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6.07.12 [철학교실] 인권이란 무엇인가? (6)
  2. 2011.06.23 가난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25)
  3. 2011.05.21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10)
  4. 2010.12.07 모든 기록은 진실인가 (14)
  5. 2009.03.23 모든 기록은 진실일까?
정치/철학2016.07.12 06:57


이 글은 매주 화요일 동네 아이들 모아놓고 가르치는 철학교실 교안입니다.

금발에, 파란 눈, 그리고 키가 큰 사람

히틀러가 말하는 이상적인 아리아인이다.

히틀러는 독일의 총리가 되기 수년 전부터 인종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 "열등한 인종"으로 간주되는 사람들의 출산을 제한함으로서 개선될 수 있다고 믿고 독일 과학자들의 힘을 빌어 1933년부터 독일 의사들을 동원 불임 수술을 한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이라는 책에서 역사란 생존을 위해 인종 간에 벌어지는 갈등이라고 했다. 1941년부터 130만명의 유대인 대학살이 시작된다. 1939년부터 치료불가능한 질병이나 장애아 등록받아 안락사시키고 1940년부터 1941년까지 약 5~2만명의 독일인 장애아가 살해되고 최소한 275천명이 살해당한다. 히틀러는 홀로코스트에서 보듯이 유대인 600만명을 비롯해 소련인까지 1700만명이 학살당했다.

홀로코스트 동영상 보기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


민중은 개, 돼지로 취급하며 된다. 그래서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

상하의 격차가 어느 정도 존재하는 사회가 어찌 보편적인 사회가 아니냐?“

나는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평등할 수가 없기 때문에 현실을 인정해야한다.” “신분이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미국을 보면 흑인이나 히스패닉, 이런 애들은 정치니 뭐니 이런 높은 데 올라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대신 상·하원위에 있는 사람들이 걔들까지 먹고살 수 있게 해주면 되는 거다. 출발선상이 다른데 그게 어떻게 같아지나. 현실이라는 게 있는데."

78, 교육부나향욱정책기획관이라는 사람이 교육부출입기자들과 저녁식사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나향욱정책기획관이 한말은 무엇이 잘못됐는가?

우리헌법 대한민국헌법 제11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세계인권선언 제 2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그 밖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기타의 지위 등에 따른 어떠한 종류의 구별도 없이, 이 선언에 제시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 나아가 개인이 속한 나라나 영역이 독립국이든 신탁통치지역이든, 비자치지역이든 또는 그 밖의 다른 주권상의 제한을 받고 있는 지역이든, 그 나라나 영역의 정치적, 사법적, 국제적 지위를 근거로 차별이 행하여져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묵자 겸애사상 - “이웃을 네멈처럼 사랑한다면 어찌 불효가 있을 수 있겠는가?”

마태복음 -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인권이란 무엇인가?

인권이란 '사람이 사람답게,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기 위한 인간의 모든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권리 및 지위와 자격들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인권이 중요한 이유는 없으면 생명이 위험하다는 의미다.

우리 헌법 헌법 제10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이 헌법에 수용된 것은 1919년 바이마르 헌법에서부터였다. 우리나라는 1962년 헌법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처음으로 규정하였다. 국제적 차원에서도 1945년의 국제 연합헌장, 1948년의 세계인권선언, 1966년의 국제인권규약(A규약 前文)등에 인간의 존엄성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는 인간존중의 정신이다. 인간존중은 인물이나 지위 따위가 감히 범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엄숙함을 뜻하는 말로 자유와 평등을 보장함으로써 인간존중을 실현할 수 있다는 원리 즐 입헌주의(민주주의)에 근거를 둔다. 민주주의는 그리스의 인간 중심 사상 르네상스 종교 개혁 사회계약설(기본권 사상) 계몽 사상 시민 혁명 입헌주의(민주주의) 순으로 발전해 왔다.

인권 동영상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UwSU8krLNfQ

[참고자료인권의 역사

자연법사상은 그 기원이 고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근대적인 자연권사상은 영국의 홉스의 자기보존권과 자연적 자유권, 로크의 재산권과 저항권, 프랑스의 루소의 평등권사상 등, 근대자연법론과 국가계약설에 의하여 형성되면서 1718세기 영국 미국 프랑스에 있어서 시민혁명의 사상적 지도이념이 되었으며 시민혁명의 성공으로 근대 입헌민주주의 헌법상의 기본적 인권보장으로 성문화되고 확립되었다

1689년 영국의 권리장전, 1776년 미국 버지니아주 헌법의 인권선언과 미국독립선언, 1789년 프랑스의 인권선언에서 표현된 자연권사상은 그 후 모든 입헌국가의 헌법에서 기본적 인권이라는 실정법적 권리로 보장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제연합(UN)헌장(1945)과 세계인권선언(1948)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자연권사상은 미국 독립선언문에서 우리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조물주에 의하여 일정한 불가양의 권리가 부여되었다.

