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남쪽바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5.05 마산역에는 왜 가고파 노래만 들려줄까? (13)
  2. 2012.09.27 민주의 성지 마산에서 역사를 만나다 (33)
정치2013.05.05 07:00


 

                                            <이미지 출처 : 오마이 뉴스>

 

기차를 타고 마산역에 내리면 ‘내고향 남쪽바다...’로 시작하는 '가고파'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학교 시절에 배웠던 노래에 대한 추억과 노랫말에 취해 마산이라는 정서가 피부로 와 닿게 하려는 마산역의 배려일까?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낙천적이고 단순하게 볼일만 아이다.

 

가고파라는 시의 작곡가 이은상이 누군가?

 

이은상은 이승만시대에는 이승만을 '이순신 장군 같은 분'이라며 칭송하고 3·15의거와 4·19항쟁을 '무모한 흥분' 내지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 '불합리, 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다.

 

"4·19혁명이 성공하자 수유리 묘지의 4·19학생혁명 기념비에 4·19를 찬양하는 비문을 쓰고 전두환이 군사쿠데타를 일으키자 '한국의 특수한 상황으로 보아 무엇보다도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것이 거의 일반적인 여론'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던 철저한 기회주의자다.

 

마산시민들은 마산이 4.19혁명의 단초가 된 3.15의거와 유신정권을 무너뜨린 부마항쟁의 숨결이 서린 곳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비록 새누리당의 아지트가 되고 말았지만 역사를 바꾼 긍지와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도시다. 이런 정서가 깔린 마산이라는 곳에 친일과 친독재의 인물이기도 한 이은상의 시비를 건립하자 논쟁이 시작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산역을 찾는 사람들은 기차에 내려 엘리베이트를 타고 마산 역광장으로 내려서려는 순간 눈앞에 진귀한(?) 풍경이 펼쳐진다. 아름답게 꾸며진 역광장 정면에는 전에 없던 검은 페인트를 뒤집어 쓴 이은상의 가고파 시비가 세워져 있고 시비 위에는 서로 정반내의 주장을 한 현수막이 걸려 보는 이들로 하며금 어리둥절케 하고 있다.

 

‘시민 여러분 진실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민주와 정의입니까?’ 라는 현수막 아래는 깨알같은 글씨로 '마산과 조국을 사랑한 노산선생은 3.15를 폄하하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이은상의 공로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그 아래는 ‘ 3. 15가 통곡한다. 이은상 미화석 철거하라!’ 라는 현수막도 걸려 있다. 현수막 아래는 ‘내고향 남쪽바다 그파란 물 눈에 보이네...’로 시작하는 이은상의 시 가고파가 검은 페인트를 뒤집어 쓴채 얌전하게(?) 앉아 있다.

 

가끔 지나가는 행인들이 신기한 듯 쳐다보곤 한다.

지난 달에 마산에 갔을 때 기차에서 내리자말자 흘러나오는 가고파 노래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다른 노래와 함께 나오는 게 아니라 연달아 가고파 노래 한곡만 반복적으로 계속 흘러 나오는 것이었다. 이은상 시비문제가 마산의 시민단체와 시비를 세운 측과의 첨예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 노래가 아주 기분 좋게만 들리지 않았다.

 

                                            <이미지 출처 : 오마이 뉴스>

 

집으로 돌아오려고 역사를 다시 찾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합실에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시간에도 계속 가고파 노래만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차시간이 바빠 그냥 돌아오기는 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마산 역사(驛舍)에 왜 논쟁의 주인공의 노래만 듣게 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생각으로 심란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러고는 잊고 지냈다. 그러다 지난 2일 경남도민일보 독자권익위원회의에 참가하려고 다시 마산 역에 내렸을 때 일이다.

 

벌써 한 달이 지났는데 역시 똑같은 노래가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대로 둬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서 역장을 만나 항의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역장실로 찾아갔다. 마침 역장은 출타중이어서 부역장(서정길)을 만났다.

