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기독교2018.10.26 06:12


며칠 전, 제가 '메뚜기 잡기 체험행사 교육적인가'...라는 글을 카카오스토리에 썼던 일이 있다. 내 글을 본 친구 한 분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했는데 자연에 살고 있는 생명체의 생사여탈권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 특권이다. 그런데 메뚜기 잡기 체험행사가 왜 문제인가 라는 항의성 댓글을 달았다.



종교의 세계관은 결정론적 세계관이다. 불교에서 연기설이 그렇고 기독교의 하느님의 뜻이 그렇다. 이미 태초에 그 사람의 운명은 신의 의도가 있어 그렇게 태어나고 그렇게 살다 죽으라는 신의 뜻으로 이해한다. 불교는 좀 다르긴 하지만 업인으로 개인의 삶이 결정된다는 논리다. 그러니까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태어나고 신의 뜻대로 살다 신의 예정한 코스로 살다 삶을 마감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운명적으로 결정 되어 살다 죽는다는 논리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종교인들은 신은 선하고 공의를 행하시며 불편부당하고 전지전능’... 한 분이기 때문에 그가 하는 일을 의심하거나 불만할 수 없다고 믿는다. 이러한 신의 뜻으로 만들어 진 세계와 다르게 타락한 자본주의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자본과 결합한 종교는 종종 신의 뜻과는 다른 이데올로기가 될 수도 있다. 계급사회에서 노예로 태어난 것도 불치병으로 고생 하는 것도, 가난한 것도.... 모두 신의 뜻이니 주어진 운명에 감사하며 살아라...는 운명론으로 귀결될 수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레저산업은 자본의 논리가 담겨 있다. 이익이 선이 되는 자본의 논리, 상업주의는 '메뚜기 잡기 체험행사나 분재 혹은 낚시처럼 반생태적이고 반자연적이다. 레저란 일상에 쫓기는 도시인들에게 정신적인 안정과 여유를 즐긴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자연파괴나 생명존중이라는 가치를 망가뜨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옛날 가난하던 시절, 메뚜기나 개구리는 영양부족인 아이들에게 담백질 공급원이 되기고 했다. 생존을 위해 메뚜기를 잡아먹는 것과 어린학생들을 체험행사라는 이유로 산채로 구워 먹는 행사는 다르다.

구약성서 창세기 128절의 '땅을 정복하라'는 뜻은 인간이 하느님이 만든 자연을 마음대로 정복하고 파괴하라는 뜻이 아니다. 일부 기독교인들이 성서를 번역하면서 인간중심적인 그릇된 해석해 자연을 마구잡이식으로 개발해 공해와 생태계 파괴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명예교수인 손봉호박사는 창세기 128절의 땅을 정복하라는 번역은 보호라고 번역해야 하는데 정복이라고 번역해서 자연을 마음대로 착취해 오늘날과 같은 환경 파괴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역설했다.

기독교논리대로 라도 생태계 파괴는 반 기독교적이다. 이 땅은 예수님이 재림할 땅이다.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받아 부족함도 없이 영생을 누릴 땅이 지구촌 아닌가? 그런 땅을 마실 물도 숨 쉬기도 어려운 땅으로 만들어 놓고 어떻게 재림을 기다리겠는가? 자연에는 필요 없는 생명이란 없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 공동체다. 메뚜기는 말할 것도 없지만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생태계는 공존해야 할 존재들이다. 그들을 모두 박멸하고 인간은 어떻게 살 수 있는가?



자본주의와 결합한 변질한 기독교는 생태계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를 민주적인 학교로 바꾸기 위해 헌법이 보장한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례를 만들자면 가장 극렬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일부 기독교인들이다. 그들은 학생인권조례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동성애와 임신 출산 행위를 허용하는 주장이라며 초··고교생의 성관계가 묵인되고, 동성애를 학교에서 교육... 한다면 반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성서의 무오설(완전축자영감설)을 주장해 반지성적인 근본주의 신앙을 만들어 내고 있다.

타락한 기독교는 생태계의 파괴를 정복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평양선언까지도 "김정은 체제 유지에 기여하고 안보를 위기에 빠뜨릴 우려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자연을 파괴하는 정복론적 세계관으로 한반도에서 분단을 걷어내는 평화협정을 반대하면서 어떻게 예수님이 가르친 사랑을 실천할 것인가? 자연을 파괴하고서야 어떻게 이땅이 하늘나라가 돼라고 기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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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사는 이야기2017.10.07 06:30


오늘은 제가 2015년 12월에 쓴 책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 공교육의 정상화를 꿈꾸다'에 썼던 글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신문이며 대학 학보사 그리고 여기저기 청탁을 받고 글이라고 쓰기 시작한지가 벌써 40년이 가까워 옵니다. 제가 능력도 없는 글을 쓰게 된 이유가 학교에 몸담고 있으면서 현실이 너무 어처구니 없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일이 많아 그런 현장의 얘기들을 메모하면서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생각비행'에서 두번째 출간한 책에 썼던 '학교가 교육다운 교육을 못하는 진짜 이유'라는 주제의 글을 여기 올려 놓습니다.( 추천사.hwp



일제시대 일본은 왜 조선에 학교를 세우고 조선 사람들을 교육 시켰을까? 조선 학생들에게 인격을 도야하고 사리분별력을 길러주기 위해서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일본은 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학교를 짓고 학생들을 교육시켰을까? 일본이 조선을 영구지배하기 위해서는 일본 화된 조선인이 있어야 했고 그런 인간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외모는 조선 사람인데 내용은 일본인인 사람. 황국신민이 필요했던 것이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도구적인 지식은 식민통치를 용이하게 하는 애국자(?)를 길러냈고 그 덕분(?)36년간 식민통치가 가능했던 것이다.

