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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관련자료/학교

저의 교단일기를 공개합니다(1)

by 참교육 2012.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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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마산여자상업고등학교에 근무하다 전교조관련으로 해직됐다 5년만인

1994년 울산방어진에 있는 중학교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연고지에 복직이 원칙이지만 전교조 경남지부장을 맡았던 죄(?)로 연고지가 아닌 울산 방어진에 보복성(?)을 복직 발령을 받았다가 그 다음 해 부임한 실업계 학교 이야기입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당시 썼던 교단일기를 여기 2회에 걸쳐 나눠 올립니다.

 

 

 

16년이 지난 얘깁니다.

 

16년 전에 썼던 교단일기를 보면서 ‘이 글을 공개할 것인가?’를 한참 망서렸습니다. 생각 끝에 공개하는 게 옳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사례를 공개함으로써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학교생활을 이해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학교위기의 실체를 알려 교육위기에 대한 담론이 현실문제로 제기됐으면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교육자는 물론 학부모들도 함께 만들어 놓은 이 교실의 참담한 현실을 꺼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여기 내놓습니다.

 

16년 전 교실이 이 지경이었으니 오늘의 교실은 어떤 모양일지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실업계학교의 교실... 노무현대통령 때였던가? 교육혁신위원회 경남지역 간담회자리에서 ‘실업계 학교가 얼마나 심각한지 교실에 한 번 가본 일이 있는가?’라고 질의를 했더니 혁신위원 중의 한 사람이 '실업계학교문제의 심각성은 이미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실업계과목 선생님들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길이 없어 그대로 둘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듣고 아연해했던 일이 있습니다. '선생님들을 위해 죽은 학교를 덮어 둔다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래 교단일기를 보시면 이해가 조금은 되실 것입니다.

 

교 단 일 기(1) ....이게 공부하는 학교인가?

 

1996. 3. 3 (일)

00상고로 전보발령을 받아 첫 출근을 했다.

 

전교조관련으로 해직됐다가 94년 복직했던 울산의 00 중학교에서처럼 왁짜한 교무실분위기와 흡사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100명에 가까운 교사를 두 칸 교실을 튀워 교무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평균 연령이 60이 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세 많은 선생님들도 많았고 70명이 넘는 교무실은 말 그대로 '와글와글'한 그런 곳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교재 연구다, 연수다' 하는 말은 어부성설(語不成說)일 것 같다.

 

뒤에 안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교재 연구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 교재 연구를 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중학교 학급의 하위 5%의 학생들이 모인 곳이니 교재연구를 하는 수고는 안 해도(?) 된다는 것이다.

 

1학년 담임에 3학년 정치경제, 2학년 사회문화, 1학년 국민윤리, 사무 분장은 폐 휴지 수집 처리 담당이라........ 이것이 고등학교 그것도 새로 전입 온 교사가 맡은 업무 분장이다.

 

인문계 학교에서는 담임을 서로 하려고 교장에게 뇌물(?)을 상납한다는데 나이가 오십을 넘은 사람에게 담임을 맡겼다. '평생동안 담임을 맡을 기회가 몇 번 더 있으랴 '싶어서 '조용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야지' 하는 심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필자의 막내 아들(고 3학년) 말로는 실업계 학교에서 담임을 맡으면 파출소에 쫓아다니기 바쁘다던가? 중학교 반 성적의 80-90%가 모인 집단이라면 어련할까, 그러나 저들이 부적응하고 반항하는 대는 상당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들의 세계로 가자. 그리고 내인생의 몇번 밖에 남지 않는 기회를 최선을 다해 달려가자.

첫 출근하는 날 칠원면에서 이00군과, 김00양의 결혼 주례를 봐 주고 정신 없는 하루를 보냈다. 신랑 신부가 7박 8일의 신혼 여행을 간단다. 그것도 호주라던가?

 

대한 통운에 다니는 신랑과 보건소에 근무하는 신부의 수준(경제적 능력이긴 하지만)으로는 좀 무리는 아닐지? 요즘 젊은이들이란 자신에 대해서는 참 너그럽고도 여유롭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서 여행을 다니다 보면 남이 보지 않는 낯선 곳이면 싸구려 식당을 찿는 우리 세대와는 생각부터가 다른가 보다.

 

1994. 4. 6 (토)

 

00고 부임 한달이 되었다. 담임 일 보랴! 폐휴지 분류하여 처리하랴! 보충수업에 교재연구에 정신 없는 나날이다. 천태영-유기정학 중 폭행, 무기정학 받다. 김00-가출

신00-금품 갈취로 파출소에서 연락 옴. 김00, 김00 오늘 가출......