 

“부역장님! 마산 역에 내리는 손님들은 왜 가고파 노래만 들어야 합니까?”

부역장의 눈이 둥그레졌다.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가 느닷없이 꺼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되는 모양이었다.

 

가고파시비문제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을 부역장이 머리가 허연 사람이 이은상을 칭송은 못할망정 가고파 노래를 방송하는 문제를 따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일까?

눈이 휘둥그래진 부역장을 향해 다시 말했다.

 

“마산역에는 가고파 노래 한 곡 뿐입니까? 그리고 지금 마산에는 이은상 시비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첨예한 문제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고파 계속 반복해서 방송하는 저의가 무엇입니까? 시비건립에 찬성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는데 마산역은 왜 한쪽 편을 들어 논란의 중심에 서려고 하는게지요?”

가까스레 감을 잡은 부역장은 할 말이 없는 모양이다.

 

“어떻게 하라는 얘깁니까?”

 

“다른 노래를 들려주든지 방송을 하지 말아야지요. 논쟁이 끝나고 난 후 방송을 하든지 말든지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변명을 하려고 했다.

 

“민원입니다. 민원을 접수해야하지 않습니까?”

 

A4용지 한 장을 픽 던지다시피 책상위에 내놓았다.

 

“나보고 적으라는 겁니까?”

 

“민원 용지를 주세요!, 고객을 상대하는 공공기관에서 민원 문제가 발생하면 처리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게 없는데...!”

어처구니가 없다. 정말 없는지 있어도 없다고 하는 건지....

 

“인터넷에 직접하는 방법은 있긴 있는데....”

머리가 허연 사람이니까 인터넷에서 직접 민원 처리를 하라면 항복하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일까?

 

“좋습니다. 내가 쓰지요?”

부역장의 자리를 비켜주며 직접 민원을 작성하라는 것이었다.

 

                                         ‘가고파 노래 중지 요청건’

 

‘지난 달에 마산에 왔을 때도 그랬고 오늘 또 마산역에 도착하자말자 가고파 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습니다.

 

마산은 지금 이은상시비 건립문제로 심각한 갈등과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줄 압니다. 그런데 공공기관인 마산역은 왜 시비건립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이은상의 가고파 노래만 반복해서 보내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도 다른 노래와 함께 보내는 게 아니라 가고파 한곡만 계속해서 보내는게 옳은 일인지요?

 

앞으로 논쟁이 끝날 때까지 가고파 노래 방송을 중단해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2013년  5월  2일  민원인 김 용 택

                                                                                마산역 부역장 서 정 길(인) 

 

민원을 접수하고 나오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마산 역을 지나갔을텐데 왜 아무도 이이제기를 하지 않았을까? 가고파를 들은 사람들 중에는 이은상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침묵하는 구성원들이 모인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이-메일로 처리결과를 알려주겠다는 확약을 받고 역사를 빠져 나왔다. 마산 역 앞에는 새순들이 펼치는 꽃보다 아름다운 봄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광장 앞에는 가고파 시비 건립에 대한 뜨거운 논쟁의 열기로 한여름을 방불케 하고 있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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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바라기

    가고파 노래는 언제들어도 심금을 울려주는데
    그 지은이의 행적이 민족에 역행을 했군요.
    휴일 행복한 시간 되세요.^^

    2013.05.05 07:20 [ ADDR : EDIT/ DEL : REPLY ]
  2. 둘리

    아무리 훌륭한 문학작품이라도 사상검증이 먼저라는 참교육님 멋지십니다. 사상검증으로 문학을 탄압했던 독재자 박정희는 천하의 쌍놈이지만 참교육님은 떳떳하신거죠? ㅋㅋ 빨갱이 사상검증은 못된짓이지만 친일 독재 사상검증은 무조건 옳다는 참교육님. 흑백논리에 철두철미한 참교육님. 존경합니다.