식민지시대는 교육이 정치에 예속된 의식화 도구였다. 일제의 필요에 의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조선 사람을 일본사람으로 만든 후유증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해방 후 박정희 정권은 4·19혁명으로 세운 정권을 무너뜨리고 영구집권을 위해 유신헌법을 제정했다. 유신헌법을 정당화하기 위해 도입한 게 국정 교과서제다. 비판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정권의 의지는 유신교육이 시킬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 정권시대뿐만 아니다. 과거가 부끄러운 정권일수록 교육을 통한 권력의 정당성을 홍보해 왔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이 자주 바뀐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교육의 중립성이 필요한 이유다.

오늘날 교육위기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자본의 입맛에 맞는 교육. 신자유주의 시대의 교육은 자본의 입맛에 맞는 인간양성이 필요했고 그래서 '수요자중심의 교육'7차교육과정이 도입된 것이다. 교육이 공공성이 아닌 상업주의 논리가 도입된 후 학교는 개인을 출세시켜주는 학원으로 바뀌게 된다.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 교육법 제 1조는 이렇게 선언적으로 명시하는 있지만 그런 교육은 법전에만 있을 뿐 학교는 일등만이 살아남는 삭막한 시장이다.

드라마가 음란물이나 폭력물로 채워지는 것은 자본의 논리인 시청률 때문이다. 안방극장의 드라마를 제공해 주는 것은 프로듀스가 아닌 광고주인 자본이요, 자본의 필요에 의해 시청자를 마취시키고 있는 것이다. 교육도 예외가 아니다. 교육이 상품이 된 학교에는 자본의 논리로 그들의 입맛에 맞는 내용으로 채워지고 자본의 입맛에 맞는 인간을 양성하게 된다. 새누리당과 수구세력들이 국사교과서를 국정 화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식민지시대 민족의식이나 비판의식을 가진 인간을 키우지 못하게 하듯, 자본에 예속된 학교는 근면한 인간또는 순종적인 인간을 양성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왜 평생 노동자로 살아 갈 아이들에게 노동 3권조차 가르치지 않을까? 과거가 부끄러운 정치세력, 그리고 그런 권력에 기생했던 지식인과 언론, 그리고 변절한 종교...는 학교가 비판적인 인간을 길러내기를 바랄까? 우리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 민주적인 인간을 거부한 국정교과서를 가르치던 아픈 기억을 잊지 않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지만 학교는 학생들에게 민주의식, 정치의식을 가진 인간이 아닌 '가만 있으라!'는 교육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과 교육, 정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그럴까? 법전에는 교육의 중립성이 보장되어 있지만 그것에서일뿐, 현실은 국정교과서를 부활해 16 쿠데타와 10월유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 그 일을 위해 일제강점기시정 일본에 은혜를 입은 친일세력과 유신의 후예, 전두환정권 일당 그리고 이들과 이해관계가 있는 무리들이 '보수'라는 옷을 입고 역사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겉으로는 보수라는 외피를 쓰고 학교가 비판의식을 거세한 인간, 자본의 논리에 순종하는 인간을 길러내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국정교과서를 만드는 이유다. 자기네 주장과 다른 사람은 공존의 세력으로 보지 않고 제거의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입만 열면 종북타령이요 흑백논리 혹은 냉전논리를 꺼내는 이유는 비판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다. 과거가 부끄러운 세력과 자본, 그리고 이들과 하나가 된 수구언론, 예수를 팔아 기업인이 된 대형교회, 그들에게 영혼을 판 곡학아세한 지식인들...이들은 어떤 세상을 꿈꾸고 있을까?

입시위주의 학교는 결정론적 세계관, 운명론적인 세계관을 가진 인간을 양성한다. 그들이 기득권을 대물림하겠다는 의도를 포기하지 않는 한 학교는 개인을 출세시켜 주는 이기적인 인간, 사회적인 존재가 아닌 개인적인 인간을 양성할 뿐, 더불어 사는 민주적인 인간을 키우지 못한다. 자본이 원하는 인간을 양성하는 학교는 암기한 지식의 양으로 서열화시켜 일등만이 살아남는 막가파식 무한경쟁의 장을 만들고 있다. 승자독식의 경쟁장이 된 학교는 패자를 인간 낙오자로 길러내고 있는 것이다.

