 사람도 흙을 밟으며 물과 공기와 햇볕이 필요하고, 새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자라야 합니다. 자연과 만나 꽃이 왜 피고 열매가 왜 맺는지 바람은 왜 불고 비는 왜 오는지, 우리가 먹는 먹거리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르는지 농부와 어부들의 땀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보고 듣고 배우면서 자라야 합니다.

 

친구가 없이 자라는 아이가 행복하기만 할까요?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해야 건강을 유지하듯 엄마 아빠의 사랑뿐만 아닌 친구의 사랑도 필요합니다. 학교와 학원 그리고 집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자라는 아이들이 친구의 우정을 알고 느낄 수 있을까요? 친구가 없으니 놀이문화가 있을 리가 없지요. 극성 엄마들은 학원이나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만 소중하고 친구들과 놀이를 통해 배우는 공부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놀이는 질서를 배우고 친구간의 우정을 배울 수 있는 귀중한 배움터입니다. 인내심과 양보할 줄 아는 마음, 신뢰와 책임감 그리고 배려하고 소통하는 공부는 놀이가 아니고 어디서 배우겠습니까?

 

 

 

 

인성교육진흥법을 만들었습니다. 이 법을 만들기 바쁘게 학교에서는 인성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인성교육을 받으면 인성이 저절로 길러질 수 있을까요? 학원에서 인성교육 특강을 들으면 우리 아이 인성이 쑥쑥 자랄까요? 인성을 비교해 서열을 매기면 인성이 저절로 길러지겠습니까? 인성교육의 핵심가치가 , , 정직, 책임, 존중, 배려, 협동이라며 반복학습을 하고 흑판에다 뜻을 적고 외우면 아이들의 인성이 길러지겠습니까? 정서적인 발달은 식물이 자라는데 물과 공기가 필요하듯 아이들도 가정에서 혹은 친구들간에 놀이를 통해 체화되는 것입니다. 그런 소중한 기회를 빼앗아 버리고 인성교육을 받고 영어 문법이며 방정식, 미적분 점수만 많이 받으면 인격자가 될 수 있을까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청소년 실태조사 자료를 보니 청소년들이 아버지와 하루 평균 대화시간이 30분 미만이 42.1%에 불과하고, 어머니와는 22.4%30분도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부모와 대화까지 단절된 가정에 가정교육이 가능할까요? 여기다 학원에 가지 않으면 놀 친구가 없는 어린이들이 놀이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정서교육이 사라지고 있다는 기막힌 사실을 어머니들은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학원과 학교만 열심히 다니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진리(?)를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부모님들.... 이렇게 우리 아이를 키워도 좋을까요? 그렇게 자라는 아이들은 과연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는 우리말을 잘 듣고 읽고, 쓰기도 중요하고 계산하는 능력도 필요하고, 과학적인 사고력도 중요합니다. 또 노래도 잘 부를 줄 알고 달리기를 잘 하는 능력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능력이 정서적으로 밝고 맑은 심성과 서로 사랑하고 믿고 양보하고 배려하는 .... 마음보다 더 중요할까요? 이 땅의 부모들은 자기 자녀가 지식이 많은 사람과 가슴이 따뜻한 사람중 어떤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는지요? 옳고 그런 것을 분별할 줄 알고 해서 될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을 분별할 줄 아는 판단력, 내 부모와 내 가족에 대한 사람과 감사, 내가 살고 내 뼈가 자라는 내 고향, 그리고 우리문화와 민족, 동포에 대한 민족애를 모른다면 그런 지식이 정말 소중하기만 하겠습니까?

 

 

 

 

내 아이가 소중하다는 것만 아는 근시안적 안목으로 아이들을 키우면 어떤 모습으로 자랄까요? 좀 더 넓은 안목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그들이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안내 해 줄 수 는 없을까요? 세상 공기는 자꾸 혼탁해져만 가고, 마실 물, 먹거리들은 하루가 다르게 오염되고 있습니다. 조미료와 식품 첨가물을 넣은 음식이 먹기도 좋고 맛도 좋지만 건강을 해치듯, 눈앞이 보이는 이익,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착각하는 부모들로 아이들은 개성도 소질도 특기도 살려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 아이가 혼자 살아갈 행복한 세상을 없습니다. 세상 공기가 다 더러워지는데 우리아이가 숨 쉴 공기만 깨끗해 질 수 있다고 믿는 부모는 정말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일까요?