그 가운데에는 생명 자유 및 행복의 추구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자명(自明)의 진리로 믿는다라고 한 것이 그 내용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또한 프랑스 인권선언 전문(前文)에서는 누구라도 침범할 수 없는 자연적인 인권, 1조에서는 사람은 나면서부터 자유이며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2조에서는 모든 정치적 조직의 목적은 인권의 옹호에 있으며, 인권은 자유 재산 안전 및 압제에 대한 반항의 권리를 보유하는 데 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한 세계인권선언 전문에서는 인류사회의 모든 구성원의 고유의 존엄성과 평등하고 불가양의 권리를 승인함은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토론 주제 – 자유와 평등은 공존할 수 있는가인간만이 존엄한 존재인가?

우리주변에 인권을 침해 하는 사례를 찾아보자.

학교의 교칙 체벌, 언어폭력, 두발, 복장 제한, 용의검사....

차이''차별'은 어떻게 다른가?

차이란 '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름, 차별은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두어서 구별함을 의미한다.

차이 남자와 여자(다르다)

차별 정치적 견해, 재산의 차이, 외모, 인종, 피부, 민족, 언어, 성별.....(우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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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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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간의 속성이 기고만장해지면
    저렇게 아무 말이나 내뱉어도 되는 줄 아는 것 같습니다.
    아마 저 나기획관은 아직도 왜 자기 말에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는지 아직도
    잘 모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서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리겠지요.
    최대한 낮은 수위의 징계만 떨어지기를 기다리면서요. ㅠㅠ

    2016.07.12 07:4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정신병자 같습니다.
      맨정신으로 어떻게 저런 말을 그것도 기자들 앞에서 할 수 있겠습니까? 저런 인감이 만든 종책으로 지금까지 학교에서 교육을 했다니 소름이 돋습니다.

      2016.07.12 13:56 신고 [ ADDR : EDIT/ DEL ]
  2. 광주의 김대중컨벤션역이 인권역입니다
    그 역에서 세계인권선언을 보았고 인권에 대한 자료를 보았습니다

    민중은 개.돼지라는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청와대에서
    일하도록 시킨 사람들이 개,돼지입니다

    2016.07.12 07:5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교육자들.... 교사들까지도 교원과 인권이 상충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권조례가 통과된 시도는 서너개 시도교육청 밖에 없습니다. 부끄러운 나라입니다.

      2016.07.12 13:58 신고 [ ADDR : EDIT/ DEL ]
  3.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이 인공지능에도 내몰리기 전에 교육에서 확실한 대비책이 나왔으면 합니다.

    2016.07.12 17:2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안타깝습니다. 눈앞에 뻔히 보이는데... 변화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알파고시대 아날로그 교육, 학교도 학부모도 관심밖입니다.

      2016.07.12 21:44 신고 [ ADDR : EDIT/ DEL ]

종교2011.06.23 06:45



성경을 읽다보면 참 헷갈린다. 마태복음 5장 3절에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쓰여 있는데 누가복음 6장 20절에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했기 때문에 일 점 일획도 틀림이 없다는 고전적 성경(형성)관 즉 무오류설은 이 구절을 뭐라고 해석하는지 몰라도 ‘마음이 가난한자’와 ‘가난한자’는 뜻이 다르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생에서>

왜 이 성경구절이 생각났는가 하면 졸업식을 며칠 앞 둔 어느 날 한 여학생이 내게 찾아왔다. 말문을 열기도 전에 눈물부터 흘리면서 하는 말 “선생님. 저 등록 못했어요!” 이 말 한 마디를 해 놓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었다. 대학에 합격하고도 등록을 못하는 제자를 보고 ‘가난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대학생활을 꿈꾸며 마음이 들떠 있는데 수시모집에 합격하고도 등록을 포기해야 하는 어린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런데 왜 성서는 이런 가난을 두고 축복이라고 했을까? 예수님이 가난의 고통이 얼마나 처절한지 몰라서 비아냥거렸을 리도 없는데 말이다. 가난이란 사전적으로 ‘마땅히 있어야 할 무엇인가가 부족하고 결핍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면 가난이란 '신체의 어느 부위를 잃었거나 돈이 없거나, 정신적으로는 머리가 나쁘다든지 의지가 약하거나,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것‘ 등이 아닐까? 이렇게 해석하면 ’가난한자가 복이 있다‘는 말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에 가깝다.