승자 독식주의 사회... 패자를 낙오자로 만드는 교육. 자본은 불의한 권력과 결정론적인 세계관의 기독교가 한통속이 돼 패자를 운명론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비판의식을 거세당한 인간, 교과서를 암기시키고 시험문제를 풀이해 제자를 출세시키는 입시교육을 민주적인 교육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친일, 친미세력이 있고 친 독재와 친자본이 우리교육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한 무너진 교육을 살릴 수 없다. 학교가 학생들의 비판의식을 마비시키고 운명론자로 키워내는데 어떻게 민주적인 교육, 민족교육, 인간교육이 가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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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철학2017.06.21 06:30


교회가 발행하는 신문은 세상을 어떻게 비출까? 재벌이 발행 하는 신문은 세상을 어떻게 비춰줄까? 국민일보는 순복음교회가 만든 신문이다. 문화일보는 현대그룹이 창간한 신문이다. 기독교라는 안경으로 비춰주는 세상, 재벌의 눈으로 비추는 세상은 공정하고 객관적일까? 놀랍게도 국민일보는 구독하는 사람은 국민일보가 진실을 보도한다고 믿고, 문화인보를 구독하는 사람 문화일보가 진실을 보도한다고 믿고 있다.

<이미지출처 : 최미혜블로그에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 7권에서 동굴비유를 설명한다. 플라톤은 지하의 동굴에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여 있는 죄수의 눈에 비친 것은 부분이지만 죄수들은 그들이 본 현상을 사실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 사슬에서 풀려난 죄수가 밖의 세계를 보면 자기가 지금까지 보고 알고 있던 것이 객관적인 진리가 아니라 세상의 극히 적은 일부임을 뒤늦게 깨우치게 된다는 것이다.

전환기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 내 눈으로 보이기 때문에 '보이는 현상'을 진실이라고 믿어도 좋을까? 내가 알고 배운 지식은 다른 사람의 지식이나 눈에 비친 사실이다. 어떤 학자나 전문가가 밝혀낸 법칙이나 원리는 영구불변의 진리일까? 사람의 눈에 비친 현상은 시각으로 보인 상일뿐 객관적인 본질,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남의 눈으로 보여준 사실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을까? 내가 알고 있는 것, 배운 지식, 과학이나 법칙... 이런 것은 오류가 없는 진리일까? 

과학이 모든 가치 있는 질문의 대답을 알고 있는 것, 또는 설령 모르더라도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 이것보다 더 빠르게 과학을 망신시키는 일은 없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피터 메더워(P.Medawar)의 말이다.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과학만능주의, 기술만능주의에 빠져 있다. 알파고 시대를 살면서 학교는 지식만능주의에 빠져 원리나 법칙이 절대 진리라고 가르치는 원리 신봉자들을 길러내고 있다.

정보화사회에서 알파고시대로 가는 전환기를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내가 배워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진리'라고 믿는 인지적 오류, 유토피아 환자들이 많다. 생각해보자. 원시시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은 모두가 진리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진리라고 확신하고 있다. 앞으로 5010년 후의 사람들도 오늘날 우리고 알고 믿고 있는 지식, 알고 있는 원리, 법칙들을 진리로 인정할까?

박근혜 전대통령이 국정을 농단하고 실정법을 위반해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그의 지지자들은 지금도 그가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당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 사람들은 자기가 기존에 알고 있던 생각이나 정보를 절대적인 진리로 믿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의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믿지 않는다. 조선일보를 보는 사람들은 조선일보의 보도가 진리라고 믿는다. 종교단체가 만든 신문을 보는 사람들은 결정론적 세계관에 빠지게 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자본주의 시대, 자본에 점령당한 사람들은 어떤 가치관으로 세상을 살아갈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진리로 믿고, 국가가 만든 이데올로기에 갇혀 자본주의 혹은 사회주의가 이상적인 사회라고 믿고 있다. 자본이 만든 세상이 당연하고 그 사회의 문화에 동화되고 체화돼 자기 나름의 기준을 만들고 만족하고 행복해 살고 있다. 내가 배워서 알고 있는 지식과 가치관은 플라톤의 동굴 에 갇혀 앞만 보는 죄수와 다를게 무엇인가?

<이미지 출처 : BBS NEWS>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정리한 현대인의 인지편향을 보면 기준점편향을 비롯해 편승효과, 맹점 오류, 클러스트 착각, 보수주의 편향, 정보오류, 과도한 자신감, 고정관념...20가지의 인지편향을 가지고 있다고 정리했다. 학교에서 배운 것, 국가가 만든 이데올로기, 자본의 논리...에 갇혀 자신의 삶이 아닌 남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은 남이 만들어 준 이념과 가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살고 있다.

모든 병은 병원에 가면 다 고칠 수 있다고 믿는다거나, 시장에서 매매하는 먹거리는 모두 안전하다고 믿고 구매한다거나.... 자신의 선택이 절대 선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선택은 결과에 대한 책임도 함께 지겠다는 암묵적인 동의를 포함한다. 우리는 이 완벽하지 못한 과도기를 살면서 인지적 오류에 빠져 피해자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본이 원하는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불의한 권력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데올로기의 노예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박근혜 맹신지지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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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정치2015.11.13 06:57


첫째, 고난을 만나더라도 버리지 않고

둘째, 가난하다고 하더라도 버리지 않고

셋째, 자신의 어려운 일을 상의하고

넷째, 서로 도와주고

다섯째, 하기 어려운 일을 해주고

여섯째, 주기 어려운 것을 주고

일곱째참기 어려운 것을 참는 것이니라.

