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부 아세요? 중고등학교 추억 중 잊지 못한 추억 중의 하나가 교문을 통과하며 당했던 인권침해가 아닐까? 출근하다 보면 학교 당장 안에서 명찰을 친구에게 던지는 학생을 가끔 본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명찰을 달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일찍 등교한 친구에게 명찰을 던지라고 부탁해 남의 명찰을 달고 교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다.



정직하게 교문을 들어오다 선도부에게 적발된 학생은 벌점을 받거나 혹은 아침부터 단체기합을 받고서야 교문을 통과하게 된다. 남의 명찰을 달고 등교하는 학생과 정직하게 복장위반으로 적발된 학생 중 누가 더 정직한 학생인가? 정직한 학생은 벌점을 받은 불량학생이요, 요령껏 선도생을 속인 학생은 모범생인가?


지금도 교문에는 선도완장을 찬 학생들이 교문 앞에 서서 등교하는 학생들의 복장위반이나 지각을 단속하기 위해 서서 지키고 있다. '학교에서 정해 둔 교칙을 잘 지키는가, 준법정신의 생활화'(?)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지금은 많은 학교에서 선도부를 없애는 대신 학생안전지킴이’ ‘캠페인 활동’ ‘학생회 아침 맞이 인사담임교사 중심 생활지도 전교생 윤번제 학칙 준수 활동 참여..등과 같은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지만 아직도 지역에 따라서는 선도생이 교문을 지키고 있다.


교문지도는 학생을 '통제와 단속의 대상으로 보느냐' 아니면 '가치관의 내면화를 통한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교육으로 보는가의 교육관 차이다. ’가만있어라는 순종을 체화시키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순치(馴致). 불의를 보면 분노할 줄 모르게 하는 교육, 침묵을 강요하는 교육은 비굴한 이중인격자로 길러내는 반교육이다. 더구나 선도부의 눈을 속여 요령을 피우는 학생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교육이라는 이름을 가장한 이중인격자로 키우는 교육이다.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학교에는 민주주의가 없다는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주권자인 국민에게 헌법교육을 하지 않는 학교. 대부분이 노동자로 살아갈 학생들에게 노동 3권도 근로기준법도 가르쳐 주지 않으며, 민주시민으로 살아갈 학생들에게 민주의식, 시민의식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고 있다. 필자는 지금부터 16년 전 오마이뉴스에 반교육도 교육이다’ -학생을 이중인격자로 키우는 교칙-(클릭하시면 보입니다) 이라는 주제로 기고했던 일이 있다. 학교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학생들이 인권을 존중하는 학교, 가고 싶은 학교로 바뀌었을까


반 교육도 교육(?)이다

학생을 이중인격자로 키우는 교칙

2001.12.23 김용택(kyongtt)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중에서 가장 관념적인 말이 '사랑'이라고 했던가? 사랑이 담겨 있지 않는 사랑만큼 공허한 사랑도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수많은 관념들이 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시행되는 반교육도 이러한 관념의 하나다. 


아이들을 사랑한다면서 어른의 기준에 맞추어 교칙을 만들고 그 기준이 사랑으로 둔갑하여 아이들을 길들이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시행되는 수많은 사이비 교육이 그렇다.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시행되는 낡은 교칙들이 아이들의 인권을 짓밟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학교만큼 비민주적인 곳도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학교장의 지시가 법이 되는 학교사회에서는 학생지도도 예외가 아니다. 


하기는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잘못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태어나지 않은 어린아이가 어머니 배속에서 어떻게 '나는 내가 가진 인권을 국가에 위임한다'는 계약을 하고(사회 계약설) 태어날 수 있을까? 


학교도 마찬가지다. 입학하기 전 관행적으로 시행되어 오던 낡은 교칙을 지켜야 한다고 대표를 통해 선서를 시키면 그것으로 끝이다. 내용이 무엇이건 학생들이 알 필요도 없다. 입학식 때 "나는 교칙을 준수하고...


"그렇게 요식적인 선서를 하면 끝난다. 학생의 인권이 이렇게 간단한 요식 절차를 거쳐 반납 받고 졸업할 때까지 모든 생사여탈권을 학교가 장악하게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 학생은 헌법이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도 통신의 비밀도 보장받지 못한다. 학교의 필요에 의해 귀밑 몇 센티미터는 모범생이고 그보다 1센티미터만 길어도 불량학생이 된다. 학교에 배달되는 우편물은 언제든지 개봉 가능하다. 불량학생(?)의 인권은 보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교육방침이다. 


교칙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인권침해는 교육이라는 이름만 붙이면 선(善)이 된다. 교칙은 헌법을 능가하는 절대절명의 권위를 지닌다. 그것은 교사의 권위로도 활용된다. 교칙의 부당성을 항의라도 할라치면 죽음(퇴학)을 각오해야 한다. 교칙이라는 절대적인 권위가 존재하는 한 학교는 '순종'만이 미덕이다. 


