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음2016.07.31 06:42


“돈만 밝히는 기복신앙, 한국불교와 인연 끊겠다”

하버드대 출신 미국인 현각 스님이 실망한 한국불교와 인연을 끊겠다”고 선언해 파문이 일고 있다. 문화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현각스님이 한국불교에 살망한 이유는 '상명하복식 유교적 관습, 국적·남녀차별, 신도 무시, 기복신앙을 비롯한 돈만 밝히는 한국 불교가 싫다는 것이다.

살다보면 이해 못할 일도 만나고 오해를 살 일도 있지만 돈을 밝히는 종교의 타락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거대한 교회 그리고 가람마다 거대한 불사를 일으키기 위해 모금을 하는 모습을 보면 비위가 상하도 못해 역겹다. 얼마나 돈이 필요했으면 스님과 수녀가 한 웨딩 업체 광고에 손을 잡고 등장해 두 성직자가 결혼을 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가 광고를 나돌기도 할까? 

실제로 교회나 성당에 가 보면 종교단체가 참 돈을 밝히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빈손으로 교회나 절에 가기 어렵다.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의 안칙처가 되어야 할 종교가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의 심터가 되지 못하고 부자들의 안식처기 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생각이 들 정도다.

교회나 성당, 절이 운영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데 목회자에게 더 많은 월급을 주기 위해 또는 더 큰 교회 더 큰 성당, 더 큰 절을 짓고 헌금을 강요하다시피하는 교화나 가람은 가난한 이들이 맨손으로 가기 부끄럽게 만든다. 헌금시간이 끝나면 목사님들이 헌금한 손에 축복을 하고... 빈손으로 간 사람이 얼마나 위축되고 미안하고 부끄러울까? 

헌금을 낸 사람을 주보에 게시하고 가람에는 기왓장에 명단을 적고 석탄일이 되면 헌금한 사람의 이름을 등에 새기고... 더 많은 돈을 낸사람이 주지나 목사님으로부터 대접받고.... 남루한 옷을 입고 세상 근심 한기득 짊어진 초라한 모습의 신자를 함께 아파하고 상처를 어루만져 주지 않는가? 돈을 밝히는 종교...얼마나 꼴볼견이었으면 연각스님이 '한국불교와 인연을 끊겠다'고까지 했을까?

 2000여년 전에 예수는 천국에 가고 싶어 잿밥에만 맘에 있는 청년에게 말한다. “만일 네가 완전하게 되려거든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목회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믿는 예수님이 그렇게 호화롭고 거대한 성당을 지어라고 가르친 일이 있는가? 스님에게 묻고 싶다. 부처님이 그렇게 화려한 불사를 일으키고 격식 차린 예불로 부처님를 경배하라고 가르친 일이 있는가?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아닌 사람의 눈, 권력의 눈치나 보는 세상 지향적인 종교는 종교가 아니다. 그런 교회는 예수님이 미워하신다. 그런 가람은 부처님이 싫어 하신다. 

예수님도 부처님도 싫어하는 교회는 종교가 아니다. 타락한 종교가 어떻게 내세를 말하고 어떻게 소외받고 가난한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겠는가?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라고... 당신네들의 귀에는 예수님의 목소리거 들리지 않는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왜 귀를 막는가? 권력에 기생하고 자본에 기생해 가난한 이들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교회여, 가람이여....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오래 전에 썼던 글을 여기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2007년 09월 23일 (바로가기▶) '기독교와  자본주의는  공존할 수  없다'라는 주제로 오마이뉴스에 썼던 글입니다.


기독교와 자본주의는 공존할 수 없다


기독교가 타락했을까, 자본주의가 변절했을까?

2007.09.23 14:02

 기독교와 자본주의는 공존할 수 없다. 공유사상의 기독교와 사유사상의 자본주의는 물과 기름처럼 공존할 수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런데 어떻게 기독교는 자본주의와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는가? 모순된 이념이나 체제가 상호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은 어느 한 쪽이 변절했거나 아니면 타협했다는 증거다. 자본주의가 변질됐거나 아니면 기독교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결코 공존할 수 없는 게 기독교와 자본주의 관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가족은 한 지붕 두 가족처럼 수백년동안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세상바라보기>

기독교와 자본주의는 이론상 공존할 수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기독교는 재산의 공유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반면 자본주의는 철저하게 개인주의에 바탕을 두고 이기주의를 실현하고 있다. 기독교의 사상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 평등한 사회를 이상적인 국가로 규정하는 반면 자본주의는 자유라는 가치를 금과옥조로 생각하고 이기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혹자가 평등이나 기회균등을 말하면 서슴없이 빨강 색칠을 당해야 한다. 또한 기독교의 선(善)은 아카페 사랑이지만 자본주의는 ‘이익이 선’이라는 자본의 논리, 상업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기독교의 이상은 천국이다. 천국이란 무한경쟁으로 경쟁대상자를 밟고 이기지 않으면 살아남는 자본의 생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감각적이고 이기적인 사람, ‘이익이 선’이라는 자본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은 갈 수 없는 곳이 천국이다. 예수를 보라! 기독교인들의 이상적인 인간상은 예수다. 원수를 위해 하나뿐인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닮지 않고서는 결단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성서는 가르치고 있다.