불교도의 규범 중 율장(律藏) 사분율(四分律)에 나오는 얘기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불교에서는 사분율에서 사랑을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사랑이 없는 세상.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남이야 어떻게 됐던 관심도 없는.. 그래서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서슴지 않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 세상은 살만한 세상일까? 남에게 지지 않기 위해, 좀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더 잘먹고 더 즐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의 늪으로 늪으로 깊이깊이 빠져들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세상이 바뀌는게 당연하지만 바뀌어도 이렇게 바뀌어도 좋을까? 사람이 어디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인가? 그래서 사람을 일컬어 사회적 존재라 하지 않았는가? 경쟁과 효율, 내게 이익이 되는 것이 선이 되는 세상, 공기와 물까지 상품이 되어 돈이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무서운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사랑과 믿음과 배려가 있는 사회가 아니라 이기주의, 물신숭배, 감각주의, 상업주의가 판을 치는 불신의 사회로 바뀌고 있다. 세상에는 나만 있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경쟁의 대상이 되는 세상은 살만한 세상일까?


가득 채우면 행복할까


1. 먹고 사는데 조금 부족한 재산

2.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용모

3. 사람들이 절반 정도 알아주는 명예

4. 한 사람에게 이기고 두 사람에게 질 정도의 체력

5. 연설을 듣고 청중의 절반은 손뼉을 치지 않는 말솜씨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이다. 


물과 공기와 바람이 없으면 잠시도 살 수 없는데... 세상에는 혼자서는 살아 갈 수 없는데... 나만 좋다면, 내게 이익만 된다면, 남의 마음에 상처도 주고, 이웃을 함부로 대하고, 자연을 오염시키면서 살아가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날 수 있을까? 나 혼자는 살아갈 수 없는데, 공기가 없으면 단 몇 분도 살 수 없는데, 물이 없으면 며칠을 견디지 못하는데, 도로가에 자라는 이름 모르는 풀이며 한 거루의 나무도, 이 세상에는 가치 없는 것이 없는데... 사람의 기준으로 좋은 것, 나쁜 것, 귀한 것, 천한 것을 구분하고 서열 매기고 함부로 대하고 사람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



선과 악은 무엇인가, 잘나고 못난 것은 무엇인가? 좋은 싫음은 어떻게 구별하는가. 세상의 모든 것, 먹고 입고 살아가며 즐기고 웃고 울며 행복해 하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것을 나를 중심으로 가치를 매기고 그 기준으로 선악과 시비를 가리고 그것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믿고 확신하다. 나무와 꽃이, 풀과 시슬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들을 함부로 죽이고 괴롭혀도 좋은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간을 기준으로 귀하고 천하다거나 가치가 있고 없고를 매기는 것은 옳은 일인가


도종환시인은 당신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착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면서도 마음이 착해지지 않는 것은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 이라고 했다. 사랑하고 있다면... 부모를, 이웃을 , 형제를, 사람을, 자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귀하게 생각하고 아름답게 생각한다. 마음 속에 사랑을 품고 사는 사람은 남을 증오하거나 시기하거나 질투하거나 저주하거나 잘난 채 하거나 오만하거나 남을 없인 여기지 않는다사람들에게 죽기위해 태어난 존재는 없다. 인간 중심의 세계관, 결정론적인 세계관으로 모든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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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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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8.20 04:55



  <아래 모든 이미지 출처 : 다음검색에서>

교육과학기술부가 2009개정교육과정을 개정 고시한 내용이 이명박 정부의 개발주의, 자본 편향 논리의 이데올로기로 얼룩져 있다며 시민사회단체와 전교조가 반발하고 있다. 교육과정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야단일까? 2008년 금성출판사가 만든 교과서가 수구언론의 몰매를 맞고 사라졌던 사건을 예를 들어 교육과정이 왜 중요한 지 살펴보자.

“금성출판사에서 발행한 근현대사 교과서와 북한 역사교과서들을 비교·분석한 결과 금성출판사 교과서가 북한 교과서를 베꼈다”
“국민적 열망과 여러 정치세력들의 반대 속에 1948년 5월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우기 위한 총선거가 실시됐다…친일파 처벌은 거의 이뤄지지 못했으며 민족정신에 토대를 둔 새로운 나라의 출발은 수포로 돌아갔다…”

한나라당 정두언의원이 교육과학기술위 국정감사를 위해 배포한 보도 자료에서 금성출판사를 비판한 글 중 일부다.