학교는 이제 교육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결전의 자세라도 할 각오다. 두발을 '자율화'하자는 주장이라도 하는 교사는 정신병자 취급을 받아야 한다. 학교의 착각은 이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교육부장관은 교육의 위기가 보충수업을 못해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믿고 시도 교육감이 알아서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일류대학이 있는 한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이 아니라 점수다. 학교는 지금 교칙이라는 기둥으로 붕괴의 위기를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이다.


아이들이 교칙을 지키지 않은 것은 학교에서 민주주의가 실종됐기 때문이다. 스스로 결정하게 하고 지키도록 하는 과정을 생략한 채 어른들의 기준으로 교칙을 만들어 놓고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지키라고 한다. 


두발검사에서 고속도로(?)를 만든 교사를 보고 '죽여버리고 싶다' 또는 '복수하고야 말겠다'는 아이들의 말에서 그들의 정서를 읽을 수 있다. 순진한 학생들의 가슴에 원한을 심어주는 교칙이 어떻게 교육으로 둔갑해 정당화 될 수 있는 지 이해가 안 된다.


상식 이상을 규정한 법이 지켜지기 어렵듯이 학생의 정서를 외면한 교칙은 교육이 아니다. 구두를 신어야 한다는 교칙을 만들면 운동화를 신고 등교하는 학생은 문제아가 된다. 운동화를 신어야 하는 교칙을 만들면 구두를 신으면 마찬가지로 불량학생이 된다. 머리핀의 색깔까지 통제하고 단속하는 것이 교육이라고 만드는 교칙은 교육의 효과 따위는 관심 밖이다. 개인적인 사정이 용납될 리 없다. 


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교칙을 위반하면 즉결심판이 떨어지고 바로 집행이 된다. 변명 따위는 오히려 형량(?)을 더 무겁게 한다. 항변권이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이러한 교칙은 아이들을 이중 인격자로 키운다. 


복장을 위반한 학생은 선도교사가 오기 전에 일찍 등교하거나 선도 생이 철거한 후에 교문을 통과한다.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학생은 한 술 더 뜬다. 


같이 오던 학생이 교문을 통관한 후 담벽을 돌아 자기 명찰을 던져 주면 남의 명찰을 단 학생은 유유히 통과한다. 


고지식하게 명찰이 없어 교문에서 벌을 서는 학생은 '요령도 푼수도 없는 놈'이 된다. 일찍부터 세상을 살아가는 반 교육적인 요령(?)을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학교는 이렇게 교칙이라는 이름으로 반 교육적인 교육을 하고 있는 곳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하는 교사가 우대 받는 사회에서는 이러한 반 교육적인 교육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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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서울의 한 공립고등학교  남자교사 5명이 동료교사와 여학생 수십 명을 지속적으로 성추행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에 이어 부산에서도 미술교사가 학생을 상대로 벌어진 성추행 사건을 보면 벌여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학교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그것도 교사가... 왜 이런 일이 그치지 않고 있는 것일까? 

 

교육하는 학교에 민주주의도 인권도 없는 치외법권 지대라는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지금도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고 있는 지역은 전국 17개 시·도중에서 5개 지자체 뿐이다. 학생을 인격적인 존재로 보지 않고 교화의 대상, 순치의 대상으로 보는 전근대적인 인간관이 지배하는 학교에는 인권모독을 비롯한 성추행이 어떻게 근절 되겠는가? 지난 21일부터 국회를 통과한 '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인권이 실종된 학교에 인성교육이 가능하다고 믿는가? 

 

학교가 교육하는 곳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교육과정을 정상화하고  입시학원이 된 학교 교육하는 곳으로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해 학생들이 인권이 존중되는 학교로 만들어야 한다. 2002년 필자가 경남도민일보에 썼던 칼럼입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학교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출근하면서 지나치는 학교의 교문은 군대의 위병소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곤한다. 교문을 지키는 교사나 선도생에게 성실’, ‘단결!’과 같은 구호를 외치며 마치 군인처럼 거수경례를 한다. ‘! 너 이리와봐!’ 선도부 선배나 학생부 선생님의 말 한 마디에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다.

 

 

<군대 위병소와 닮은 학교교문>

 

 

아침마다 당하는 일이지만 교문통과는 팽팽한 긴장과 불안감으로 설렌다. ‘두발은 규정을 어기지 않았는가, 교복은 단정히 입었는가? 색깔이 있는 양말은 신지 않았는가, 불순한 소지품은 없는가등을 검사받아야 하고 5분이라도 늦게 오면 책가방을 내려 좋고 주먹을 쥐고 엎드려 뻗치기를 하거나 운동장을 몇바퀴 돌아야 한다. 학교에 따라서는 벌점을 받기도 한다.