자본주의는 어떤가? 지본주의란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된 사회, 이름 그대로 사람이 아니라 자본이 주인인 사회다.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한다면 돈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매겨지는 사회가 자본주의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만들어도 죄가 되지 않는다. 한화 김승연 회장의 집행유예 판결과 배임ㆍ횡령혐의로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정몽구 현대기아차 그룹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법원의 판결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형식적으로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을 이념으로 한다지만 이러한 이념이 완벽하게 실현되고 있는 나라를 찾아보기 어렵다.

공존할 수 없는 기독교와 자본주의가 공생할 수 있게 된 것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기독교의 변질이다. 오늘날 교회는 공유사상이 아니라 철저하게 천민자본주의를 빼 닮았다.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내어주며, 겉옷을 달라는 자에게 속옷까지 벗어주며, 오리를 가자는 자에게 십리를 가주고, 구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며,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 예수의 사상이다. 

한 청년이 예수께 찾아와 물었다.

“선생님, 제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다.

“생명으로 들어가려거든 계명을 지켜라”

청년이 대답했다. 

“저는 언제나 그 계명들을 다 지키고 있습니다. 아직도 무엇을 더 해야 합니까?” 

예수께서는 다시 청년에게 이르셨다. 

“만일 네가 완전하게 되려거든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말씀을 들은 젊은이는 큰 부자였으므로 침울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예수님은 떠나는 부자청년을 보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다. 다시 말하지만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예수님이 살아계신다면 오늘날의 교회를 보고 뭐라고 하실까? 교회는 이미 예수의 가르침과는 정 반대의 길을 부자청년처럼 떠난 지 오래다.

이제 남은 답은 분명하다. 교회가 변절했다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정체성을 찾던지 아니면 기독교라는 이름을 ‘자본주의교’라고 바꾸든지 해야 한다. 신의 뜻을 저버리고 어떻게 ‘이 땅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것인가? 자본주의와 어정쩡하게 한 지붕 두 가족처럼 공생하는 것은 하나님만 속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까지 속이는 이중 죄를 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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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12.07.23 06:30


 

정부가 다음 달 초 발표 예정인 세제개편안과 관련해 종교인 과세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이번 개편 안에 그동안 논란이 됐던 종교인과세문제도 최종 정리할 것이라고 한다. 종교인 과세를 놓고 찬반입장이 첨예하다.

 

종교인 과세 반대론자들은 ‘종교인에 대한 과세는 종교인은 근로자가 아닌 성직자라는 점과  세금을 공제한 돈으로 헌금한 이중과세이기 때문에 소득세가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종교세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종교인들도 종교인이 기 이전에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이고,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내야 하는데 종교인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21일 KBS 1TV 심야토론에서 방영된 ‘종교인 과세,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의 토론을 재미있게 봤다. 이 토론에 참석한 사람은 종교인세 반대쪽에서 이억주 (한국교회언론회 대변인, 목사)와 문병호 (총신대 신학과 교수), 찬성쪽에서는 김광윤 (아주대 경영학부 교수)와 이진오 (더함공동체 교회 목사)가 참석했다.

 

토론의 주제가 ‘종교인과세’지만 주제에 비해 불교와 다른 종교는 제외하고 개신교로 한정했던 점이 아쉬웠다. 이왕 주제가 종교인 과세라면 종교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다양한 사람들까지를 포함한 모든 종교인들도 토론자 혹은 패널로 참석해 이 문제에 대한 심도 깊은 얘기를 나눴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날 토론의 핵심이 된 주제 중 종교인 과세반대 토론자의 입장을 보자.

 

첫째, 종교인은 성직자이기 때문에 세금을 수 없다...?