 

좀 더 비싼 옷, 좀 더 영양가 있는 먹거리, 좀 더 선행학습을 많이 시키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시는지요? 내 아이가 아닌 우리 아이들이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 부모들이 해야 할 자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요?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랍니다. 가르칠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엄마가 세상일에 쫓기는 동안 아이는 어느새 몰라보게 자라고 맙니다. 더 많은 사랑,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학원으로 보내는 시간에 사랑하는 아들 딸 손을 잡고 더 넓은 자연 속에서 함께 보낼 생각은 없으신지요? 아이들과 뒹굴고 울고 웃으며 해밝게 자랄 수 있도록 이끌어 줄 수는 없는지요?

 

아이는 어른의 부속물도 어른이 못된 미완성품도 아닙니다. ‘어린이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하고, 튼튼하게 낳아 참된 애정으로 교육하여야 하고, 마음껏 놀고 공부할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하고, 공부나 일이 몸과 마음에 짐이 되지 않아야 한다.’ 어린이 헌장에 나오는 글입니다. 벼 포기를 뽑아 올린다고 벼가 더 빨리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서 바르고 맑게 자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부모가 아이들을 진짜 사랑하는 부모가 아닐까요? 부모의 과욕은 사랑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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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참사가 일어난 지 1년 하고도 4개월이 가까워 온다. 아이들은 아직도 9명이나 바다속에 잠겨 있는데 정부가, 우리가, 내가 한 일이 없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진상규명....!

 

정부는 진상규명을 할 의지가 있는가? 마지 못해 특별법을 만들었지만 그 시행령에는 가해자가 진상조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만들어 놓았다. 유가족들은 삭발로 울분을 토하고 가슴을 치지만 대통령은 마이동풍이다.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살리겠다는 경제, 그 경제는 누가 죽인 것인가? 재벌경제를 살리면 민초들도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가?   

 

세월호 참사...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합니다. 그것이 억울하게 숨져간 아이들에게 속죄하는 길이요, 제 2, 제 3의의 세월호참사를 막는 길입니다.

 

4.16...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마세요.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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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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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3.27 19:38



자녀를 키워 본 사람치고 ‘우리 아이가 천재가 아닐까?’하고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있을까? 학생이 문제를 일으켜 학교에 호출을 당한 학부모들이 담임과 마주 앉아 하는 말. “우리 아이가 착한데 친구를 잘못만나서...’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하늘이 두쪽이 나도 우리 아이만은...!’ 이게 부모의 마음이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한다. 공기도 물도.. 사람도... 인심도...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문화도.... 이렇게 급변하는 사회에서 학부모인 나는 얼마나 변하고 있을까? 내 아이가 변하는 변화 속도에 내가 따라가지 못하는 문화지체현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의 모든 부모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자녀는 장차 커서 어떤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에는 참 별별 사람도 다 산다.

                          <이미지 출처 : '교육희망'에서>

인정도 의리도 없고 양보와 타협도 없는 머리만 비상하게 잘 돌아가는 사람.
인내심이 부족해 쉬 좌절하거나 포기하는 사람.... 원칙도 없이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
부정과 비리는 보면 분노하기는커녕 않고 손익을 계산해 적당히 자신의 설 곳을 찾는 사람.... 

노동의 가치를 모르고 돈이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황금만능주의자... 민족의식이나 전통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조차 없이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 부모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커녕 자식으로서 권리만 주장하는 사람....


세상 어느 부모치고 자기 자식이 이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부모의 기대와는 상관없이 이렇게 인간미도 없이 돈의 노예가 된 사람도 있고 극단적인 감각주의로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100점만 받으면 모든 것을 용서하며 자녀를 양육하던 부모들... ‘인성같은 거야 문제될 게 뭐 있어? 커서 철들면 그런 거야 문제없어...’ 라며 공부만 잘하기를 바랐던 부모... 그 아이가 자라서 부모도 이웃도 안중에 없이 오직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그러나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랐던 부모의 의지와는 달리 우리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사랑하는 부모가 내 자식은 이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역경을 만나면 불굴의 투지로 해결하려는 투지와 용기를 가진 사람.... 불의를 보면 손해를 무릅쓰고 자신의 일처럼 나서서 해결하려는 사람... 작은 행복에 감사하고 만사에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는 사람... 우의와 의리를 존중하고 스스로 결정한 일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 남의 생각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주관을 떠나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역지사지로 사리를 판단하는 사람... ‘좋은 게 좋다’가 아니라 시시비비를 가려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