 

 

교육부의 홈페이나 학교 홈페이지에 올린 학생들의 민원 중 가장 많은 건의사항이 두발이나 교복에 관한 이야기다. 체벌에 대한 문제도 심심찮게 제기 한다. 교육비젼 2002, 새학교문화창조에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결정하기를 권장하고 있다. 학생회장을 학생들이 직접 선출하지만 학생들의 인권문제를 비롯한 당면 현안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학생회는 학교측의 간섭없이 자율적이고 민주적으로 구성, 운영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가당치도 않는 얘기다.

 

유교적인 전통과 경쟁적인 학교 풍토에서는 교칙에 잘 따르는 것이 도덕적이고 모범적인 학생이라는 정서가 지배적이나다.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잘못된 점은 고치고 개선할 점은 충분히 개선시키고 학생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는 방행으로 학교는 바뀌어야 한다.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노력도 중요하지만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어른들의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라는 어른들의 잘못을 지적한 글이 올라와 있는가 하면 학생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소한의 발언권과 선택권이다. 그리고 우리의견을 모을 수 있는 전국단위의 학생단체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제 학교는 바뀌어야 한다. 교육의 한 주체인 학생 대표가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하거나 학생들을 징계할 때도 학생회의 대표가 참여하여 의사를 반영해야 한다. 또 하생들이 지켜야 할 교칙의 제정이나 개정을 당연히 학생회 동의 아래 이루어져야 한다.

 

입학식 때 한사람의 신입생도 읽어 본 일조차 없는 교칙을 학생 대표가 학교장에게 선서를 했다고 해서 준수하기를 강요하는 것은 학생인권의 차원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최근 KBS가 기획시리즈로 방영하고 있는 <교육, 이대로 둘 수 없다>라는 방송에서 보듯 두발문제를 비롯한 학생들이 고민하는 문제를 학생들 스스로 규정을 만들고 자신이 정한 약속을 그스로 지켜 나가는 민주적인 학교도 있다. 이러한 학교의 모습은 지금까지 일반적인 규제와 단속 위주의 생활지도를 하던 학교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생활지도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유지해 오던 단속위주의 생활지도는 중단해야 한다.

 

 

<단속위주 행활지도 중단해야>

 

단속이나 교칙이 무서워 지키던 질서는 단속이 그치면 지키지 않는다. 규칙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지킬 때 민주주의도 인권도 살랄 수 있다. 학교가 무너지는 이유는 학생을 하나의 인격적인 존재로 보지 않고 순치()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통제와 단속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2002517일 경남도민일보 열린/여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제가 방송에 출연했던 원고, 경남도민일보에 썼던 사설이나 칼럼, 대학학보사, 일간지, 우리교육, 역사교과, 국어교과모임, 우리교육...등에 썼던 원고를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2002년 517일 경남도민일보 '열린기획/여론'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검색에도 잡히지 않아 다시보기를 할 수가 없네요. 다행히 제가 스크랩해 둔 게 있어 여기 올려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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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참사가 일어난 지 1년 하고도 4개월이 가까워 온다. 아이들은 아직도 9명이나 바다속에 잠겨 있는데 정부가, 우리가, 내가 한 일이 없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진상규명....!

 

정부는 진상규명을 할 의지가 있는가? 마지 못해 특별법을 만들었지만 그 시행령에는 가해자가 진상조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만들어 놓았다. 유가족들은 삭발로 울분을 토하고 가슴을 치지만 대통령은 마이동풍이다.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살리겠다는 경제, 그 경제는 누가 죽인 것인가? 재벌경제를 살리면 민초들도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가?   

 

세월호 참사...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합니다. 그것이 억울하게 숨져간 아이들에게 속죄하는 길이요, 제 2, 제 3의의 세월호참사를 막는 길입니다.

 

4.16...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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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5.04.05 18:11



며칠 전 삼성이 운영하는 신라 호텔에서 한복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입장을 거부당한 얘기로 네티즌들의 분노를 쌓던 일이 있지만 해방된 지 60년도 훨씬 지난 우리 생활 속에는 아직도 청산 못한 식민지 잔재가 너무나 많다.

식민지잔재로 남아 있는 일본말, 식민사관, 이름이 바뀐 지명, 여자이름 뒤에 ~자가 붙은 이름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했던가? 가문이며 제사문화, 남존여비와 같은 공자문화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생활 속에 남아 있는 식민지 잔재는 얼마나 많은가?

 

                         <사진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국민'이라는 말이 ''의 준말이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초등학교'로 바꾸었다.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뀌는데 수십년이 필요했지만 아직도 ‘국민’이라는 말은 우리 생활 속에서 바뀔 생각조차 않고 있다. 해방 후 60년도 훨씬 지났지만 노예시대 문화를 청산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은 일본에게 어떻게 보일까?

‘한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은 과거 일본 식민지시대의 훌륭한 교육 덕분... 어쩌고 하는 일본 관리들의 망언이며 독도가 자기 땅이니 역사교과서 왜곡은 어느날 우연히기 나타난 일은 아니다.