그렇다면 왜 마태는 ‘심령이 가난하자’가 복이 있다고 하고 누가는 ‘가난한자는 복이 있다..’라고 했을까? 예수님같이 훌륭하신 분이 한 입으로 두 가지 말을 했을 리도 없는데 말이다. 신학자가 말하는 ‘가난한 자’와 ‘마음이 가난한자’의 차이를 성경을 최초로 기록한 누가의 ‘가난한 자’가 이를 참고로 후에 기록한 마태가 ‘부자들의 눈치를 살핀...’ 기독교와 세상의 타협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나는 여기서 성경의 무오류설이나 마태의 변절(?)을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성경공부를 체계적으로 하지 못한 문외한의 판단으로는 성경에서 말하는 가난이란 '경제적이 부'에 무게 중심을 두고 한 말이 아니라 '무욕(無慾)과 무소유(無所有), 그리고 섬김과 나눔의 마음‘이 아닐까 나름대로 해석하고 싶다. ’마음이 배부른자‘는 사실이 사실로 보이지 않는다. 절대 빈곤에 맞닥뜨려 보지 않고 어떻게 가난한 자의 고통을 안다고 할 수 있는가?

가난을 보는 사람들의 시각도 가지각색이다. 고전적인 의미로 ‘가난은 나랏님도 못막는다.’거나 ‘부자는 하늘이 내려준 축복이다’는 운명론적 해석이 있는가하면 오늘날의 가난은 ‘개인의 노력보다 사회적인 정책이나 제도가 만든 결과’로 보는 이도 있다. 사실 일할 의욕이 없거나 일거리가 있어도 게을러서 가난해지는 ‘자초한 가난’이야 당연한 업보겠지만 일자리가 없거나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야 개인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것은 무리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 앞에서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을 두고 ‘죽을 용기가 있으면 무슨 잣인들 못하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자살을 정당화하거나 교사(敎唆)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이들에게 희망을 앗아간 정책이나 제도가 밉다는 뜻이다. 희망이 보이는 데, 가능성이 있는데... 누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까? 가난한 사람이라고 죽음의 공포나 희로애락을 모르겠는가? 그들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행복해질 권리도 있다.

꿈 많은 소녀에게 고통과 좌절감을 안겨주는 가난이 없는 사회를 만들 수는 없을까? 정직한 부자는 축복받아 당연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가난은 부자들의 지나친 탐욕이나 그들과 손잡은 권력이 만든 결과다. 가난한 사람들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 그것은 부자들이 만든 국부(國富)의 공적 못지않게 중요하고도 귀하다.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최소한의 권리조차 앗아간다면 이런 사회에서 천국의 희망을 꿈꾸는 자는 과연 몇이나 될까? 각박한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은 천국이 저희 것’이 될 수 있는 세상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나만의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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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여나 부자가 되기는 어렵지만
    가난까지 물려받는 것은 아니겠죠?..
    부자는 되기 어려워도
    가난은 자신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적 가난보다는
    정신적 가난이 더욱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2011.06.23 07:19 [ ADDR : EDIT/ DEL : REPLY ]
    • 사실 일할 의욕이 없거나 일거리가 있어도 게을러서 가난해지는 ‘자초한 가난’이야 당연한 업보겠지만 일자리가 없거나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야 개인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것은 무리다.
      글을 안읽으셨군요............

      2014.05.02 10:44 [ ADDR : EDIT/ DEL ]
  3. 정직한 삶을 택하면 가난해지는 나라입니다.
    돈을 위해서는 거짓과 불의가 난무해지는 나라입니다.
    가난이 축복은 아니지만 깨끗함을 위한 선택은 될 수 있을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 선택이 너무 힘든 길이 된다는 사실이죠 ㅠㅠ

    2011.06.23 07:2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그렇죠.
    가난은 정말 한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말이지요.
    이유라 어떻든 간에, 일단 부자가 되어야 살만한 세상이 보인다는 것이 지금 우리 시대의 현실이죠...
    에효;

    2011.06.23 07:4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서민들의 삶이 녹녹치 않음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가난...나라님이 극복해야 할 부분은 복지가 아닐지..

    잘 보고가요

    2011.06.23 07:4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돌체

    가난은 축복도 저주도 아닌것 같아요
    지금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가난해서 얻을수 있는게 있다면
    가난해도 마음은 풍요로울수 있더라구요
    좋은글 잘 보고갑니다

    2011.06.23 08:03 [ ADDR : EDIT/ DEL : REPLY ]
  7. 정말 가난이라는것이
    축복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뭐 부자들은 조금더 가졌다고 말하지만,
    정말 힘든사람들도 있거든요 밥도 못먹는...
    우리나라가 조금만 더 힘을 써야할듯해요.

    2011.06.23 08:08 [ ADDR : EDIT/ DEL : REPLY ]
  8. 우리에겐 부자가 될 권리도 있고 가난할 권리(?)도 있겠습니다만, 부자가 되면서 잊고사는 인간 본연의 모습 때문에 세상이 이렇듯 시끄러울까요. 참 어려운 명제 같습니다. 결론부가 가슴에 와 닿네요.