‘공부만 잘해 출세하고 돈만 많이 벌면...’ 오직 성공(?)만을 바라고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한 부모들... 자기 자식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못하고 내가 어렸을 때 못다 이룬 꿈을 대신 해결해 줄 자신의 분신으로 생각하며 살아 온 부모들. 자식이 갖고 싶어 하는 것.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있으면 어떤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반드시 해주어야 부모 노릇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부모. 성적만 잘 받을 수 있다면 돈을 어떻게 마련해서라도 자녀의 의사와 무관하게 등 떠밀어 대여섯 군데 학원을 보내기를 불사하며 자녀를 양육해 온 부모들.....


자식사랑으로 말하면 동물의 세계도 사람에 못지않은 지극한 모성애는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자녀가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걸 원하는 대로 다 해주는 것이 부모로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부모의 양육관은 옳은 것일까? 옛날에는 어땠을까? ‘오냐, 오냐 내 새끼...!’가 아니라 차가울 정도로 매섭고 단호했다. ‘귀한 자식 매로 다스려라’라든지 ‘손자 귀여워하면 할아버지 상투를 든다’는 말에서 옛 어른들의 자녀 교육방식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겉으로 ‘오냐 오냐..’하고 키우는 것과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속’을 보여주지 않는 교육은 다르다. 더구나 학교나 학원과 같은 전문교육기관이 없었던 당시의 상황에서는 전통과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고 양육하는 것이 부모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믿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부모의 자식사랑은 다르지 않다면 오늘날 젊은 부모들이 귀기울여야할 교육방식이 아닐까?


학교교육은 완벽한가? 학교나 학원에서 협동이란 ‘서로 마음과 힘을 하나로 합함’ 이라고 배우고 인내란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딤’이라고 배워 얼마나 학습됐는지 시험을 쳐 만점을 받았다고 치자. 만점을 받은 그 아이는 과연 협동이나 인내심이 체화된 인격자가 됐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협동이나 인내를 포함한 양보니 타협과 같은 사회성은 의미를 깨달았다고 체화되지 않는다. 인지와 체화는 다르다. 안다는 것과 나의 것, 내 인격의 일부가 돼, 실천으로 연결되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사회성은 어떻게 인격으로 체화될 수 있는가?

모든 학습이 그렇듯이 경험이란 인지의 기본이다. 교실에서 지식의 전달은 직접경험이 아닌 간접경험을 통한 인지과정이다. 지식이나 기술은 간접경험을 통해 인지, 습득 가능하다. 그러나 한 개인의 인격은 머리로 인지됐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격으로 체화될 수 없다. 머리만 있고 가슴이 없는 현대 지성은 이렇게 간접경험을 통한 이상형 인간으로 정형화된 것이다.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해야 할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 그 일을 구분이 안 되기 때문에 수많은 정치인과 학자들이 성공의 문턱에서 불명예 퇴직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자주 볼 수 있다.

어린이에게 놀이는 학습이다. 놀이를 통해 사회성을 배우고 그 때 형성된 사회성은 평생 살아가는데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체험이요, 인격형성의 과정이다. 사회성이 없는 인간. 머리는 있고 가슴이 없는 사람!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사회구성원이 아니라 개인적인 존재로서 사회구성원이 된 사회는 우리의 현실에서 그 적나라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누구의 책임일까? 당연히 일차적인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물론 사회성을 학습할 기회를 빼앗은 교육학자. 또 교육과정 편수관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점수 몇 점이 인생의 전부라고 어린 자식을 하루 대여섯 개 학원으로 등 떠밀어 내 보낸 부모들은 과연 자식을 제대로 키운 것일까? 교육은 학교만 하는 게 아니다. 가정과 학교와 사회가 함께 하지 않는다면 교육다운 교육은 불가능하다. 부모의 왜곡된 사랑으로는 자녀들은 하루가 다르게 관념화되고 이기적인 인간으로 자란다는 걸 부인할 수 있을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