1학년 3반 ! 참 한심하다.

 

"교사가 무능해서 그렇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해 놓고 기가 차서 웃는다.

도대체 이런 학교가 어디 있담?

"공부 못하는 새끼들이 그렇지. 그런 새끼들, 인간 안될 놈은 잘라 버려야 해. 그래야 2학년 담임에게 욕을 먹지 않지."

 

문제아를 보는 교사들의 시각이다.

자르면(?) 그들이 가는 곳이 어디일까?

과연 이들의 타락과 부도덕은 개인의 자질에만 책임이 있는 것인가?

 

4.28일(일)

 

아침에 출근하면 오늘은 또 누가 결석했는가 그것부터 걱정이다.

강00 김00국을 비롯해서 벌써 3명이 퇴학을 당했다.

이름이 자퇴이지 그들은 학교에 복학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아도 틀린 말이 아니다.

김00은 신00의 괴롭힘에 스스로 손을 들고, 이제 신00은 착하고 기가 보드라운 조00을 비롯한 학급의 밥(?)을 대상으로 즐기다가 김00 학생의 얼굴에 칼자국을 내고 경위서를 쓰다 뺑소니를 치고 가출하고 말았다.

 

가출 후 학교 주변을 배회하면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금품을 갈취하고 오락실을 같이 가자고 협박하는 등 참으로 기가 찬 인생을 살고 있다.

부모도 담임도 퇴학 절차만 기다리고 있다.

 

김00, 김00 !

얌전하고 착실하게만 보였던 그들이 어느 날 무단 결석.

가출하여 오락실, 만화방을 전전하다가 남의 아파트 지하실에서 며칠 밤을 자고 돈이 떨어지자 집에 나타나 개선 장군이 되어 그동안 부모님께 졸라도 도저히 사 주지 않던 지갑이며 벨트를 사서 싱글벙글이다.

 

가출 경위서

 

일시 1996년 4월 6일 제1학년 3반 김00

4월 6일 우리는 성안 백화점 앞에서 모이도록 했다.

00이와 00이는 사복을 입고 오고 나는 교복을 입고 왔다.

나는 그날 우리집 식구가 다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가 사복을 갈아 입고 나왔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나서 밖으로 나와 우리는 길을 걸었다.

길을 걷다가 오락실로 들어갔다. 오락실에서 300원을 쓰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합 성동으로 갔다. 합성동에서 진영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진영에 있는 오락실에서 오락 200원을 하고 노래방 300원을 쓰고 당구장에 갔다.

 

당구장에서 나와서 라면을 먹으러 갔다.

우리는 온누리 아파트 지하실에서 잠을 잤다.

 

4월 7일

그 다음날 새벽 5시에 목욕탕(2000원)에 갔다.

우리는 목욕탕에서 잠을 자다가 목욕을 하고 나왔다.목욕을 하고 오락실에 오락 500 원을 하고 라면 1000원을 먹고 나서 당구장에 가서 당구를 쳤다. 당구장에서 텔레비 전을 보고 마산으로 왔다.

 

마산을 와서 합성동에서 걸어 다녔다. 걸어다니다가 주차장 오락실에 가서 600원을 쓰고 만화방에 갔다.

만화책을 5권 빌려 보니까 1000원이 들었다. 만화책을 조금 보다가 나는 잠이 와서 혼자 조금 잤다. 자다가 일어나서 만화책을 다보고 나왔다.

 

그리고 합성동을 돌아다니다가 보니 배가 고파서 라면(1000원)을 먹으러 갔다.

그리고 차가 끊어지기 전에 진영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진영으로 와서 다시 아파 트 지하실에서 잠을 잤다.

 

4월 8일

 

아침에 일어나서 할 짓도 없어서 그냥 이런 저런 이야기나 하고 시간을 보냈다.

4월 9일

아침에 일어나서 라면(1000원)을 사먹고 오락실로 갔다. 오락실에서 확실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1500원을 쓴 것 갔다. 오락실을 갔다가 나와서 노래방에 갔다. 나는 노 래방비 3000원을 내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나왔다.

 

우리는 나와서 슈퍼마캩에 가서 우유(300원)와 과자(200원)을 사들고 지하실로 가 서 우유와 빵과 과자를 먹고 잠을 잤다.