나라 사랑은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부끄러웠던 노예생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서는 민족의 자존도 긍지도 입에 발린 소리다. 생각해 보자. 36년간 민족해방을 위해 고초를 겪었던 애국지사들의 자손은 잔악한 일본의 탄압으로 참혹한 생활을 했지만, 민족을 팔아 부귀영화를 누렸던 반역자들의 자손들은 호의호식하며 고등교육을 받고 해방정국의 주역이 된다. 우리사회의 온갖 모순의 근원이 식민잔재청산을 못해서 그렇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오늘은 생활 속에 남아 있는 식민지 잔재를 찾아보자.

우선 ‘국민 여러분!’ 할 때 국민은 누군가? 한자
사전을 보면 民자는 象形. 즉 ‘눈동자가 없는 눈을 바늘로 찌르는 모양을 본뜸, 눈을 찔러 사물을 볼 수 없게 된 노예를 나타냄’ 이라고 적고 있다.

어원을 보면 '民자는 국가의 주권주체가 아니라 황제 혹은 통치권자에 종속된 노예의 모습'이다. 금문에서부터 등장하는 民은 예리한 칼에 눈이 자해된 모습이다. 옛날 포로나 죄인을 노예로 삼을 때 한 쪽 눈을 자해한 것은 '성인 남성 노예들에게 반항할 능력을 상실시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논어에서도 춘추시대 사회의
지배계층을 의미하는 ‘인’과 피지배 계층인 ‘민’이 각각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노예를 뜻하는 '국민'뿐만 아니라 학교 이름 중에는 00동0학교, 00서0학교와 같은 이름이 있다. 일본의 수호신이 태양신이요, 동0학교는은 일본 학생이 서0학교는 조선 학생들이 다니던 학교라는 걸 생각하면 그런 이름이 왜 해방 후 60년이 지나도록 그대로 불리고 있는 지 이해가 안 된다.
황국신민 정신을 주입하기 위한 하던 애국조례며 학교장 훈화가 그대로요, 일본식 군국주의 교육의 잔재인 ‘차렷, 경례’도 그대로다. 불량선인을 색출하기 위한 교실첩자인 주번제도며 복장위반이나 지각생을 단속하던 교문지도도 식민지 시대 그대로다.

국민학교라는 이름도 1996년에야 초등학교로 바뀌었지만 `유치(幼稚)하다' 즉 ‘수준이 낮거나 미숙하다’는 뜻의 유치원은 아직도 못 바꾸고 있다. 학교장의 ‘회고사(回顧辭)’나 ‘훈화(訓話)’, 학년말 평가를 뜻하는 ‘사정회(査定會)’ 등의 일본식 조어가 사전에도 없는 용어지만 여전히 교육현장에 남아 있고, 식민지 잔재인 순서나 방위가 들어간 교명(校名)도 그대로다.

인권침해라는 끊임없는 지적을 받고 있는 두발·복장 검사며 일본식 교육문화, 군대식 거수경례, 아침조회 같은 문화도 식민지시대 그대로다. 또 식민지시대부터 계속되어 온 수학여행은 얼마나 교육적이기에 바꿀 생각조차 않고 있는가?

법률용어며 경제용어, 건축을 비롯한 일제가 남기고 간 언어문화의 오염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해방후 건국한 나라가 친일매국노들이 주역이 됐듯이 해방조국의 문화는 일제의 잔재로 상처투성이가 되어 지금도 생활속에 남아 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나무라기 전에 우리의 생활 속에 남아 있는 식민지 문화청산은 왜 못하는가?
  
이승만정권 때 정치적기반이 없어서 친일파를 등용하면서 금과옥조로 이용하던 반공 이데올로기는 어떤가? 반공법은 이름만 ‘국가보안법으로 바꿔 진보적인 지식인들의 목줄을 죄는 올가미로 이용되고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했다. 지금부터라도 왜곡되고 오염된 민족문화를 복원하고 우리 문화 속에 남아있는 식민지 잔재부터 청산하자. 그것이 역사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일이며 일본으로부터 조롱거리가 되지 않는 민족의 자존과 긍지를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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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 1

 

“야 임마!, 넌 학생이라는 자식이 머리가 그게 뭐야? 1교시 마치고 학생부로 와!, 알겠어?”

등교하던 학생이 교문에 서서 지도를 하던 학생부 선생님에게 두발단속에 걸렸다.

 

“... 제 머리가 어때서요?”

 

“야 이놈 봐라, 너 지금 선생님에게 반항하는 거야?”

 

“씨~”

 

혼잣말을 그만 선생님이 듣고 말았다.

 

“야~ 이 자식 봐라, 이거 안 되겠어, 너 몇학년 몇반이야?”

 

#. 사례 2

 

“야, 너 이리와 봐!~ 치마길이가 그게 뭐야! 너 학생 맞아?”