정두언의원은 “좌파세력들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교과서의 편향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폐해와 해악은 나라의 존망까지 위협할 정도이기 때문에 연내에 교과서 개정 절차를 밟아 당장 내년 역사교과서부터 새로운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

정두언 의원이 금성풀판사가 발행한 교과서를 비판한 이유는 금성출판사의 사관이 자신의 사관과 다르다는 이유 때문이다. 도대체 사관이 무엇이기에 현대사 교과서 문제가 ‘나라의 존망까지 위협할 정도’라며 길길이 뛰는 것일까?

과거에 일어났던 모든 사건은 역사가 되는가? 역사는 지나간 일(事件)을 모아둔 게 아니다. 지나가 일 중에서 후세 사람들이 알아서 도움이 될 수 있는 가치 있는 事實도 있고 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쓰레기 같은 事實도 있다. 여기서 가치로운 事實이란 학자의 견해나 기준, 해석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모든 事實이 史實이 아닌 바에야 그걸 구별하기 위해 필요한 게 역사관(歷史觀)이라고도 하는 사관(史觀)이다.

‘역사가가 과거의 사실을 볼 때 역사가 자신의 고유의 입장, 과거의 사실 가운데서 어떤 사실을 선택할 때의 기준, 그것을 해석할 때의 해석 원리, 그 사실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 가치관 등,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을 역사관이라고 정의하고 있다.(네이버 백과사전)

사실(事實)과 사실(史實)도 구별할 줄 모르는 학생들이 역사학자의 사관의 도움 없이는 어떤  事實이 중요한지 그게 史實이 되는지 구별하기 어렵다. 그래서 전문가의 눈으로 역사를 해석한 게 사관(史觀)이다. 그런데 사관이란 순수한 객관적 진실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서술한 학자의 가치관이나 이데올로기가 담겨 있어 어떤 사관에 따라 집필했는가에 따라 2세들의 역사관을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친일세력들이 역사교과서를 만들면 어떤 모습의 교과서가 나올까? 불교신자나 기독교인들이 현대사를 집필하면 어떤 모습일까? 유신세력들이 현대사를 집필하면 어떤 교과서가 될까? 뉴라이트 계열들이 만든 현대사는 어떤 모습일까?

뉴라이트계 사람들이 쓴 현대사가 어떤 모습일지 가상해보자. 뉴라이트계열의 학자는 <유관순>열사를 ‘체제를 부정한 불순분자’로 <김좌진>장군은 ‘체제를 부정한 악질 테러분자’로 <일제 강점기의 종군위안부>는 ‘자발적인 경제단체, 성매매업자’로 기술할 것이다.

불교나 기독교 신자는 부처님이나 하느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가 부흥 발전한다는 결정론적 세계관으로 기술할 것이고, 유신세력의 잔당인 학자들은 10월 유신을 ‘한국적 민주주의’로 기술할 것이다.

경성제국대학 교수, 서울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대학원장, 학술원 회장, 진단학회 이사장, 민족문화추진회 이사장, 국방부 전사편찬위원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문교부 장관 등을 역임한 이병도와 같은 실증주의(이완용의 후손으로 식민지사관의 학자) 사학자들은 역사를 어떻게 기술할까? 해방 후 우리나라 역사는 ‘일선동조론, 타율성론, 정체성론‘에 입각한 식민사관에 에 의한 역사를 기록했고 그 기준에 따라 만든 교과서를 학생들이 지금까지 배워 온 것이다.


실증주의로 위장한 식민사관학자들은 ‘한민족은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에 지배당해 왔고 스스로 자립할 능력이 없는 정체된 민족으로서 일본의 한국 병합을 정당하다’는 사관을 가진 학파다. '일한동조론'(日韓同祖論), '동조동근론'(同祖同根論)을 바탕을 둔 사학자들이 만든 교과서로 배운 학생들은 역사를 어떻게 이해할까? 이들은 일본 제국 쇼와 천황의 한국 식민 지배가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금과옥조로 믿고 있어 학생들일본 제국 쇼와 천황에게 일본의 시각에서 세상을 보게 만든다.

사관(史觀)을 무시하고 지엽적인 역사적 지식(事實)만 암기하는 역사공부는 멀쩡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공부다. 노예들의 머릿속에 끊임없이 양방의 사고(思考)를 하도록 만들면 누가 이익이 되는 가? 노동자들의 머릿속에 자본가의 생각(價値觀)을 갖도록 하면 노동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해방 후 실증주의 사학자들은 식민사관에 의한 역사적인 지식을 암기시켜 역사의식을 마비시켜왔다. 그들은 노동자들에게 영웅사관이나 식민사관의 역사를 암기시켜 현실감각을 마비시키고 친일세력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존경받는 풍토를 만드는데 기여해 왔다.

정두언을 비롯한 수구세력들은 왜 금성사가 만든 현대사 교과서를 못마땅해 하는가? 기득권 세력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노동자들이 똑똑해져 김진숙위원처럼 노동자의식과 역사의식, 권리의식을 가진 민주시민으로 나타나는 걸 가장 두려워한다. 전교조를 비롯한 시민단체나 양심적인 학자들을 친북세력으로 매도하는 이유가 그렇다. 자신의 과거가 부끄러운 세력들은 학생들이 객관적인 역사의식을 가지고 비판적인 안목과 민주시민의식을 갖춘다면 자신들의 설 공간이 없어지는 게 두려운 것이다.