 

4월 10일

이제는 돈도 다 떨어지고 해서 아침밥은 간단히 빵과 우유를 사먹고 마산으로 넘어 왔다. 그래서 일단은 합성동에서 버스를 타고 양덕동으로 와서 오락실에서 오락

(2000원)을 하고 있는데 친구가 왔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한테 끌려 집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 하루 이틀 등교 후 이제는 부모와 숨박꼭질을 하면서 애를 태운다.

 

빌고 달래고, 선생이 주책 없이(?) 저희 집에 찾아가 사정을 해 보기도 했지만 잠시 둘이서 의논하고 내일부터 학교 다닐 것을 의논하겠다는 말을 믿고 기다렸더니 그 길로 뺑소니 치고 담임은 닭 쫒던 개 지붕 처다 보기로 헛다리 짚고(?) 되돌아오기도 하고......

 

납치극(?)에 온 식구 밤잠 설치고...

1학년 9반 담임 선생님이 폭력 문제를 인터뷰 하겠다는 K, B, S P,D가 있다고 우리반 학생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에 중학교에 입학했다가 학교 폭력에 희생자가 되어 학교를 포기하고 검정 고시로 입학한 우리반 급장을 소개하기로 했다.

 

그 부모님은 슈퍼마켙을 운영하면서 입학 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지극 정성으로 등하교를 시키고 도시락을 가져오는 등 지극한 부성애에 감동하고 있던 차에 그들을 소개하기로 하고 의향을 타진 했드니 이제 겨우 그 악몽을 잊으려 하니 다시 꺼내 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씨 착하고 여자 같이 얌전한 조광준 학생을 대타로 데리고 가기로 하고 방송국에 갔다 왔는데, 일은 그날 저녁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12시 반이 됐을 때, 조00의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방송국에 출연해 학교 폭력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방해하려는 폭력배에 납치를 당했는지 00이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다는 것이다.

00이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남의 집에서 자고 오거나 문제를 일으킨 일이 없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그런 일을 저질렀으니 책임지라는 투였다.

 

밤새도록 온 식구가 잠도 재대로 못 자고 아침도 거르고 학교에 갔다.

등교하는 학생마다 00이를 봤느냐 묻기도 하고 동분서주, 교실에 왔다 교무실에 왔다가 좌불안석으로 헤매다 최00와 2반 학생이 00이를 보고 찾아오는 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것은 8명이 결석한 교실을 멍청하게 지켜 보다 못해 수업을 2시간 마치고 나왔을 때의 일이다.

00이 아버지가 옆에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빰부터 올려붙이고는 사연을 들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문제는 00이가 아니고 00이 아버지였다.

 

집에 조금만 늦게 들어오면 밧다를 치는 아버지의 폭력에 놀다 늦은 00이는 겁을 먹고 남의 아파트 계단에서 쭈그려 자고 학교 앞에 서성이다 친구에게 목격되어 끌려 온 것이다.

 

1996 5. 1

 

지난 주에는 김0이가 가출을 했다.

하루도 집에 늦게 돌아 온 일이 없는 아이인데 신00이 부르러 왔다가 데려다 주러 나간 후 행방 불명 됐다는 것이다.

경찰서에 행방 불명 신고를 하고 며칠을 밥도 먹지 못하고 잠도 못 잤다며 부부가 학교에 왔다.

 

학교 생활에서 전혀 문제가 없던 아이가 왠일일까

5일 후 어이없게도 중국 집에서 짜장면을 배달하고 고생고생 하다가 몸살이 나서 누워 있다가 집으로 연락이 온 것이다.

김00과 김00의 어머니가 아들의 손을 잡고 학교에 왔다.

자퇴를 시키기 위해서이다.

자퇴를 시키는 이유는 올해는 저희들 뜻(?)대로 놀다가 내년에 반성이나 후회를 할때 재 입학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상 자퇴 학생의 경우 거의 90%이상은 고등학교의 진학이 끝이 난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러한 00이나 00이의 심리적인 면을 고려하여 명퇴를 시키겠다고 윽박 질렀다. 그러나 끝내 그들은 학교에 다닐 의사를 포기하고 돌아갔다.

 

교사의 역량의 한계를 느끼면서 눈물을 흘리는 부모들의 아픔을 헤아려 보았다.

화가난 나는 돌아가는 그들의 뒤통수에다 큰 소리를 쳤다

"야 이 나쁜 놈 00들아!

너희놈들이 어른이 되어 새끼들을 키울때 너희들이 심은 씨앗을 거두지 않을 것 같으냐?"