    2013.05.05 08:47 [ ADDR : EDIT/ DEL : REPLY ]
  3. 학교 다닐 때 이은상을 얼마나 존경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친일파였고, 독재를 찬양했습니다

    2013.05.05 09:33 [ ADDR : EDIT/ DEL : REPLY ]
  4. 요즘 일본 아베총리의 역사왜곡과 극우 행보가 전세계인의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의 역사인식 또한 천박하기 그지없다는 것.....
    이은상...아마도 전국 초중고 교가 중 이은상 작사인 학교가 한둘이 아닐진대....
    자성의 시간이 필요한 때입니다.

    2013.05.05 10:2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환이

    이은상은 대한민국 국보급 문인이자 시인입니다.
    친일은 한 적도 없고, 박정희대통령, 전두환대통령을 찬양한 것은 맞는 것 같은데
    이것은 자유대한에서 허용된 자기의사표시입니다.
    이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킨점에서는 위의 두 대통령의 역할이 절대적입니다.
    브람스도 아인슈타인도 개인비리나 비인간성에 절어있었지만
    국가적으로 이를 덥고 훌륭한 음악가,과학자로 남게 했습니다.
    우리도 조금 마땅하지 않다고 매를 들고 흙으로 묻을 것이 아니라
    좋은 분으로 남게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인물을 타박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2013.05.05 15:09 [ ADDR : EDIT/ DEL : REPLY ]
    • 자유요?

      이은상이 박정희대통령, 전두환대통령을 찬양한 것은 맞는 것 이라고 인정하셨죠?
      이것은 자유대한에서 허용된 자기의사표시이라고 덧붙여서 설명하시는군요.
      근데 그건 아십니까? 환이님같이 두 군사 대통령을 추종하시는분들은
      자유 참 좋아하시고 민주주의 참좋아하시는데요. 자유 민주주의 그 두 글자는 두 대통령시대에 없던 말이였죠. 철저히 탄압했고 입막고
      감방보내고 확실한 증거없이 야당. 일반 시민을 빨갱이로 몰아 사형시킨건 불가피하다고 항변하실건가요?
      그 자유 .민주주의. 당신들이 그렇게 삿대질하던 시위꾼들이 되찾아온 권리죠.
      그렇게 삿대질 했으면 미안해서라도. 아무 댓가도 없이 무임승차 했으면 최소한 부끄러움을 아셔야죠.
      뉘우치셔야죠.

      이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킨점에서는 위의 두 대통령의 역할이 절대적이라고요?
      경제 발전을 시킨건 국가 발전을 위해 희생했던 노동자와 국민이였지. 궁정동 안가에서 시바스리갈이나 땄던 그분 그리고 적군도 아니고
      국방 방위 업무에 충실했던 군인과 사령관을 체포하고 군인을 사살하며 반란을 주도했던 내란 정치범 그분이 그런건 아닙니다.
      경제발전을 해서 과정은 그렇다 쳐도
      결과는 합리적으로 개선했나요? 불합리하고 희생당해야했던 노동문제는 2013년 현재 세대를 이어 대물림 되고 있습니다.
      애국보수라는 분들. 박정희 전두환 두 군인들을 추종하시는 진영에서는 아예 노동문제는 커녕 기업편에 철저히 서서 권익을 보호하고.
      정경유착을 해도 경제발전을 하면 그만. 부실기업이 되더 그만.이시더군요.
      . 우리도 조금 마땅하지 않다고 매를 들고 흙으로 묻을 것이 아니라 좋은 분으로 남게할 의무가 있다구요? 그렇게 매번 조금 마땅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비판하지 않으니깐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시는거 아닙니까?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나쁜놈으로 매도하고 어느 개 돼지도 하지 않는 . 입에 담지도 못할 패륜아나 할짓인 무덤을 파는 흉내내고 관을 꺼내는 쇼를하며 고인을 욕되게 하는건 그쪽에선 정의인가요? 당연한건가요?
      우리나라처럼 인물을 타박하는 나라는 없다구요? 참 말 쉽게 하시네요.
      자유대한에서 허용된 자기의사표시라구요? 그 자유가 당신이 추종하고 찬양하는 반인반수의 지도자. 종교처럼 떠받들여졌던 전씨 시대엔 없었던 단어란걸 깨닫으시길바랍니다.