 


역사교과서만 문제가 아니다. 2009교육과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는 교과부를 보면 이성을 잃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교과부는 단 4개월 만에 초ㆍ중등 12년간의 교과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초·중학교 9년간의 교과서 개발을 6개월 만에 끝내려 하고 있다. 게다가 사회과 교육과정 개발진의 경우, 초등 지리 교육과정 개발에 교수 1명, 초등 일반사회 1명, 중학교 지리 1명, 중학교 일반사회 1명, 고교 경제 1명 식으로 각 영역별 1명씩으로 구성, 사실상 정상적인 교과 교육과정을 만들어 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수학과의 경우 공청회 일정을 학교 공문이나 홈페이지에 공지도 하지 않고, 교과 교육과정 개발에 참여한 관계자 몇 명만으로 도둑 공청회를 하였고, 역사과의 경우는 6월 29일 공지를 하고서 바로 다음날인 6월 30일 역사과 공청회를 열었다. 사회과의 경우는 초·중·고 12년간의 일반사회, 지리 영역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전문계 교과까지를 포함한 내용을 한꺼번에 몰아서 진행하기도 했다.

역사과에서는 현대사 비중을 축소하여, 역사학계의 반발을 샀고, 도덕과에서는 개념상 어불성설인 ‘녹색성장’ 교육을 강제하고, 다문화ㆍ세계시민교육 대신에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동안 통일 교육을 했던 고 1 도덕 교과까지 폐지하였다. 사회과에서는 ‘자본 중시, 노동 천시’의 편향성을 강화하여 친자본적인 정권의 속셈을 노골화하고. 비판적 시각을 기르는 고1 사회 교과는 폐지하고 말았다.

20대 80사회, 부모의 사회·경제력이 자식들에게 대물림되는 현실에서 자본가와 기득권 세력 친일분자들의 시각을 정당화시키는 이데올로기 교육을 많이 주입한다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가? 어차피 수능이라는 과정에서 교과서가 요구하는 정답을 말하지 않으면 이단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 현실이지만 그런 교육으로 망가지는 아이들을 방치하고 침묵하는 게 양심적인 교사들이 할 일일까?

기득권 세력의 이데올로기가 담긴 교과서를 열심히만 가르치면 훌륭한 교사인가? 이런 현실을 두고 수구언론이나 기득권 세력들은 ‘교사는 공부나 열심히 가르치라’고 한다. 왜곡된 역사를 배워 평생을 노동자로 살아야할 제자들 머릿속에 자본가의 시각을 갖도록 만드는 게 올바른 교육일까? 이명박 정부의 개발주의, 자본 편향 논리를 정당화시켜 시장지상주의 가치관을 갖도록 만드는 교육은 삶을 황폐화 시키는 교육이다. 정두언 의원을 비롯한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이 방정을 떠는 이유를 알만하지 않은가?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3.08 19:44



재래시장은 언제가도 볼거리가 있고 재미가 있다. 물건을 서로 팔겠다는 상인들의 목소리와 물건을 사러 나온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는 시인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삶의 목소리, 생동감 넘치는 삶의 현장이다.

단순하게 전시된 물품과 상인과 구매자가 만나는 장소로서 시장이 아닌 그 속에 흐르는 경제원칙이나 질서를 살펴본다는 것은 시장구경의 또 다른 재미일 수도 있겠다.

겉으로 보기는 천태만상의 상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손자의 용돈을 만들기 위해 텃밭에서 따온 고추나 호박잎을 팔려 나온 할머니도 있고 제법 밑천을 가지고 가게를 열어 도매상을 하는 사람까지 가지각색이다.

그들 중엔는 장사에 이력이 나서 손님을 썩 잘 끌거나 재미스럽게 장사를 하는 사람도 있고 골목에 앉아 힘겹게 장사를 하는 사람도 있다. 


물건을 사러 온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값을 물어 보고는 두말없이 흥정도 않고 대금을 지불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몇 십원을 덜 주려고 말다툼까지 하는 깐깐한 사람도 있다.

필요한 물건을 사러 오는 구매자와 이윤을 위해 상품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만나는 곳이 시장이다.

물건을 사고파는 사장의 모습을 보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원리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시장은 삶의 의욕을 느끼는 낭만적인 장(場) 만이 아니라 생존의 원리, 자본의 법칙이 지배하는 냉엄한 법칙이 작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
사진 출처 : 만드는 사람 블로그에서)

외형적인 시장은 온갖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뒤범벅이 된 무질서의 장(場)으로 보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시장을 통하여 사회의 법칙과 생존의 법칙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가치의 법칙>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란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원론적으로는 수요자와 공급자가 만나 상품을 매매하는 장(場) 즉 교환의 장소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질(異質) 상품간의 교환을 '화폐라는 매체를 통하여 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거래를 이해하기 위해서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쌀 한가마니와 구두 두 켤레가 서로 교환되었다고 하자. 이 두상품 간의 교환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 각각 상품이 갖고 있는 가치 즉 사용가치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고 동일한 가격으로 거래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사용가치란 무엇인가.