나의 목소리만 공허하게 되돌아 왔다.

 

5.2 (금)

 

신00이 구속됐단다.

금품 갈취에 죄질이 나쁜 학생 4명이 함께....

내 기분이 이런데 부모의 심정는 어떨까?

시험을 끝내고 극장에 갔다. 영화 제목은 화이널 디시젼(Final decision)이란다.

이 영화를 담당 계원이 사전 감상하고 교육적인 차원에서 담당 교사에게 안내나 홍보를 한일이 없다.

 

그냥 며칠 전 교무실 흑판에 시험 마지막날 영화 관람."제목은 화이널 디시젼. 연흥 극장. 관람료 2000원, 각 담임 선생님 많은 협조 바랍니다."

그것이 전부다. 담임 선생님은 학생들이 대부분 영화를 보지 않고 집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거듭 강조하지만 학생들은 그런 수준 낮은(?) 영화 관람에는 별 흥미가 없고 그들은 벌써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일찍 도망가기에 급급이다.

 

내용은 비행기 납치 테러범이 알라 신을 섬기는 아랍인이고 비행기 승객을 구하는 용감한 천사는 미국인 군인이다.

아랍인이 테러를 할 수 밖에 없는 배경을 무시한채 승객을 죽이기도 하고 미국의 대통령을 협박하는 잔인한 인물로 등장하고 죽을 각오를 한 거룩한(?) 구출 작전은 끝내 성공하고 납치범은 일망 타진 한다는 내용이다.

 

영화 관람이라는 교육은 이렇다.

학생을 인솔한 교사는 적당히 영화를 한편 보고 극장이 주는 인솔비로 막걸리 한잔씩을

걸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면 끝이다.

이튿날 학생들에게 영화 내용에 대한 지도를 하는 교사는 거의 없다. 설마 있다고 하드라도 그 영화에 대한 올바른 관점에서 평론할 수 있는 시각이 된 교사는 흔치 않는 것이다.

영화 관람이란 이름의 시청각 교육은 교육이 아닌 교육으로 수십년 동안 관행으로 실시되면서 문제제기를 한 교사도 없고 교장이나 교감 또한 관심 밖의 일이다.

 

청소년이 보아도 좋은 내용인지 사전에 충분한 지도 교사의 검토도 없이 이루어지 시청각 교육이 이제 교육적인 차원에서 검토되고 지도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

왜냐하면 폭력물과 음란 물을 비롯한 상업주의 이데올로기가 내포된 갖 종류의 영상 매체가 범람하고 이에 대한 청소년들의 무방비 상태에서 오는 피해 또한 엄청난 것이다.

 

영화뿐만 아니라 범람하는 V, T, R. 그리고 각종 T, V의 드라마 또한 순수한 청소년들 앞에 무방비 상태로 침투하여 청소년들을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나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의 내용에 대한 교육적인 지도는 가정이나 학교교육을 통하여 의도적으로 지도를 시도한 일이 없다.

 

"학교에서 열등생이 사회에서 우등생" 이라는 비아양은 학교 교육이 원론 만 가르치고 현실을 가르치지 않았던 교육의 한계성을 이제는 교실 개혁의 차원에서 적절하게 지도를 시도해야 할 단계에 왔다고 생각된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의 내용이 폭력성이나 음란성을 담고 있는데 대하여 가정이나 학교가 비판의식이 부족한 청소년들에게 무분별하게 감각적으로 수용하게 하는 데서 오는 비교육적인 심각성에 대하여 검토하고 분석하여 교육적인 차원에서 배려되어야 한다.

현상과 본질은 다르다.

 

문제는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현상이 본질의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칠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주객이 전도 된 문제가 너무나 많다.

 

세상을 경험한 사람들은 진실과 허위에 대하여 식별할 수있는 분별력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순수한 청소년들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괴물들에 대하여 신선하고 호기심에 찬 눈으로 그들과 만나 영향을 받고 나름대로 가치관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5. 4일(토)

임00, 김00 풍진.

00 병결, 신00 구속, 김00, 김00 자퇴서 처리 대기 중으로 장기 결석. 김0 행방 불명으로 실종 신고 중. 52명 중 7명 결석.

1996. 5. 11.

5월 6일 신00, 김00, 김00 자퇴 처리

 

00이가 구속된 다음 날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구속된 00이가 직업란에 무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재학 증명서를 떼오면 구속 적부심을 신청하겠다는 것이다.