    2011.06.23 08:1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9. 가난때문에 밥못먹고 배우지 못하는걸 볼때면 참으로 마음이 아파요 애낳아라 낳아라 하면서 정작 낳아서 키우려면 어마어마한 돈이 드는 것도 문제라 생각해요 애낳고 싶은 나라를 만들어줘야지 이건 뭐 낳고 싶은 마음 눈꼽만큼도 안들게하는 정책들이
    뿐이예요 답답한 마음입니다

    2011.06.23 08:37 [ ADDR : EDIT/ DEL : REPLY ]
  10. 성경에서 말하는 가난이라 무욕 무소유보다는 자기 절대연약하다는 말로 하나님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는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2011.06.23 08:46 [ ADDR : EDIT/ DEL : REPLY ]
  11. 우리 과동기중에 입학성적이 뛰어났지만 집이 가난해서 등록을 못하는 친구가
    대학측에서 그친구 모교에 연락을 했었습니다. 성적이 우수한데 왜 등록을 안하냐고 수석은 경기여고 나온 친구가 했었어요. 과수석에게만 약간의 장학금이 나왔지요.담임 선생님이 교무실에서 선생님에게 말해서 선생님들이 등록금을 해주었습니다.
    대학내내 학생 과외자리도 소개해주었습니다.
    그친구는 장학금을 계속 받고 수석졸업했습니다. 중학교교사를 하다가 대학원을 마치고 모교의 강사가 됏습니다. 저는 40대이후 지금까지 가난하지만 최소의 지출만 하기 때문에 마음은 늘 평화롭습니다.
    아들들도 단단하고 성실하게 잘자란 편입니다. 최악의 가난도 극복하기 나름입니다. 사회의 책임도 있지만 본인의 극복의지도 필요합니다. 그학생은 학자금 대출을 받앗으면 됐을 텐데 안타깝군요.

    2011.06.23 09:32 [ ADDR : EDIT/ DEL : REPLY ]
    • 개인적인 생각으로 가난은 축복도 저주도 아니고
      인생의 역경입니다. 하나의 장애물이지요.
      제가 생각지도 못한 질병을 오래 앓았던 것도 그리 받아 들였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대체적인 고난과 역경은 사람이 만든 인과응보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2011.06.23 09:34 [ ADDR : EDIT/ DEL ]
  12. 현 싯점에서 가난이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우리나라 현실은 가난은 분명 저주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날,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2011.06.23 11:35 [ ADDR : EDIT/ DEL : REPLY ]
  13.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가난이라는 건 안타깝게도
    축복이기보다는 저주의 모습이 강한 것 같습니다..

    2011.06.23 12: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4. 그렇겠지요 .성경에서는 마음이 가난한 자를
    일컫었겠지요. 가난은 축복일수 없습니다.
    극복해야될 한 과정이라 생각됩니다.

    2011.06.23 16:45 [ ADDR : EDIT/ DEL : REPLY ]
  15. 많은 생각을 하게되네요.

    2011.06.23 18:20 [ ADDR : EDIT/ DEL : REPLY ]
  16. 가슴아픈일입니다.
    돈이 없어 젊은이의 꿈이 짓밟히지는 말아야하는건데....
    그런 일은 우리 시대에만으로도 족한데 말입니다.
    돈이 없어도 국가가 비빌언덕이 되어주는 나라
    우리는 언제나 그런 시대가 오려나요.....

    2011.06.23 19:5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7. 가난은 정말 극복해야할 장애물이라 생각 됩니다
    최선을 다해 살아야 겠습니다

    2011.06.23 22:1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8. 학원에서 잠깐 일해봐서
    가난이 어린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알죠...

    참... 대학에 합격하고도 돈때문에 못가는 친구들이 없어야 할텐데요...

    2011.06.24 04:3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9. 가난은 생각하기 또는 경험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난해도 마음이 풍요로운 자가 있으니까요.

    2011.06.28 02:4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0. 나는샤만이다

    가난은 비극이다. 물질이 가난해도 비극이고 정신이 가난해도 비극이고..! 예수님이 말한 심령이 가난한자라는 것은 욕심이 없는 사람이겠지! 남의 돈 뺏어 먹을려는 사악한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 마음을 말함이라..! 꼭 그것을 물질적 가난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2011.06.28 14:10 [ ADDR : EDIT/ DEL : REPLY ]
  21. 이세상은 부자들떄문에 세상이 더 망해가는 느낌이에요....자연파괴시키면서, 노동력갈취하며 , 폭리 ,탈세로 배불리는 부자들이 세상을 더 위험하게 합니다...약자가 당하는거죠..

    노동력이 있어야 자신들도 먹고 사는건데..노동자 존엄을 무시하는 사람들...