'상품 속에 담겨 진 인간의 노동이 얼마만큼 투하되어 있느냐'의 여부가 곧 상품의 가치로 표현되는 것이다. 공동으로 들어 있고 서로 비교할 수 있는 이 요소가 바로 서로 교환되는 두상품 사이의 평가의 요소가 되는 것이다. 투하된 '인간 노동의 양' 이것이 바로 모든 상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상품의 가치란 그 속에 얼마만한 양의 인간노동이 지출되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상품에는 투하된 노동의 양이나 노동의 질, 노동의 시간이 외형상 보이지 않고 가격만이 보이는 것이다.

초등학생과 어른이 씨름을 한다면 아무리 정해진 규칙을 준수하고 규정된 씨름장에서 정정당당하게 경기가 진행된다 하더라도 공정한 경기라 할 수 없다. 상업 행위도 마찬가지다. 자본이 넉넉한 사람과 장바닥에 펴놓은 몇 가지 상품이 전부인 상인이 경쟁을 한다면 공정하지 못한 경쟁 즉 불완전한 경쟁이 되는 것이다. 어린이와 어른의 씨름 경기처럼 재벌과 중소기업 간의 경쟁이란 싸움 이전에 이미 승부가 결정된 뻔한 결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95년에 들어서면서 대통령의 연두 기자 회견을 기점으로 국회에서 비준한 WTO조약은 이제 바야흐로 세계화의 시대가 시작됐음을 알려주고 있다.

일찍이 Ricardo. D비교우위의 원칙이라고도 하는 비교 생산비설을 주장한 바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생산이란 생산비가 절대적으로 가장 낮은데서 행해지는 것이 유리하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국가간에 Ⅰ국은 A상품에 특화하고 Ⅱ국은 B상품에 특화하는 편이 양국에 이익이 되므로 양국은 비교적 우위를 가진 생산에 특수화하여 국제 분업을 행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이론을 제창하였다.

강대국과 약소국이 완전 경쟁의 시장원리가 지배하는 상황이 조성되어 있다든지 강대국이 약소국에 대한 정치 경제적인 지배와 종속의 관계를 떠난 이상적인 사회에서는 Ricardo. D의 비교생산설을 이상적인 논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강대국은 약소국의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영토의 점령에서부터 다국적기업을 통한 직접투자까지 다양한 수탈이 자행되어 왔던 점에 비추어 그런 이론은 이상에 불과한 논리라고 비판받고 있다.

우리는 GATT나 I, M, F와 같은 기구가 약소국의 경제적인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고 보기보다는 강대국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국제기구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코즈모폴리턴이즘(COSMOPOLITANISM)이 그렇고 월슨의 민족자결주의조차도 미국중심의 세계질서 재편이란 비판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WTO의 적극 참여는 과연 우리나라 경제를 살리기 위한 선진국의 선심차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인지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줄 안다.

상품에 투하된 '노동의 양'이란 '얼마동안의 노동이 대상화'되어 있는가 즉 '지출된 노동시간이 얼마냐'의 길이로 측정된다고 볼 수 있다. 상품가치의 크기는 상품을 생산하는데 생산자가 얼마나 느리나, 빠르나, 게으른가, 부지런하냐에 상관없이 그 상품이 생산되는데 사회적으로 필요한 평균적인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원리에서 보면 전공정(全工程)이 기계화된 과정에서 생산된 공산품과 개발도상국에서의 노동집약적인 상품이 교환되었을 때의 손익은 계산하지 않고도 결과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국제간의 거래가 계속될수록 약소국이 무역적자 폭은 커지게 되고 강대국의 경제적인 예속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가 된다. 시장의 개방은 재벌기업의 독점지위를 마감하고 산업의 전 분야에 걸쳐 외국자본의 직접적인 지배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WTO가 시행되고 난 후의 국제간의 경제 질서는 후진국의 시장이 전면개방 되면서 산업의 전분야에 걸쳐 외국 자본의 직접적인 지배와 국내자본의 종속이 심화되기 마련이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산업별로 부가가치가 높아지거나 소득이 증가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농산물은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고 주식이 강대국의 무기가 됐을 때 그 결과는 예상을 뛰어 넘는 고통을 감수 할 수밖에 없게 된다. Ricardo. D의 산업의 특화란 완전경쟁이 불가능한 국제간의 무역에 있어서 강자의 논리라는 비판을 면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시장의 외형적인 무질서 속에 사회의 질서가 있음을 가치법칙에서 살펴보았다. 그 외에도 수요와 공급의 경제원칙이 현실의 여건 속에서는 독점이란 형태의 변칙이 있음을 보지 못할 때 원칙주의자는 피해자가 된다.