      2013.05.05 21:21 [ ADDR : EDIT/ DEL ]
  6. 마산역장이 친일파인가 봅니다....

    2013.05.05 15:1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7. 오 하룡

    편견이 너무 심하십니다. 노산 선생은 친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315를 폄하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인터넷에 올라있습니다. '노산 선생은 315를 폄하하지 않았다'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독재 부역이란 표현은 적당하지 않습니다. 그의 일생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단순하게 몰아가선 안됨을 알 수 있습니다. 양지를 지향함 삶을 살았다구요? 노산 선생이 고관대작을 지냈습니까. 그 정도의 인품이면 충분히 그런 유혹도 받았
    을텐데 초지일관 문사의 외로운 길을 걸었습니다. 마음에 들지않더라도 그의 글을 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마산역 당국의 소신있는 행동에 박수와 함께 뜨거운 격려를 보냅니다./;오하룡

    2013.05.05 15:37 [ ADDR : EDIT/ DEL : REPLY ]
  8. 결과가 과정을 덮어버리기 일쑤인 이 시대의 희생양이랄수도 있겠죠...

    2013.05.06 02:4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9. 이상한 관리를 하는 곳이 마산에도 있었군요. 하기야 일부러 찾아볼라치면 한두 군데가 아닐 듯도 합니다. 썩고 부패한 자리는 다른 흙으로 메꿔야 더 썩지 않습니다. 이상한 관리인에 이상한 문화들 깡그리 뿌리뽑히기를 희망합니다.

    2013.05.06 06:1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0. 잘하셨습니다
    님의 용기있는 행동에 박수 보냅니다

    2013.05.06 08:18 [ ADDR : EDIT/ DEL : REPLY ]
  11. 불만은 있을지라도 민원은 생각 못했을 것 같은데..대단하세요.
    이은상의 행적을 떠나서
    공기관이 논란이 있는 문제의 한 편을 드는 듯한 행동을 취하면 안되죠.
    오이밭에서 신발끈 묶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 갓 끈 고쳐매지 말라는데 말이예요.

    2013.05.06 09:02 [ ADDR : EDIT/ DEL : REPLY ]
  12. 제가 초등학생 때 기념관 문제로 한바탕 난리를 쳤는데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으며, 그 목소리는 더 작아졌다는 사실입니다. 제 또래들이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대부분 과격한 어른들의 정치적 이념 분쟁정도로 보거나 아예 모르거나 정도입니다. 제가 걱정하는 바가 그것인데, 마산 곳곳에 뿌린 내린 이은상의 흔적이 그를 미화시키고 이것이 정당한 인식으로 바뀌는 것이 매우 두렵습니다. 논란이 된지 벌써 수십년이 지났음에도 제자리 걸음이고 이것이 결론 짓지 않은채 역사 속에 묻혀 그저 흘러가고만 있다는 사실이 두려운 겁니다. 도대체 친일에 대한 검증 문제를 아직까지 해결하지 않고 '공과 과는 다르니 그것을 언제 검증하더라도 작품을 내세우는 건 문제없다'만 주장을 하니 참.....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나눠져있습니다. 아직은요. 문제는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사라지고, 이용하려는 사람만 남아간다는 사실입니다. 끈을 놓지 않고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했지만, 지나다니면서 마산역에 민원 넣을 생각은 하진 못했었네요.

    2013.05.06 10:3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렌즈에 비췬 세상2012.09.27 07:00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마산시(馬山市)는 없다. 2010년 7월 1일 인근의 창원시·진해시와 합병하여, 2012년 현재 창원시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로 남아 있는 인구 30만의 초라한 도시로 바뀌었다. 마산은 한때 우리나라 7대 도시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큼 번성했던 도시다. 역사적인 도시. 3.15민주성지의 땅이 오늘날 이름까지 창원시로 바뀐 도시로 바뀌었다.