    자연을 파괴시켜야 밥먹고 살수 있는 사업들이 꽤 많죠.....

    2011.06.30 15:18 [ ADDR : EDIT/ DEL : REPLY ]

종교2011.05.21 05:00



예수님의 동생이자 초대 교회의 유력한 지도자였던 야고보는 교인들에게,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라고 경고했습니다. 지도자가 되지 말라고 한 뜻은 지도자가 받을 더 큰 심판보다 지도자 때문에 발생할지도 모를 교회 공동체의 엄청난 피해를 더 염려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역사를 돌이켜 보면, 지도자를 잘못 만났거나 잘못 선택한 바람에 불안과 공포에 떨고, 끔찍한 비극을 겪어야 했던 기억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는 물욕과 권력욕과 명예욕에 취한 교회 지도자들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소금이어야 할 교회가 병들어 가는 이유가 무엇일가요? 교회는 늘어나는데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은 왜 날이 갈수록 심해질까요?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성서에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마태복음 5:3)’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목회자들은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 헌금을 강요하세요? 제정일치(祭政一致)시대 십일조관행을 제정(祭政)이 분리된 지가 언젠데 아직도 바꾸지 않고 있습니까? 세금은 세무서에서 따로 내는데 소득의 십분의 일을 내는 게 맞나요? 그리고 시민들이나 기업들은 세금을 다 내는데 왜 교회는 세금을 내지 않는지요? 교회가 세금을 내지 않는 대신 가난한 사람들이 조세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양심적이지 못한 일이 아닌가요? 십일조 안내면 왜 하나님 재물을 훔치는 도둑이라고 강조하시나요?

성서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기도는 하느님이 다 들어주신다고 했는데 기도(祈禱)를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야고보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예배는 강조하고 실천을 강조하지 않는지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절) 하지 않았나요?

교회는 권력의 시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일제시대는 황국신민화에 앞장서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거치면서 왜 ‘권력은 위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다’며 불의한 권력을 두둔하던 아픔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왜 독재자를 두둔하고 살인자를 비호해야 할까요? 하느님은 가난한 자, 소외된 자, 병들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과 아픔을 함께 하셨던 분이 아닌가요?


정의보다 순종을 강요하는 게 하느님의 뜻인가요? 야훼를 강조하는가, 아니면 예수님을 강조하는가 아니면 성령을 강조하는가에 따라 하느님은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는 건 상식입니다.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도 아는 상식을 목회자는 왜 역사의 고비마다 신자들에게 정의보다 순종을 강요해 불의에 침묵하도록 가르쳐 왔습니까?

교회가 하느님보다 소중한가요?
교회란 무엇입니까? 초대교회를 생각해보세요. 초대교회 예수님의 제자들은 선교를 하다 잡히면 십자가에 달리는 희생을 당해야 하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순교를 각오하는 모임이 교회의 시작이 아니었던가요? 죽음의 결의를 다지는 장소, 실천의 각오를 다지는 장소가 교회 아니었나요? 그런데 그런 교회가 하느님이 바라는 모습으로 운영되고 있나요?


유다인들의 과월절이 가까워지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인자하시고 순한 양 같으신 예수님이 '성전 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장사꾼들과 환금상 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모두 쫓아내시고 환금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며 그 상을 둘러엎으셨습니다. 그리고 비둘기 장수들에게 "이것들을 거두어 가라. 다시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꾸짖으셨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장하는 사람들의 집으로 예수님의 꾸중을 듣지는 않을 런지요?

교회는 죄를 씻어주는 세탁소가 아닙니다.
누구나 회개만 하면 다 용서해 주신다고요? 전두환처럼 수많은 광주시민을 죽여 놓고 ‘하나님을 믿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하면 속죄가 되는 걸까요? 진정한 회개란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는 것’(요나서 3장 8절)이라고 했습니다. ‘강포’란 히브리어로 ‘하마스’ 즉 ‘모든 형태의 사회적 불의를 뜻하는 말로 ‘억압과 착취와 박해 등 인간에게 저질러지는 사회적 폭력’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회개는 사회에서 행하던 일상적 폭력에서 떠나 정의와 공평의 삶을 살 때 하느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교황이 허락한 성직자들 외에는 성경을 읽을 수 없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라틴어로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은 성경을 읽을 수도 없었습니다. 오직 신부들이 전하는 것만 신자들은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은 교황의 생각이 그들의 신앙과 행위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은 어떨까요? 성서를 가르치는 신부님. 목사님. 그분들의 시각에 따라 강론이 달라지고 신자들의 신앙관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향한 ‘교회에만 하느님이 없다’는 비판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그 것은 교인들과 교회지도자가 만든 자업자득이라는 사실을 겸허하지 받아들일 때 교회는 소금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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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감가는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참교육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ㅎㅎ

    2011.05.21 06: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교회가 권력시녀가 되었을 때 망했습니다. 중세교회가 방증합니다.