 

교문에서 등교하는 한 여학생이 치마길이가 유별나게 짧다. 뱀눈을 하고 지키던 학생부선생님이 그냥 넘어갈리 없다.

 

“제 치마가 어때서요? 우리반 00는 이 보다 더 길어도 괜찮던데... 에이~ 아침부터 재수 없어..”

 

“어 이놈 봐라, 뭐 재수가 없어? 너 이리와 봐!, 어~ 이것 봐, 손톱에 메뉴큐어도 칠했잖아, 어쭈 화장까지 하고... 이거 불량학생이잖아~”

 

필자가 정년퇴임하기 전 출근하는 교문에서 일상적으로 보던 일이다. 지금은 어떨까? 며칠 전 선생님들의 모임에 갔다가 요즈음도 이와 다를 바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1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른 게 없다니... 교문에는 언제쯤 민주주의가 살아날 수 있을까? 필자가 살고 있는 세종시에는 평준화지역이 아니어서 국제고니 명문고(?)로 지원해 가고 나머지(?) 학생들만 일반계고로 지원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

 

반면 실업계 고등학교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 중에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원하는 학생들이 지원하기 때문에 오히려 50%내외 성적 학생들이 몰려 옛날보다 훨씬 좋아졌다는 것이다. 결국 중간 성적 학생들까지 뺏겼으니 일반계 고등학교가 옛날 실업계 고등학교와 뒤바뀐 형상이 되고 말았다는 한다.

 

위의 사례 #.1과 사례 #. 2는 무엇이 문제일까?

 

첫째로 교사의 학생관이 아직도 구시대의 모습과 달라진 점이 없다는 사실이다. 학생지도를 인권의 차원에서 접근하지 못하고 통제와 단속, 그리고 복종을 강요하는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학생이 고분고분하지 않고 선생님에게 반항하면 무조건 ‘요즘 아이들 버릇이 없다’거나 아니면 ‘선생님을 무시한다(교권)’고 판단한다.

 

 

학생들이 버릇이 없다거나 교권이 추락했다는 말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전에 한 번쯤 생각해 보자. 머리카락의 길이가 왜 ‘학생다워야...’하는가? 이 ‘학생답다’는 기준은 ‘학생은 머리가 단정해야 모범적’이라는 철저한 어른중심의 가치관이다. 머리를 염색을 했다거나 길이가 그렇다. 물론 학생이 지나치기 짧은 치마를 입는다든지 또는 외모에 자나치게 관심을 갖는다는 공부에 집중하는 학생의 자세가 아니다. 그러나 ‘짧은 치마를 입은 학생은 불량학생’이라는 판단은 옳지 않다.

 

 

 

누가 이 여학생의 치마길이를 짧게 입도록 강요하는가? 외모지상주의 얼짱, 몸짱문화는 가치판단의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학생에게 이런 문화를 불어넣은 건 상업주의나 남녀불평등이 낳은 결과다. 더구나 사춘기에 남보다 더 예뻐지고 싶다거나 이성에게 돋보이고 싶어 하는 본능에 비추어 학생들게만 책임을 지우는 게 옳은가?

 

남녀공학이나 여학교에서 치마길이에 대한 선생님들과 학생들간의 신경전은 몇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학생의 치마길이는 무릎을 덮어야 학생답다는 선생님들의 시각과 허벅지가 보여야 예쁘다는 학생들의 욕망(?)은 치마길이 전쟁을 방불케 한다. 필자가 여고에 근무하고 있을 때 교문지도를 하는 선생님을 피해 담벽을 넘던 학생이 다리뼈가 부러져 병원에 입원했던 일도 있을 정도다.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

 

이미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고 있는 지역도 많은데 아직까지 두발 길이로 불량과 모법을 구별하는 전근대적인 학생관은 이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고분고분한 학생, 순종적인 학생을 학생답다고 생각하는 학생지도는 학생을 가치내면화가 아닌 이중인격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교권이란 '교사의 권력'이 아닌 '교사의 권위'의 줄임말이다. 교권을 '학생들이 교사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교육이란 ‘물리적으로 학생을 제압하는 힘이 아니라 타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자신을 낮추고 학생들을 존중해 자발적으로 따르도록 할 때 완성되는 것이 교사의 권위라고 본다면 이제는 시대착오적인 교권으로 학생을 지도하겠다는 착각에서 깨어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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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학교에 민주주의가 없다..?’


참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이 말에 반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식민지시대 황국신민화를 위해 필요했던 애국조회가 그대로요, 요 주의 인물을 감시하게 위해 만들었던 당번제도며... 군대 위병소를 닮은 교문지도며, 평교사, 부장교사, 수석교사, 교감, 교장으로... 계급화된 학교의 조직 체계... 등등 학교는 아직도 민주주의 사각지대다.