 

종교인이 성직자라는 것은 종교인들 끼리 통하는 말이다. 종교인들은 종교인이기 이전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 개세주의’(모든 국민이 세금을 내야 한다는 주장)의 원칙에 따라 당연히 세금을 내야 하는 게 맞다. 개신교와 다르게 천주교에서는 신부와 수녀는 임금에 원천징수를 하고 받는다. 개신교 목사들 중에도 일부 양심적인 목사는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고 있다. 또한 천주교에서 신부와 수녀 등 모든 천주교 사제는 1994년부터 천주교주교회의 결정에 따라 소득세를 내고 있다. 성직자는 세금을 낼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둘째, 성직자에게 과세하는 것은 이중과세라는 주장에 대해....

 

종교인은 봉사 직업이고, 신도들이 이미 과세한 뒤에 남은 돈을 헌금하는 것이기 때문에 종교인 과세는 이중과세라고 한다. 사회복지단체나 아동보호시설 혹은 시민단체에도 모두 소득신고를 한다. 공무원은 국민세금으로 월급을 받는다. 이것도 이중과세인가.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김광윤교수도 지적했듯이 목사들의 세금이 이중과세라면 운전기사를 고용해 임금을 주면 운전기사가 받은 임금에 대한 과세도 이중과세에 해당되는가?

 

세째, 목회자는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과세는 옳지 않다고 주장에 대해...

 

근로자란 무슨 뜻인가? 노동 혹은 근로라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물리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기능’으로 ‘사람이 생존·생활을 위하여 특정한 대상에게 육체적·정신적으로 행하는 활동’을 통 털어 노동이라고 한다. 선교활동이나 목회활동이 노동이 아니라는 생각은 언어에 대한 이해 부족이거나 아니면 성직(?)이 특수 활동이라는 것은 성직자이기 이전에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이요, 모든 국민은 근로한 소득에 대해 당연히 조세의 의무를 져야한다.

 

넷째, 종교단체가 하는 수익사업에 대한 투명한 과세조차 거부할 것인가?

 

현재 종교계는 헌금을 거둘 뿐만 아니라 수익사업도 한다. "부동산 투자, 종교법인 학원들, 종교법인 병원, 종교법인 사회복지시설 등 엄청난 재산이 있어도 통계에는 잡히지 않고 있다. 이를 위해 하루빨리 ‘종교법인 법’을 제정, 수익에 대한 재정투명화를 실천해야 한다. 언제까지 종교단체의 수익사업까지 국가가 모른 채하고 특혜를 줄 것인가?

 

 

전 세계에서 종교인이 세금을 내지 않는 나라는 유일하게 한국뿐이다. 더구나 종교관련 법규가 없는 나라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뿐이다. 통계청의 인구센서스 조사를 보면, 한국의 기독교 신자는 860만 명으로 추산됐다. 십일조 규모가 개인당 월 10만원~15만원을 낸다는 계산을 하면 조 단위가 넘는 돈이 십일조로 나가는 상황이다.

 

헌금뿐만 아니라 종교계는 부동산 투자, 종교법인 학원들, 종교법인 병원, 종교법인 사회복지시설 등 수익사업으로 어마어마한 재산이 있지만 통계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종교법인 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시급한 이유다. 국민평등권(헌법 11조)은 물론 납세의 의무(헌법 38조)까지 위반하는 종교인, 면세대상의 목회자도 있지만 연간 10억이 넘는 종교인에게 언제까지 과세 대상이 아니라고 모른 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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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8.19 05:00



입만 열면 친서민이니 중도실용을 외치던 이명박대통령이 이번에는 ‘공생발전을 위한 새로운 시장 경제’를 외치고 있다. 4대강 사업으로 환경을 파괴하면서 지구환경보전 어쩌고 하고, 친서민 어쩌고 하면서 초등학생 무상급식을 복지포퓰리즘이란다.
이명박 대통령의 현란한 8·15경축사를 들으면 이 사람은 자신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나 하는 지. 도대체 어느 나라 예기를 하는 지 헷갈린다. 기독교 장로이기도 한 이명박 대통령... 모든 기독교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는 기독교인들의 머리속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었기에 이렇게 후안무치한 짓도 마다하지 않을까?


기독교의 핵심 사상은 사랑이다. 예수는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고 했다. 그 이웃이 누군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이웃이란 ‘옆집에 사는 사람’이 아니다. 이웃이란 도움이 필요하는 사람... 당장 도와주지 않으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그런 사람을 성서는 이웃으로 표현했다. 안식일이 생긴 연유를 보면 안다. 기독교인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십계명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는 안식일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엿새 동안 일하고 하루를 쉬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하기 어려웠던 노예를 보호하기 위한 하느님의 사랑에서 시작된 것이다. 안식일이니 안식년이니 희년이란 그런 의미다.