    2011.05.21 08:08 [ ADDR : EDIT/ DEL : REPLY ]
  3. 소금이 맛을 잃으면 독이 됩니다~ 그보다 더무서운것은 없죠~
    즐거운휴일 편하게 보내십시요~

    2011.05.21 08:11 [ ADDR : EDIT/ DEL : REPLY ]
  4. 예수님이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를 확 불에 태우고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쓸모가 없다는 이야길 왜 목사들은
    모르고 살까요? 말로만 하는 그들이 예수님 앞에서 어떤 말을 할까요?

    2011.05.21 08:2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어우 생각만해도 아찔합니다 ^^;;

    2011.05.21 08:25 [ ADDR : EDIT/ DEL : REPLY ]
  6. 한국의 개신교 목사들이 탐하고 있는 <족수=하나님의 영광> 같은 등식을 하루라도 빨리 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목회자 부터 먼저 정신차려야 합니다.

    2011.05.21 08: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7. 꽃기린

    교회에만 하느님이 없다???
    공감이 갑니다.
    소금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런지요?.......


    주말, 편안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2011.05.21 09:18 [ ADDR : EDIT/ DEL : REPLY ]
  8. 소금과 같은 존재로 인식되어야 하는데 어떤 사람은 자신을 위해 이용한다는 느낌을 받고 기독교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 목사가 되고....

    2011.05.21 09:5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9. 100% 동감합니다. 참교육님 말씀처럼 교회는 죄를 씻어주는 세탁소도 아니고 권력의 시녀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교회는 자꾸생겨나지만 더더욱 가고 싶지 않는곳이 교회이기도 합니다.

    2011.05.21 10:3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0. 이담

    저도 동감합니다 ^^

    2011.05.23 11:14 [ ADDR : EDIT/ DEL : REPLY ]

인성교육자료2010.12.07 19:50



 모든 역사는 진실만 기록한 것일까? 만약 박정희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아직까지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5·16을 혁명이라고 기술해 두었을 것이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문서는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믿어도 좋을까? 역사를 비롯한 모든 기록이란 누가?, 왜?, 무엇을?, 어떤 목적에서 기록한 것인가에 따라 내용이 다르게 기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광해군은 대단히 나쁜 임금으로 기록되어 있다. 왜냐하면 역사는 승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광해군이 훌륭한 임금으로 기록 된다면 인조의 반정은 쿠데타가 되기 때문에 광해군은 나쁜 임금으로 기록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역사를 승자의 기록이라 했을까?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보면 광해군은 명,청 교체기에서 중립외교를 통해 국가의 안위를 지킨 탁월한 외교적 안목을 가진 지도자이지만 사가들은 그를 좋게 기록하지 않고 있다.
 


 성서의 예를 들어 보자. 성서를 무오(無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시적인 표현으로 기록하거나 은어(隱語)로 기록되기도 하기 때문에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뜻이 다를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예수 탄생과 죽음의 과정을 최초로 기록으로 남긴 책은 마가복음이다. 마가와 마태는 둘 다 예수의 제자가 아니면서 그런 기록을 했다는 것은 구전된 자료를 모아 기록했다는 뜻이다.

최초로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사람은 베드로의 수행원으로 알려진 마가다.

                    <자료 happy happy 네이버 홈에서>

마가는 네로 황제의 박해가 최고조에 달했던 무렵인 A.D.65-70년경에 마가복음을 기록했다. 예수 사후 6~70년이 지난 뒤 직접 듣지도 않은 예수의 행적을 구전을 모아 기록한 것이다. 이를 두고 '글자의 일점 일획도... '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액면대로 믿어도 좋을까? 하긴 '전능'에 갖다 붙이면 무오(無誤)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사실은 마가 뒤에 기록된 마태와 누가와 요한이 기록한 다른 복음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 6장에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가 마태복음 5장에는 '마음이 가난한 자(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로 기록되어 있어 마태복음에는 '마음이..'라는 없던 글자가 들어 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기록의 차이를 보이는 이유를 후세 사람들은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기도 한다.

나는 마태는 유대인 중심으로 기술하였고, 누가는 이방인을 중심으로 기술하였는데 마태는 유대인들을 의식하여 가난이 곧 행복이고 청빈의 기쁨과 무소유의 자유에 대해서 당당하게 말하지 못한 반면 누가는 가난한 자가 행복한 자라는 예수의 말을 그대로 기록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은 마태가 기록할 당시의 부자들에게 선교를 위해 권력자니 부자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마음이..'라는 글자를 삽입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성서가 아니라도 왕의 입장에서 쓴 역사와 서민의 입장에서 쓴 역사는 다르게 기록될 수밖에 없다. 굶주린 민중이 살아남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관아를 습격해 썩어 가는 곡식을 나누어 먹은 사건을 왕의 입장에서 보면 '민란'이 되고 서민의 입장에서는 '봉기'로 기록될  것이다.