형식만을 보고 내용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사회의 객관적인 이해는 불가능한 것이다.
올바른 사회의 이해 없는 삶은 무계획적이거나 결정론적 세계관에 빠져 허무주의나 신비주의로 인생을 살아 갈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시장구경을 통하여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질서가 자연 속에 숨겨 진 비밀이듯, 시장 속에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독과점이나 가치 법칙도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주체적인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생활의 여유가 있어서일까? 아니면 건강에 관심이 많아서일까? 요즈음 KBS ‘6시 내 고향’이나 MBC ‘생방송 전국시대’와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 맛있는 음식이나 유명한 맛 집을 잘도 찾아 소개하곤 한다. 그런데 이런 프로그램을 자세히 보면 엽기적인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내용을 담고 있다. 낙지를 산채로 입에 집어넣거나 산 동물을 잔인하게 죽이는 그런 내용도 있다. 사람들의 먹이가 ‘날 것으로 먹거나 죽이거나 요리하는 게 뭐 문제될 게 있는가?’라고 할 지 모르겠지만 '동물은 마치 사람에게 먹히기 위해 태어났다'는 시각으로 제작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서울시당 관계자들이 무상검사-무상접종 등의 정책으로 신종플루에서 해방된다는 내용의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사진=진보신당)

언제부터 인간이 우주와 자연의 주인이 됐을까? 아니 그런 권한을 누가 주기라도 했을까? 우리 선조들의 삶은 자연과 공존하는 자연친화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 왔다. 자연이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에 대해 경외감을 갖고 자연과 더불어 삶을 살아 왔다. ‘자연과 신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자연은 곧 신이며 신은 곧 일체의 자연’이라는 범신론적 종교관이 그 좋은 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간 인간은 자연의 주인이며 자연은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정복의 대상이라는 세계관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요 정복자라는 세계관은 기독교 세계관에서 비롯된다. 연원을 따지자면 성서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창세기 제 1장에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 빛과 어둠을 만들고 창공을 만들어 물과 뭍을 구분하게하고... 인류의 조상인 남자와 여자를 흙으로 지으시고... 이제 내가 너희에게 온 땅 위에서 낱알을 내는 풀과 씨가 든 과일을 주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생물에게도 온갖 푸른 풀을 먹이로 주고.... 이 동산에 있는 마음대로 따 먹어라.... 」고 기록하고 있어 자연이 인간을 위해 창조됐음을 시사하고 있다.

성경대로라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불위하시고 무소부능 하시다’는 해석이다. 이러한 신의 능력은 7일 만에 우주와 인간과 자연의 창조를 완료하고 인간 중심의 정복론적인 세계관이 완성된 셈이다. 하느님께서 "이제 내가 너희에게 온 땅 위에서 낟알을 내는 풀과 씨가 든 과일 나무를 준다. 너희는 이것을 양식으로 삼아라.” 또 “모든 들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생물에게도 온갖 푸른 풀을 먹이로 준다." 고 했으니 자연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지고 인간이 자연을 다스릴 권한을 가진 주인으로서 지위를 확보한 것이다.

기독교의 결정론적 세계관, 정복론적인 세계관이 옳다고 치자. 그 결과 신의 피조물인 인간이 사는 세상은 신이 이루고저 했던 ‘이 땅의 하늘나라’ 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늘과 땅과 물은 쓰레기로 현대과학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바이러스가 나타나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과학만능주의의 오만이 '사람, 돼지, 조류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유전물질이 혼합되어 있는 새로운 형태의 바이러스’에 혼비백산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에 대한 정복론적 세계관은 숨쉴 공기도 안심하고 먹을 물도 없는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유전자 변형식품은 가난이 없는 풍요를 말하지만 지진과 해일 등 이상기온과 기상이변이 지구를 엄습하고 있다.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즐기자'는 인간의 욕망이 자연의 보복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인간중심의 세계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세계관. 여기다 신자유주의라는 상업논리는 삶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상업화된 모든 것은 인간이 아니라 돈을 위한 것'이라는 학자들의 경고가 현실로 다가 온 것이다. 신종플루라는 사상 미증유의 자연의 공격에 대한 학계나 정부의 대책은 속수무책이다.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대안이 늘어나는 환자 수를 집계해 발표하거나 사망자 수를 밝혀 오히려 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예방 백신조차 확보도 못하면서 ‘신종플루에 감염되지 않으려면 손을 자주 씻어야 하고 손으로 눈과 코, 입을 가리고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하며 유행 시는 집단행사 등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유의사항이 전부다. ‘발열과 기침, 목통증, 콧물 혹은 코막힘 중 한 가지 이상의 증상을 보이면 곧바로 보건소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으라는 정부의 궁여지책이다.

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고 했던가? 인간의 오만과 욕망이 돌이킬 수 없는 막다른 길로 치닫고 있다. 혹은 인간승리를 말하고 혹은 빈곤에서 해방을 말한다. ‘윗돌 빼 아랫돌 괘기’는 대책이 아니다. 열이 나는 환자에게 해열제는 치료약일 수 없다. 우선 급하니까 윗불부터 끄고 보자는 식의 백신 운운하지만 인간의 욕망 충족을 위해 끊임없이 자연을 파괴하면서 자연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고 믿어도 좋을까? 욕망의 끝은 어디일까? 방황하는 정부 ‘인간도 자연의 한 구성인자’라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 자연은 인간의 오만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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