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의 숨통 조이는 사회 언제 그치나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 10조다.
또 헌법 제 34조는 "①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②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③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④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 ⑤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⑥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라고 명시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헌법 제 10조와 34조가 실현되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가.
■ 민주공화국에서 주인으로 살기
‘옛말에 과부 심정은 홀애비가 안다’고 했다. 마르크스가 말한 ‘계급적 관점’이나 ‘톨레랑스 논객’ 홍세화씨의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보다 얼마나 진솔한 표현인가? 계급적 관점을 좀 더 재미있게 풀어낸 얘기는 캐나다의 정치인 토미 더글러스가 쓴 ‘마우스랜드’다. ‘쇠귀에 경읽기’라고 했던가? 자본의 시각에 마취된 민초들은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짝사랑하는 현실이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똑같은 민주주의 국가이면서 어떤 나라는 국민들의 삶의 질이 높고 어떤 나라는 서민들의 삶은 비참하다. 국민소득이 똑같이 높아도 서민들의 삶의 질이 다른 이유는 ‘정치 실패’가 만든 결과다. 그런데 민초들은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거나 ‘못 올라 갈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느니 ‘가난이 ‘팔자 탓’이라는 운명론을 진리로 알고 산다. ‘모르는게 약’이라고 믿고 살면 편하고 좋을까. ‘고양이 쥐생각’하는 이 못 말리는 운명론은 가난한 사람들의 만병통치약이 됐다.
■ 헌법이 아닌 시장논리가 지배하는 세상
시장의 논리가 세상을 풍미하고 있다. 유행이라는 시장논리가 그렇다. ‘키도 크고 잘났으니...’라는 팔자소관은 자신의 삶의 질을 자신의 수준만큼 만들어 가며 사는 운명론자로 만든다. 운명을 개척해 내 삶의 질을 한 차원 높일 수도 있는데.... 그런건 꿈도 꾸지 못하고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물결이 티면 치는대로’ 사는게 운명이라고 믿고 산다. 운명은 순종으로 만들어 지는게 아니라 극복함으로써 바꿀 수 있는데, 민초들은 그렇게 길들여졌고 타협하고 순종하고 체념하고 사는게 ‘살아남는 길’이라고 확신한다.
땀흘려 열심히 일하면 ‘심은대로 거두는...’게 자연의 이치다. 그런데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내가 흘린 땀의 결과를 다른 사람이 가로채 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런 원인을 찾아 내 몫을 찾을 생각은 않고 ‘운명론’으로 체념이라니.... 그 이유는 한마디로 ‘고양이 쥐생각’하는 가치관 때문이다.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는 강자의 횡포를 막아 모두가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데 있다. 그런데 고양이가 쥐를 위한 정치를 하겠는가? 고양이가 잘못한걸 자신의 못 배운 탓, 못난 탓으로 생각하다니...
■ ‘고양이 쥐 생각하는 사회’ 언제 그치나.
운동을 하거나 정치를 하는데는 기준과 원칙이 있어야 한다. 정치나 운동에는 헌법이니 규칙이라는게 있다. 헌법을 어기면 대통령도 탄핵당하고 규칙을 어기면 결과는 무효가 된다. 12살짜리와 2~30대 청년이 달리기를 하면 달리기 전에 승패가 결정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이런 경기를 당연하다고 믿고 달리기 시합에 참여해 결과를 승복하고 사는 사람들이 정상인가?
자본주의라는 시장체제가 등장하면서 겉으로는 평등이니 복지라는 가면을 쓰고 내용은 자본의 논리, 시장의 논리가 진리가 된다. 운동경기에서 ‘코카인’을 복용했다면 결과는 무효다. 그런데 시장의 논리에 마취된 민초들은 출발점 행동이 다른 경기에 순종하고 있다. 휴일이 만들어진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할 때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레째 계속 일하면 죽을 만큼 노동강도가 높아 이를 본 하느님이 불쌍히 여겨 이레 되는 날을 쉬게 했던데서 유래한다.

■ 자본의 논리가 민주주의를 잠식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휴일이라도 자본주의에서 휴일과 옛 이집토 노예들의 휴일과는 개념이 다르다. 휴일이 있어야 소비가 많아지고 소비의 증가는 확대재생산으로 이윤의 증가를 가져오기 때문에 휴일이 필요한 것이다.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무기 생산도 정당화 되는 것이 자본의 논리다. 인간의 노동까지 상품이 되는 자본의 논리, ‘이익이 되는 것이 선(善)’이요 ‘만고불변의 진리’다.
운동과 스포츠의 개념이 어떻게 다른지는 몰라도 땀흘려 건강하게 살기 위해 하는 운동과 홈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를 응원하는 드라마가 된 스포츠와는 개념이 다르다. 드라마가 된 스포츠. 그것도 자본의 광고가 만든 샌드위치맨이 되다니... 스타가 왜 만들어지는지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8백 수십년 전 남송의 유학자 주자네 집에서 지내던 제사 양식이 알파고 시대에도 버젓이 계속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미스코리아니 3S정책이 왜 등장했는지... 초등학생들이 화장을 하지 않으면 왕따 당한다는 이 기막힌 현실은 누가 만든 것인가. ‘이익이 되는 것이 선’이라는 이 만고불변의 진리(?)가 지배하는 세상에는 민초들은 자본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하지 말라.
.....................................................
'정치 > 세상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미국이 정말 대한민국의 우방국이라고 믿어도 될까 (15) | 2025.08.05 |
|---|---|
| 전시작전권(전작권) 포기는 제 2의 을사늑약이다 (31) | 2025.08.03 |
| 모르고 사는게 편하다고요? 정말 그럴까? (16) | 2025.07.11 |
| 우리도 이제 '오염 공화국'의 오명(汚名)을 벗어나야... (18) | 2025.06.16 |
| 자본주의를 왜 악마의 맷돌이라 하는가 (18) | 2025.06.1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