그런 사랑을 실천하자는 게 기독교 정신이다. 예수의 사랑을 실천해 이 땅을 하느님의 나라(천국)으로 만들겠다는 게 기독교인들의 임무다. 그런 예수의 제자가 되겠다는 이명박 장로가 상위 20%의 소득이 64조 원을 웃돌아 ‘20대 80의 사회’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독교인 수가 전체 인구의 25%가 된다고 하니 적어도 4명 중 한 명이 기독교인이다. 세계70억 인구 중 기독교인 수가 22억 9245만명으로 약 3분의 1이 기독교인인 셈이다. 기독교인들이 짝통이 아니라면 이 세상은 벌써 예수가 바라는 천국이 실현되고 있을 것 아닌가?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내 탓이로소이다’를 외치며 예수를 따라 살겠다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데 왜 세상은 날이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는 것일까? 기독교신자들은 이 땅을 하늘나라로 만들기 위해 예수의 고난에 동참한다고들 한다. 고통과 고난은 다르다.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고난이란 어떤 것일까? 고통이란 ‘몸이나 마음이 괴롭고 아픈 느낌’ 즉 개인적인 것이다. 그러나 고난은 ‘괴로움과 어려움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자신이 아닌 이웃과 주변의 문제로 당하는 아픔’을 뜻한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고통과 고난을 혼동하는 건 아닐까?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뜻은 바로 고난에 동참이다. 예수가 가장 사람한 사람은 누군가? 가난한 자와 병든 자, 눈먼 자, 과부, 소외 받은 자.... 그런 사람 아닌가? 예수는 자신이 아니라 그런 사람을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태어났고, 사람들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를 졌던 게 아닌가? 그렇게 사는 게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오늘날 이 땅에 고난당하는 사람은 누군가? 예수를 믿네 하는 사람들들은 고난에 동참하고 있을까?  


고난에 도찬하는 사람은 누군가? 역사적으로 일제시대 민족해방을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팽개치고 간도에서 혹은 만주에서 혹은 감옥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 아닌가? 박정희정권 아래서 핍박받고 굶주리며 고통 받는 노동자를 위해 자신을 불살라 그들의 고통에 동참한 전태일열사가 바로 예수의 길을 따라 가는 사람이다. 자신보다 해고된 노동자들의 아픔을 보다 못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맞서 35m 높이의 타워크레인에서 226일 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위원이 고난에 동참하는 기독교인이다.


에어컨이 잘 된 냉방 교회에 앉아 ‘제탓이로소이다’라며 가슴을 치는 사람과 찜통같은 크레인 속에서 이웃을 위해 목숨을 건 투쟁을 하고 있는 김진숙과 누가 더 기독교인 다운가? 말세가 되면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 양들을 미혹한다고 했다. 양심은 죽은 지 오랜데 욕심만 살아서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는 선지자, 목회자는 양의 탈을 쓴 늑대다. 그래서 예수는 너희는 거짓선지자를 조심하라고 했다. 거짓을 진실로 만드는 언론인, 선량한 주권자를 기만하는 정치인,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줄밖에 모르는 공무원, 권력의 주변에서 학문에는 관심이 없고 권력자의 눈도장 찍기에만 마음이 있는 학자들, 짝통 기독교인들이 주인되는 세상에는 민주주의도 복지사회도 꿈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분류없음2011.01.05 07:15



며칠 전 저는 제가 운영하는 블로그의 독자로부터 필자를 아끼는 따뜻한 마음이 담긴 소중한 이-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왜 대책없이 기독교를 비난하느냐고요.... 제가 000님의 진정성이 담긴 이-메일을 받고 어떤 형식으로라도 해명이랄까 변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제 글에 대한 필자로서의 책임 때문입니다.

제가 저의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통해 기독교에 대한 비판의 글을 적지 않게 썼던 게 사실입니다. 그것이 질문하신 분의 표현처럼 ‘적지 않은 영향력'으로 비쳐졌건 아니면 ’악의적인 비난‘으로 비쳐졌건 간에 글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의무감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나는 왜 기독교를 비판하는가?>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기독교만 비판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이데올로기가 된 종교. 하느님의 뜻(신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거부하고 부정한 권력(그 권력이 식민지 종주국이든, 주권을 도둑질한 쿠데타의 주역이든, 주인을 살해한 살인정권이든간에...)의 시녀가 된 종교를 싫어합니다. 무소유사상의 종교가 교의를 거부하고 현실과 손잡고 신자들의 눈을 감긴 종교는 모두가 싫습니다. 특히 예수를 팔아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이비 교회지도자를 싫어하고 미워합니다.