 

학교에 민주주의가 사라진 이유는 고색창연한 제도 탓만이 아니다. 학교가 민주적인 학교로 거듭나지 못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는 교장제도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병원장도 검사장도 자격증 없이 할 수 있지만 학교장에게만 필요한 자격증.... 교장이 어떤 사람이 되는가의 여부에 따라 전근대적이고 폐쇄적인 학교가 될 수도 있고 민주적인 학교가 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

 

‘교장훈화를 듣고 훈화내용을 받아 적고 소감쓰기’..... ‘훈화공책에 교장의 훈화를 질 기록 하고 있는지, 정기적으로 걷어 검사’를 하고 방송훈화를 듣느라 1교시 수업을 배치하기 어려워 담임시간으로 배치해 놓기도 하는 학교. 전교생이 교실에서 교장의 훈화를 방송으로 듣고 방송조회가 끝난 후 화면에 나타난 교장을 향해 ’교장선생님께 경례‘를 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는 학교.

 

학교에는 민주적으로 운영할 기구가 없는 게 아니다. 대표적인 법적인 기구가 학교운영위원회다. 학교운영위원회는 ‘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높이고, 지역의 실정과 특성에 맞는 창의적인 교육’을 위해 설립한 심의기구(사립은 자문기구)다. 이런 학교운영위원회가 개방적이고 투명한 학교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구성원인 교원위원이나 학부모위원, 지역위원 선출과정에서 교장 사람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민주적인 학교- 기숙형 공립대안학교인 태봉고>

 

학교장의 독선을 견제할 ‘인사자문위원회’며 ‘성과급 평가위원회’와 같은 기구도 있지만 그런 건 형식에 불과하다. 교사회니 학부모회가 있어도 법제화 되지 않고 임의기구인 이런 기구가 학교장의 독선적인 운영을 막지 못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아니 오히려 학교장의 들러리 구실을 하고 있다. 그래서 학교를 교장왕국이라고 하는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교장’ 그는 누구인가?

 

초중등교육법 제 20조 1항을 보면 “교장은 교무를 통괄하고, 소속 교직원을 지도·감독하며, 학생을 교육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렇게 막중한 역할을 해야 할 교장... 도대체 교장이 학교에서 하는 일이 무엇일까?

 

교장은 ‘보직교사 임명권 및 교원의 근무성적평가, 인사고가평가, 학생생활지도를 위한 교칙개정, 시설 개선 등 예산 집행 및 업체선정, 기간제 교사 체용 및 면직 등 학교운영의 전권을 행사’한다. 한마디로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업무의 최종 결정권’은 모두 교장의 손을 거쳐야 한다고 보면 맞다.

 

학교장이 행사하는 모든 권한이 다 그렇지만 특히 승진, 성과급 등의 결정에서 학교장의 의사는 거의 절대적이다. 교원평가 또한 마찬가지다. 2008년부터 승진을 앞둔 교사들에게 동료교사의 다면평가가 30% 반영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교장이 40%, 교감은 30%를 차지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뉴시시>

 

뿐만 아니라 학교운영에 필요하다고 교장이 판단하면 교사를 초빙할 수 있다. 이름하여 ‘초빙교사제’다. 초빙교사의 자격은 ‘교사자격증을 소지한 교육공무원으로 실교육경력(교사경력) 4년 이상, 현임교 근무경력 2년 이상인 현직 정규교사로서 당해 학교 초빙요구 조건에 적합한자(초중등교육법 제 21조 2항)’라야 하지만 그것은 명분일 뿐, 대부분의 초빙교사는 승진 점수를 잘 받기 위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빙과정에서 금전 비리는 물론이요, 자연히 교장과 공생관계에 놓이게 된다.

 

이렇게 학교장과 공생관계에 있는 초빙교사가 ‘교장의 방패막이가 되고 학교 안에서 교사들의 입을 막는 역할’을 하는 데 앞장선다는 상식이다. 교사가 교감으로 승진하거나 원하는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위해서는 학교장의 근평이 거의 절대적이라는 사실이며 교감 또한 교장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교장의 근평이 거의 절대적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학교가 교장왕국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알 수 있다.

 

<전 태봉고 여태전 교장선생님의 교장 십계명>

 

근무평가권과 인사권을 장악하고 있는 교장에게 민주적인 학교운영이나 학교장의 경영에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다. 사실이 어함에도 불구하고 교장과 맞서 학교장의 눈 밖에 난 교사의 경우 ‘교육상 전보가 불가피한 자’로 분류돼 직권 내신으로 전보발령을 받게 되기기도 한다.

 

학교장은 ‘인격과 덕망을 갖춘 사람으로 교직원들의 존경을 받으며 학교경영을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학교현장에는 학교를 자기 뜻대로 운영하는 파렴치한 교장만 있는 게 아니다. 윗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학교를 운영하는 혁신학교 교장이며 내부형 공모제 교장, 그리고 작은 학교에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며 2세 교육에 전념하고 있는 존경 받는 교장선생님도 많다는 사실을 아울려 밝혀두는 바이다.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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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지금부터 교직원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일어서 주십시오.”