 

마산하면 1960년 3.15의거나 1979년 박정희 유신체제에 저항했던 부마항쟁을 연상하게 된다. 경찰에 죽임을 당하고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올라 4.19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던 도시 마산. 그 마산을 찾았다.

 

‘내 고향 남쪽바다~’ 라는 이은상작곡 노래로 혹은 물 좋은 마산으로 연상되기도 하는 지금은 이름조차 창원시에 빼앗겨 마산 살리기에 안간 힘을 쏱고 있다.

 

마산 하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총면적 953,576㎡의 규모의 정부에서 직접 관리하는 국가산업단지다. 현재 마산자유무역지역에는 외국인단독투자, 합작투자, 내국인업체 등 90여개사가 입주해 있으며 총생산의 98%를 수출 하고 있다. 

 

 

마산은 한때 한국에서 현금이 가장 많이 도는 도시로 1970년 5월 마산수출자유지역 착공 후 한일합섬을 비롯한 많은 기업들이 마산에 산재하고 있었다. 특히 외국인 기업가 투자유치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노동자 5만여 명이 일하는 전국 7대 도시이자 경남 제1의 도시이기도 했다.

 

그랬던 마산이 급속하게 진행되는 외국자본의 철수로 속수무책이 되고 한 때 노동운동의 메카로 알려져 있던 마산은 ‘모범사례 1위에서 실패사례 1위’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마산시청까지 창원에 뺏기고 한 때 50만이 넘던 인구가 30만으로 줄어든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옛날의 영화는 일장춘몽으로 사라지고 마는가?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마산은 수출자유지역이라는 경제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3.15와 부마항쟁의 민주주의 역사의 성지요 식민지시대 일제 수탈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경제는 어려워지고 시라는 행정단위가 구로 바뀌기는 했지만 마산이 갖고 있는 역사적 의미는 결코 사라질 수 없다.

 

 

나는 경남대학교와 창원대학교 교수들과 함께 사라져 가는 마산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1980년 초부터 ‘마산 창원 지역사 연구회’를 만들어 정치, 경제, 노동, 교육 등 각 분야의 역사 찾기와 ‘마산창원역사 읽기’(1989년 불휘출판사)를 출간하는 등 노력을 계속했던 일이 있다.

 

지역사 연구회는 서울문화가 표준문화가 된 현실에서 마산의 역사, 정치사, 경제사, 교육사, 종교사... 등을 발굴해 지역의 역사를 되찾겠다는 의지로 지금도 그 일을 계속해오고 있다.

 

마산의 역사를 찾아서

 

<몽고정>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고려시대 충렬왕 원년 (1281년) 원나라 세조가 여몽연합군에 의한 2차례의 일본 정벌에 실패한 뒤, 같은 해 10월에 남해안 방어를 위해 지금 마산시 정수장 일대의 환주산에 군사를 배치하고 진을 설치하였다. 이곳에 주둔한 군사들에게 마실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우물이 몽고정이다.

 

원래는 고려정이라는 명칭으로 불려 왔으며, 우물 앞에 몽고정이라 쓰인 비석은 1932년 일본인 단체인 고적보존회가 세운 것이다.

 

<일제시대 교도소였던 한국은행 자리>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지금은 주식회사 부영이 매입해 유로 주차장으로 돈벌이를 하고 있는 자리는 옛 한국은행터다. 이 터는 일제치하에 부산감옥소 마산분감이 있었던 자리다. 1919년 기미독립운동 당시 8명의 희생자와 수많은 부상자를 냈고 삼진의거에 참여하였던 항일 민족지도자들과 독립운동 가이자 정치가였던 박순천과 정진업이 수감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승만의 부정선거와 3.15의거>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1948년 제헌국회에서 국회의장에 피선된 이승만은 초대 대통령을 지낸 후, 1952년 자유당을 창당하면서 2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1954년에는 대통령의 3선 금지조항을 고쳐 실질적인 종신 대통령의 길을 마련하기 위한 개헌안을 내놓았으나 국회에서 부결되자, 사사오입 논리를 적용하여 부결을 번복하고 통과시킨다.