                                                             <사진 :웃는 돼지의 쉼터에서>


제가 권력이 된 기독교(개신교와 천주교를 포함한...)를 싫어하게 된 이유는 ‘대통령을 위한 조찬기도회’를 하는 목회자를 보고난 후부터입니다. 국민의 주권을 빼앗은 독재자를 위해 또 광주시민을 죽인 살인자를 위해 ‘권력을 위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다’며 축복을 하는 목회자를 보고 저 사람들은 예수를 판 가롯 유다의 후신이거나 양의 탈을 쓴 늑대라고 확신했습니다.

권력의 편에서 약자의 목을 조르는 양의 탈을 쓴 교회 지도자들. 하느님 대신 돈을 우상으로 섬기는 기독교 지도자들. 부자들의 편에서 가난한 자의 숨통을 조이는 권력가가 된 목사와 신부들. 좀 더 넓게는 공유사상의 예수를 사유사상으로 정당화시켜 천민자본주의와 손잡은 변절한 목회자들, 종교 지도자들... 그들이 예수님을 팔아 스스로 존경을 받는 기독교나 불교가 싫었기 때문에 침묵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서양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십자군전쟁에서부터, 가까이는 중동전쟁에서 기독교 국가의 잔인성에 몸서리를 쳤습니다. 이스라엘의 편에서 아랍을 악의 화신으로 규정하고 무기를 팔아먹는 기독교 국가인 미국. 그 미국에 편에 서서 사랑을 말하고 정의 운운하는 이명박류의 기독교인들... 우리 역사에도 황사영의 백서사건에서부터 식민지시대 민족을 배신한 부끄러운 기독교 역사며 불의한 권력의 시녀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건국초기의 변절한 기독교 지도자들....

타락한 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정부가 무소유를 교의로 삼는 종교단체에 왜 그렇게 많은 특혜를 베풀고 면세까지 해 주겠습니까? 타락한 자본주의와 손잡고 체제이데올로기의 수호자 역할을 하는 종교는 기독교든 불교든 그것은 교의와 무관한 억압자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권력이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종교를 파트너로 삼고 시혜를 베풀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역사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말 천주교의 박해는 무엇을 말해줍니까? 현대에도 해방신학이 왜 권력의 미움을 받고 있는지... 민중 신학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압니다. 악행을 일삼는 종교지도자는 내세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그들이 진짜 지옥이 있다고 믿는다면 권력의 편에서 억압자가 되어 약자의 숨통을 조이겠습니까? 진짜 하느님이 살아 있고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믿는다면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전혀 반대의 삶을 살기를 자원할 리 있겠습니까?

‘이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더러 천국을 말하고 지옥을 논할 자격을 주었단 말인가? 권력의 시녀가 되어 약자의 숨통을 조이면서 어떻게 사랑을 말하고 정의를 외칠 수 있단 말인가?’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평신도의 귀에도 하느님의 진노하신 목소리를 듣는데 권력의 맛을 알고 있는 사이비 목자에게는 하느님의 진노가 들리지 않을 리 있겠습니까?

<내가 침묵할 수 없는 이유>

진부한 얘기지만 한 가지 예를 들고 제 변명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술 취한 운전자가 좌충우돌 계속 사람들을 치어 죽이고 있다면... 다친 사람을 구해주는 일과 술 취한 운전자를 운전석에서 끌어내리는 일 중 어떤 일이 선차적일까요? 따뜻한 성당에 앉아 하느님께 기도하는 일과 눈보라치는 거리에서 약자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시위에 나서는 일 중 어떤 일이 먼저일까요?

성경은 말합니다. 기도하기 전 하느님은 자녀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필요한 지 다 알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모순을 온몸으로 투쟁하지 않고 방안에서 기도만 하라고 가르치는 목자는 신자들을 바른 길로 이끄는 목회자일까요? 자본이나 권력이 약자의 목을 조를 때 자본주의가 저질러 놓은 가난한 자를 돕기 위한 자선행사를 하는 일과 체제 모순을 개선하기 위해 투쟁에 나서는 일 중 어떤 일이 선차적일까요?

고백컨데 저는 기독교에 대해서 또 자본주의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논리적인 체계를 갖춰 주장할 만큼 배우지도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손잡고 가난한자와 소외받은 자들의 숨통을 조이는 모습을 보고 침묵하는 게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침묵한느 것은 하느님께 죄를 짓는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체제모순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나는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확신을 하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너희가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치리라’ 예수님의 질책이 저를 침묵할 수 없게 만든 사연입니다.

* 어쩌다 지워져서 다시 올렸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