“차렷, 경례!”

 

학교의 교직원 회의는 이렇게 시작한다. 출근하는 교문에는 선도생들이 버티고 서서 지각생이나 복장위반학생을 단속하고 있다가 선생님들이 출근하면 “성실!” 하는 구호와 함께 거수경례를 한다. 거수경례를 하는 선도생들의 훈련된 모습을 보면 학교가 아니라 군대의 위병소를 통과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 이미지 출처 : 오마이 뉴스 >

 

학교는 아직 군국주의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수학여행, 주번 제도, 교훈 체제(급훈-주훈), 등교지도, 규율부, 복장검사, 두발검사와 같은 식민지 교육 잔재가 그대로다. 학교에 따라서는 일주일에 한번씩 전교생을 모아 놓고 애국조례라고 하는 전체조례를 한다.

 

상장을 전달하거나 학교장이 10여분동안 훈화를 하기 위해 4~50분 이상의 시간을 소비한다. 물론 여기서도 예외 없이 “차렷, 경례!”라는 구호와 함께 학생들은 군대식으로 거수경례를 한다. 심한 경우에는 ‘학교장에 대한 경례!’라는 구호와 함께 팡파르가 울려 퍼지고 학교장은 군인처럼 거수경례로 답한다.

 

학생들에게 ‘학교생활에서 가장 자존심 상한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하나같이 두발검사에 걸려 머리카락을 잘렸을 때라고 한다. 머리카락이 잘린 순간 ‘죽고 싶었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다. 가위로 잘린 자국은 이발소에 가서 단장을 해도 가위자국은 그대로 남는다. 어떤 때는 학부모들의 심한 항의를 받거나 지도받던 학생들이 노골적으로 반항하기도 한다.

 

“왜 머리를 기르자고 학생회에서 의논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그런 결정은 해도 필요가 없어요.”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지도교사인 학생부장의 한마디로 거절당하기 때문이다.

 

“학교의 주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하나같이 “학생입니다.” 리고 대답한다. “주인이 자신의 일을 결정하지 못하면 주인이 아니구나” “?” 학생들은 대답을 못한다. 머리카락에 염색을 하거나 런닝 샤스를 입지않고 교복을 입는다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다. 수십년 전부터 정해 내려온 교칙 ‘학생은 단정한 머리와 복장’이라는 성역(?) 규정에 도전할 용기도 용의도 없다.

 

                                                < 이미지 출처 : 오마이 뉴스 >

 

교육비젼 2002, 새학교 문화창조 추진계획에 의하면 「학교토론문화의 형성」 과제 중에서 ‘학교공동체의 공동 관심사항을 교원·학생·학부모들이 한자리에 모여 토론하고 합의 함으로써 구성원 모두가 자기할 일을 분명히 인식하고 자기 몫을 다하는 풍토를 조성한다’고 교정하고 학생회 일동의 활성화를 중심과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학교는 학생들의 최고 관심사인 ‘두발자유화’니 ‘교복자율화’같은 성역에 대해서는 불가침의 영역으로 남겨 두고 있다. 학교가 민주주의를 수련하는 장이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하느 둘이 아니다. 자율이 없는 간섭과 통제는 교육이 아니라 순치나 노역일 수밖에 없다.

 

민주의식이 없는 교사는 민주주의를 가르칠 수 없다. 전통적인 가치가 절대적인 가치로 자리잡은 사회에서는 변화나 민주주의는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책임과 자율을 전재로 하는 생활의 습관화는 새 학교문호를 창조하는 교육개혁의 핵심이다. 학교는 아직도 민주주의를 체험하는 교육의 장으로서 한계가 많다.

 

직원회의가 지시전달의 장이 아니라 의결기구로 바뀌고 학생들의 동아리활동이 활성화 되는것. 민주주의는 여기서부터 시작해야한다. 지시와 통제에 익숙한 교사는 학생들을 민주적으로 가르칠 수 없다. 교과서에는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을 가르치고 자유를 배우지만 교문 안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통제와 간섭으로 민주주의는 질식한다.

 

관념적인 지식은 시합용으로는 쓰일지 몰라도 삶을 바꾸어 놓지는 못한다. 실천하지 못하는 지식인을 양성하는 학교는 머리만 있고 행동이 없는 기형인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사는 1999년 5월 27~ 6월 2일 주간지 창원신문에 썼던 글입니다.

지금의 학교 모습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한 번 비교해 보십시오. 세상은 바끼어도 학교는 별로 달라진게 없습니다. 10여년 전의 학교 모습. 지금은 어떤지...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성교육자료2013.01.13 07:00


 

 

아침 보충수업이 있었을 때의 일이다. 시간이 늦을까 부랴부랴 교문입구에 들어서려는데 한 학생이 교문 담 벽에 서서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집에 연락할 일이 있으면 학교에 들어가서 해도 될 일인데 '등교시간이 늦었는데 이상하다.' 하고 지나치려는데 담 너머에서 "야 받아라"하는 말과 함께 뭘 던져주고 있었다.