관(觀) 없이 기록을 남길 이유도 없지만 관(觀) 없이는 올바른 해석도 불가능하다. 역사나 성서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서가에 있는 소설조차도 작자의 세계관에 따라 등장인물이나 줄거리가 같을 수가 없다. 시가 그렇고 음악이 그렇고 미술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만나는 미디어는 어떤가? 객관적 보도, 객관적인 진실이 담긴 미디어가 가능할까? 설사 사건보도야 객관적이라고 하더라도 해설이나 논설이란 글쓴이의 주관이나 가치가 담기지 않을 수 없다. 가치가 담기지 않은 논설이란 없다. 역사나 성서가 이데올로기가 담긴다면 그 피해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마찬가지로 신문이나 방송을 비롯한 메스 미디어들이 이해관계나 가치관에 따라 객관적인 진실이 보도되지 않는다면 이는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지난 80년 전두환을 비롯한 정치군인이 폭거에 저항한 민중을 '폭도'로 매도했던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권력의 하수인이 된 언론인, 곡학아세하는 지식인. 학자, 권력의 당근에 길들여진 종교 지도자, 권력에 혼을 판 예술인. 이들은 시대를 초월해 변절하고 권력의 편에 서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이들의 변절에 의해 마취 당한 민중은 가해자의 편에서 수탈과 억압을 당해왔다. 현재도 변절한 학자와 언론인과 종교인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거대한 음모는 약자의 숨통을 조이고 있지나 않을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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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든 기록이 진실일리는 분명 없겠죠...

    2010.12.07 20:1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반갑습니다.
      순진한 사람들은 그렇더군요.
      신문이나 방송에 나온 기사를
      사실로 받아들이더라고요.

      그게 사실기사일 때는 문제가 없지만 가치믄제를 다룬 기사도 말입니다.

      우리나라처럼 갈등과 대립이 첨예화된 사회에서 어떤 신문을 보느냐, 어떤 방송을 듣느냐에 따라삶의 질까지 달라질 수 있는데 말입니다.

      2010.12.08 17:40 신고 [ ADDR : EDIT/ DEL ]
  2. 모든 기록이 진실일리도 없겠지만, 모든 진실을 알 수도 없는 노릇일테고 알려고 하는 사람이 대다수가 아니라는 것 또한 맞아 보입니다. 어젠가도 트위터 타임라인을 따라가다보니 말씀하신 '폭도'를 간첩나부랭이로 비하하는 분들이 여전하더군요. 의도된 거짓이란 것도 나쁘지만... 길들여진 보통사람들을 비난해야하는건가 아닌가 잠시 고민스러웠습니다. 그냥... 답답~

    2010.12.08 09:3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걸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는 게 교육일텐데
      교육에 자율성도 없이
      교과서 특정인의 기준에 의해
      선택된 지식을 진리로 가르치다보니
      답답한 나라가 될 것 같습니다.

      2010.12.08 17:42 신고 [ ADDR : EDIT/ DEL ]
  3. 그래서 더더욱 리영희 선생님의 타계가 안타깝고 슬픈 현실인가 싶습니다. 행복한 저녁시간 되십시오

    2010.12.08 17: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우리시대의 가장 위대한 스승
      리영희선생님! 너무 그슴 아픕니다.
      젊은이들 중에 그분에게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정도 상식이통하게 된 것도 그분의 영향이 아닐까요.

      감사합니다.

      2010.12.08 20:09 신고 [ ADDR : EDIT/ DEL ]
  4. 웃는 낯에 침 뱉으랴

    2012.01.02 12:12 [ ADDR : EDIT/ DEL : REPLY ]
  5.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2.01.07 05:28 [ ADDR : EDIT/ DEL : REPLY ]
  6. 대인들을 의식하여 가난이 곧 행복이고 청빈의 기쁨과 무소유의 자유에 대해서 당당하게 말하지 못한 반면.

    2012.01.11 20:52 [ ADDR : EDIT/ DEL : REPLY ]
  7. 시식이요과운이짱이더구~ㅋ근 바나나를먹면서 변비는 많이좋졌용!음.이거 자칫하면부작용이 난아텐 이 ㄷㄷㄷㄷ게다가원드다이어는살빼긴 쉽지만ㅋㅋㅋ..네..렇습니다.ㅠ

    2012.03.21 07:11 [ ADDR : EDIT/ DEL : REPLY ]
  8.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혼자 내버려 두십시오.

    2012.04.03 21:46 [ ADDR : EDIT/ DEL : REPLY ]
  9. 감사합니다.