 

1956년 3선에 성공한 이승만은, 장기 독재에 대한 국민의 비판통로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1958년 8월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야당과 언론의 거센 항의에도 불구하고 1959년 1.15일 신국가보안법발동, 3 · 15 부정선거를 획책한다.

 

1960년 5월 중에 실시하기로 되어있는 정·부통령 선거를 2개월 앞당겨 3월 15일 실시한다. 그것도 40%사전투표와 3인조 5일조로 구성된 관권선거는 급기야 마산의 민주당에서 선거무효를 선언하고 시위에 나서자 시민들이 동조, 결국 마산상고 입학생이었던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자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 4.19혁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부마항쟁의 역사>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1979년 10월 16일부터 10월 20일까지 대한민국의 부산광역시와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유신 체제에 저항해 일어났던 민주화 운동이다. 부산에서는 10월 16일 오전 10시에 시작된 부산대생들의 교내시위가 순식간에 4,000여 명으로 불어나면서 거리로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부산시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부상자는 16일 하루 동안에만 학생 5명, 일반시민 10명, 경찰 95명 등 도합 110명으로서 그 가운데 중상자는 18명이었다. 18일 부산 일원에 계엄령이, 마산에는 위수령이 선포되고, 전방 공수부대 2개 여단 5,000여 명이 부산에 투입되었다.

 

마산에서는 10월 18일 경남대 학생 1,000여 명이 기동 경찰 300여 명과 대치하다 투석전을 벌였고, 3·15의거탑에서 1,000여 명이 스크럼을 짜서 유신 철폐와 독재 타도 및 언론자유를 요구하는 시위를 전개하는 등 시내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부마항쟁은 단순히 '70년대 반유신운동의 귀결점으로만 머물지 않고 그 철옹성 같던 박정희의 유신정권을 붕괴시킨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데 역사적인 이이가 있다고 할 것이다.

 

마산의 역사는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의 자취이기도 하다. 식민시대의 신마산은 아직도 일제시대의 집들이며 유적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구마산의 상가에는 옛 조창터와 일제시대 최초의 조선인 무역회사인 원동무역주식회사가 있었던 자리터도 남이 있다. 지금은 친일인사로 빛이 퇴락한 이은상과 이원수, 김혜랑이 마산사람이라는 걸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안다.

 

 

 

 

 

 

 

 

 

 

 

마산을 일컬어 민주성지라고도 한다. 지금은 새누리당의 텃밭이요, 감자바위라는 소리를 듣는 도시가 됐지만 과거 3. 15의거가 부마항쟁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일제 식민지시대는 물론 독재 권력에 저항했던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 그 역사를 살려내는 노력은 창동 예술촌 100일기념 축제를 계기로 지속적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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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어릴적 외가댁과 외가친적분들이 다 이곳에 살고 있어 종종 갔었습니다.
    마산이 앞으로 더욱 발전하는 도시가 되었음 좋겠어요~

    2012.09.27 09:4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셔요~

    2012.09.27 10:4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빠박이

    마산도 우리나라 민주화에 커다란 기여를 한 곳이네요
    곳곳에 마산 역사의 흔적이 있군요 ^^

    2012.09.27 10:48 [ ADDR : EDIT/ DEL : REPLY ]
  5. 좋은 정보 잘 보고 갑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12.09.27 10:5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지역마다 다 특색과 역사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부마항쟁...들어봤어요^

    2012.09.27 11:0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7. 마산은 광주와 함께
    한국 현대사에서 누구나 한번쯤 기억해봐야 할 도시이지요...

    2012.09.27 11:2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8. 잘보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2012.09.27 11:3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9. 마산의 역사에 선생님의 역할이 대단하셨군요.
    참, 제 메일은 jong5629@hanmail.net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2012.09.27 11: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0. 마산도 아픔이 많은 도시군요.
    민주의 성지

    2012.09.27 11:50 [ ADDR : EDIT/ DEL : REPLY ]
  11. 마산이 민주성지라는 것 잊고 있었네요.
    그런 아픔이 다시는 이땅에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2012.09.27 14:4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2. 참교육님 잘보고갑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2012.09.27 15:2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3. 선생님, 답변 메일로 보냈습니다.