 

낌새가 이상하다 싶어 바쁜 걸음을 멈추고 봤더니 명찰을 달고 오지 않은 친구에게 명찰을 빌려달라고 전화를 한 모양이다. 그걸 본 순간 장난기가 발동해 '어쩌나 보자'며 남의 명찰을 달고 들어가는 학생의 뒤를 따라 교문을 들어갔다. 역시나 이 학생은 무사통과했고 정직하게 명찰을 달고 오지 않은 학생은 잡혀서 이름을 적히고 있었다.

 

명찰을 달고 오지 못해 벌점을 받은 학생과 친구의 명찰을 빌려 달고 떳떳하게 교문을 통과한 학생 중 누가 더 도덕적일까?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교육적이어야 한다. 주번제도나 학교장 훈화 그리고 교문지도가 식민지시대 황국신민교육의 수단이었다는 것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교문지도'는 좋게 해석해 '학교에서 정해 둔 교칙을 잘 지키는가'의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다른 말로 하면 '준법정신의 생활화'라고 할 수 있다. 남의 명찰을 달고 새벽같이 출근해 교문에 서서 추위에 떨고 서 계시는 선생님과 선도학생들을 기만하고 통과하는 일은 학교가 '기만술'을 가르치는 시대착오적인 반교육이다.

 

 

교육이란, 특히 인성교육이란 통제나 강요에 의한 순치(馴致)여서는 안 된다. 엄부(嚴父)의 자녀가 이중인격자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은 상식이다. 학생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살다보면 늦잠을 잘 수도 있고 깜빡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여학생의 경우에는 남학생들에게 이름을 알리지 않기 위해 교문을 나서면 명찰을 떼고 다니는 경우도 있다.

 

명찰을 달지 않고 등교했다고 해서 벌점을 주고 혼을 내기보다 너그럽게 잘못을 깨닫게 반성의 기회를 주는 것이 더 교육적이 아닐까? 8시까지 등교해야 하는 데 10분 늦었다고 아침부터 운동장을 몇 바퀴 돌리고 교문에서 자를 들고 두발의 길이가 '귀 밑 3Cm보다 1Cm더 길었다고 가위로 잘리면 준법정신이 길러질까?

 

문제는 '학생관'이요, '교육관'의 차이다. 학생을 '통제와 단속의 대상으로 생각하느냐' 아니면 올바른 가치관을 갖도록 '가치관의 내면화'를 시키는가의 차이다. 아침마다 지금도 대부분의 고등학교 교문에는 무시무시한(?) 학생부장이 완장을 찬 선도생과 함께 교문에 서서 지키고 있다. 모자도 쓰지 않은 학생들이 마치 군인처럼 '단결' 또는 성실'이라는 구호와 함께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을 보면 군대의 위병소를 연상케 한다.

 

군사문화가 생활화된 사람들에겐 교문에서 학생들이 절도 있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고 '참 교육적'이라고 칭찬할지 모르지만 아침마다 이 교문을 통과해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고역 중의 고역이다. '운동화를 신으면 안 된다. 색깔 있는 가방이나 양말은 안 된다, 한 겨울인데도 목도리나 검은 색 이외의 코트도 안 된다. 머리카락의 길이는 귀밑 몇 Cm는 안 되고...' 온통 금지 투성이다.

 

 

학생을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교문지도는 폐지해야 한다. 교문지도가 교육적이지 못하다는 증거는 수학능력고사를 치르고 난 고 3학생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어제까지 서슬 퍼렇게 적용되던 교칙이 수능시험이 끝나기 바쁘게 끝이다. 등교시간 10분만 늦어도 운동장을 몇 바퀴씩 돌던 교칙이 10시가 넘어서야 나타나는 학생도 있고, 신발도 교칙이 정한 단화나 운동화가 아니고 슬리퍼를 끌고 오는 아이들도 있다.

 

귀밑 몇Cm에서 1~2Cm만 길어도 가위질을 당하던 두발이 염색까지 하고 나타나도 그만이다. 신분은 학생이지만 교칙을 적용 받지 않는 고3학생들은 그런 교칙을 교육적이라고 생각할까?

 

순종이 미덕이던 시대는 지났다. 복종만이 살아남는 수단이 되었던 군사문화는 바꿔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라고 할 줄 아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 비판이 허용되지 못하고 순종하는 학생이 모범생이 되는 가치관으로는 민주시민을 키울 수 없다.

 

이중인격자로 키우는 교문지도가 아직도 교육적이라고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라! 남의 명찰을 달고 선생님을 속이는 학생과 정직하게 명찰을 달지 못해 벌점을 받은 학생 주 누가 더 도덕적인가를....

 

-이미지 출처 : 다음 겸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