    2012.04.05 23:33 [ ADDR : EDIT/ DEL : REPLY ]
  10.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혼자 내버려 두십시오.

    2012.05.08 22:10 [ ADDR : EDIT/ DEL : REPLY ]
  11.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2012.05.11 02:41 [ ADDR : EDIT/ DEL : REPLY ]

분류없음2009.03.23 07:55



모든 역사는 진실만 기록한 것일까? 만약 박정희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아직까지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5·16을 혁명이라고 할 것이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문서는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믿을 수 없다. 누가 왜? 무엇을 ? 어떤 목적에서 기록한 것인가에 따라 내용이 다르게 기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광해군은 대단히 나쁜 임금으로 기록되어 있다. 왜냐하면 역사는 승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광해군이 훌륭한 임금으로 기록 된다면 인조의 반정은 쿠데타가 되기 때문에 광해군은 나쁜 임금으로 기록되지 않을 수 없다.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보면 광해군은 명,청 교체기에서 중립외교를 통해 국가의 안위를 지킨 탁월한 외교적 안목을 가진 지도자이지만 사가들은 그를 좋게 기록하지 않고 있다.

 성서의 예를 들어 보자. 성서를 무오(無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시적인 표현으로 기록하거나 은어(隱語)로 기록되기도 하기 때문에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뜻이 다를 수도 있다.  예수 탄생과 죽음의 과정을 최초로 기록으로 남긴 책은 마가 복음이다. 마가와 마태는 둘 다 예수의 제자가 아니면서 그런 기록을 했다는 것은 구전된 자료를 모아 기록했다는 뜻이다. 최초로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사람은 베드로의 수행원으로 알려진 마가다.

마가는 네로 황제의 박해가 최고조에 달했던 무렵인 A.D.65-70년경에 마가복음을 기록했다. 예수 사후 6~70년이 지난 뒤 직접 듣지도 않은 예수의 행적을 구전을 모아 기록한 것이다. 이를 두고 '글자의 일 점 일 획도... '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액면대로 믿어도 좋을까? 하긴 '전능'에 갖다 붙이면 무오(無誤)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사실은 마가 뒤에 기록된 마태와 누가와 요한이 기록한 다른 복음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 6장에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가 마태복음 5장에는 '마음이 가난한 자(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로 기록되어 있어 마태복음에는 '마음이..'라는 없던 글자가 들어 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기록의 차이를 보이는 이유를 후세 사람들은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기도 한다.

하나는 마태는 유대인 중심으로 기술하였고, 누가는 이방인을 중심으로 기술하였는데 마태는 유대인들을 의식하여 가난이 곧 행복이고 청빈의 기쁨과 무소유의 자유에 대해서 당당하게 말하지 못한 반면 누가는 가난한 자가 행복한 자라는 예수의 말을 그대로 기록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은 마태가 기록할 당시의 부자들에게 선교를 위해 권력자니 부자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마음이..'라는 글자를 삽입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성서가 아니라도 왕의 입장에서 쓴 역사와 서민의 입장에서 쓴 역사는 다르게 기록될 수밖에 없다. 굶주린 민중이 살아남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관아를 습격해 관청의 창고에 썩어 가는 곡식을 나누어 먹은 사건을 왕의 입장에서 보면 '민란'이 되고 서민의 입장에서는 '봉기'로 기록될  것이다. 관(觀) 없이 기록을 남길 이유도 없지만 관(觀) 없이는 올바른 해석도 불가능하다. 역사나 성서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서가에 있는 소설조차도 작자의 세계관에 따라 등장인물이나 줄거리가 같을 수가 없다. 시가 그렇고 음악이 그렇고 미술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만나는 미디어는 어떤가? 객관적 보도, 객관적인 진실이 담긴 미디어가 가능할까? 설사 사건보도야 객관적이라고 하더라도 해설이나 논설이란 글쓴이의 주관이나 가치가 담기지 않을 수 없다. 가치가 담기지 않은 논설이란 없다. 역사나 성서가 이데올로기가 담긴다면 그 피해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마찬가지로 신문이나 방송을 비롯한 메스 미디어들이 이해관계나 가치관에 따라 객관적인 진실이 보도되지 않는다면 이는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지난 80년 광주민중들이 전두환을 비롯한 정치군인이 저지른 폭거에 저항한 민중을 '폭도'로 매도했던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권력의 하수인이 된 언론인, 곡학아세하는 지식인. 학자, 권력의 당근에 길들여진 종교 지도자, 권력에 혼을 판 예술인. 이들은 시대를 초월해 변절하고 권력의 편에 서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이들의 변절에 의해 마취 당한 민중은 가해자의 편에서 수탈과 억압을 당해왔다. 현재도 변절한 학자와 언론인과 종교인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거대한 음모는 약자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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