    2012.09.27 18:5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4. 타향살이

    지금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의 인구는 30만이 아니고 42만명입니다...잘못기재 되었네요..너무 초라하게 보지 마세요...마산은 그래도 역사와 전통와 문화가 있는 도시입니다. 마산의 발전과 마산의 이름이 회복되어야 하겠지요..

    2012.09.27 21:01 [ ADDR : EDIT/ DEL : REPLY ]
    • 죄송해요. 제가 확인을 멋했습니다. 마산에 30년이 넘게 살면서 조도 마산에 대한 애정이 남보다 못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인구통계를 확인하지 못했군요.
      다시 확인 해보겠습니다.

      2012.09.27 21:34 신고 [ ADDR : EDIT/ DEL ]
  15. 3.15

    한나라당 새누리당 지역 정치 기득권 토호들이 마산이란 저항과 민주도시 지명과 역사성을
    지우기 위해 정치꾼들이 나서 행정통합을 한 것 아닌가 음모가 아닌가 싶다.

    현시대 최고의 권력자 박근혜 아버지의 부끄러운 과거가 부마항쟁 저항의 도시 마산 부산이 아닌가.
    한때는 저항의 도시 마산이 움직이면 한국 역사가 바뀐다고도 했다.

    결국 이것도 역사왜곡 앞장 서는 뉴라이트 정치성을 기반으로 하는 친일 매국 군부독재 유신독재
    수구세력의 숨기고 싶은 역사왜곡의 일환이 아닐까?
    결국 이명박 박근혜 유신독재 친일 세력의 2-3세가 권력의 정점에 있는 시기에 마산이란 지명은
    창원에 묻혀 사라졌다.


    역사성 지명도를 보더라도 창원 보다는 마산이란 지명이 전국에 더 알려졌는데 겨우 공단도시
    창원에 마산이 먹히다니 말이 안 된다.

    그런 의미로 보면 광주라는 민주 저항의 도시가 이런식으로 행정통합 편의적으로 소수 정치세력으
    농간에 여론화 되어 묶이면 나주에 행정통합으로 지명을 묶어버려 광주라는 지역성과 역사성을
    없애려고 할 것이다.

    그나마 광주 호남에는 수구 매국세력 텃밭이 아니란 것이 다행.

    2012.09.28 00:52 [ ADDR : EDIT/ DEL : REPLY ]
  16. 자등명

    마산은 역사와 예술이 녹아있는 도시죠. 천상병시인도 마산출신이죠 지금은 경제논리에 밀려 창원시에 예속되었지만 역사적으로 본다면 마산시로 통합되어야 합니다.

    2012.09.28 13:08 [ ADDR : EDIT/ DEL : REPLY ]
  17. 앞으로 창원시가 마산에게 해주어야할 일이 참 많습니다

    2012.09.28 17:2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8. ㅎ..저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담으셨습니다. 대단하시네요. 많은 준비를 하신 흔적이 엿보입니다. ^^

    2012.09.28 21:05 [ ADDR : EDIT/ DEL : REPLY ]
  19. 역시 선생님은 마산의 역사 교과서이십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2012.10.02 22:3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0. 선생님, 답변 메일로 보냈습니다.

    2012.11.24 13:16 [ ADDR : EDIT/ DEL : REPLY ]
  21. 강어진

    마산은 경제발전의 진원지요, 민주정치의 성지입니다.
    호수같은 바다를 안고 있는 아름다운 마산, 수많은 인재를 잉태시킨 강직한 마산,
    경남의 마산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마산입니다.
    인구10만이면 어떻습니까, 경제가 어렵다해도 마산이 왜 사라져야 합니까?
    살아 남아야 합니다. 마산되살리기 전국민운동을 펼칩시다.

    2013.04.14 10:26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