내가 재빨리 자퇴서를 처리한 것은 00이가 명퇴를 받으면 후일 복학을 못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서둘러 처리한 것이었는데 일이 꼬인 것이다.

 

5월 7일 00이 엄마가 자퇴를 하기 위해 도장을 가지고 학교에 와서 울먹였다.

아들의 친구를 보는 엄마의 마음이 어떨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며칠간 말미를 줄테니 다시 설득해 보라고 얘기했더니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란 인사를 열 두번도 더하고 돌아갔다.

 

월요일0날 전화가 와서 자퇴 처리를 하란다.

아들과 얼마만한 '신경전을 벌였을까' '그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저렇게 학교를 가지 않으려는 이유를 아들의 도덕성에서 찾을 것이 아닌가?

온갖 저질 수입 문화와 상업주의 텔레비전의 저질문화 등 아들이 비판의식 없이 수용한 문화의 희생자임을 모른다.

 

이튿날은 결석이 아무도 없는 기록을 세운다고 기대를 하고 학교에 갔다.

그러나 00이가 또 결석을 했다.

집에 전화를 했더니 학교에 갔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 아이들을 어쩌라 말인가? 참으로 대책이 없는 일이다.

저녁에 다시 전화를 했더니 학교에 간다고 부모를 속이고 놀다가 집에 돌아와 있었다.

전화통에 대고 싫건 욕을 해 댔다.

 

전화를 끊었더니 자기 엄마가 전화를 해서 저녁에 식사라도 같이 하잔다.

교사의 인격은 부모의 그릇된 사랑의 표현으로 또 한번 난도질을 당한다.

월요일 날 꼭 학교에 데리고 갈테니 용서해 달라는 것이다.

 

성이 나서 맘대로 하라고 하고 끊었더니 이튿날 아들을 데리고 봉투를 들고 왔다.

잘 봐 달라는 표현이 이런 식이라면 누구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성을 내어 봉투를 되돌려 주고 0를 잘 타이를 테니 가시라고 해도 복도에서 서성이다가 교실에 갔다 오니 돌아가고 없었다.

 

내 아들이 다른 아이들 보다 특별 대접을 받기를 바라는 모정이 나쁘지만 않다고 하드라도 물질로 특혜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은 아무리 좋게 이야기해도 건강한 생각은 아니다.

그 보다도 선의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물질을 요구하는 부담으로 받아 들여졌다면 나의 행동에는 문제가 없었는지 반성해 봐야 할 문제다.

 

1996. 5. 13

 

3학년 5반 교실에 수업을 들어갔다.

정치 경제 시간에는 나름대로 학생들이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그런 대로 자부심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5분이 지나도 분위기는 가라앉지 않고 계속 잡담과 엎드려 자는 학생이 3분의 일이나 되었다.

 

이때 화장실에 보내 달라고 나온 학생의 주머니에서 담배가 나왔다.

"내가 선량한 학생을 문제 학생으로 본다면 내가 죄를 짓는 것이다."

그런 말을 하고 주머니를 뒤져보니 아니나 다를까 담배와 라이터가 나왔다.

 

화장실에 가는 것이 아니라 담배를 피우러 가는 것이다.

담배를 압수하고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지난 시간에 담임에게 이야기하고 자리를 바꾸라고 이야기 해 둔 두 사람이 계속하여 잡담으로 수업을 방해(?) 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불러내어 등짝을 두대씩 갈기고 수업을 하려다 고개를 쳐다보니 수업 시간 마다 단골로 자고 있는 방송반장 김00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이성을 잃었다.

몇 대를 갈기고 앞에 앉은 문제아(?)의 책상을 발로 차는 순간 그 학생이 교실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참으로 황당하고 어이없는 허탈감을 느끼며 수업을 중단하고 교실 밖으로 나오는 순간 30년 교직 생활에서 처음으로 참담함을 느꼈다.

나중에 교무실에 불러 "야 ! 나는 두 달 반이나 참았는데 너는 한 순간도 못 참느냐?"하고 넘어 갔다.

학생과에 넘겼을 때 불이익을 당하는 모습을 생각하고 교권이란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에게 관용이란 것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학원 폭력 그 끈질긴 뿌리여!

 

내일 덕유 연수원에 입소관계로 오전 수업을 마치고 종례를 하고 교무실로 오니 김00 학생이 따라와 "선생님 저 내일 연수원에 못 가겠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이유는 "짜증이 나서 그렇다는 것이다."

힘센(?) 학생이 도시락을 사 오라고 한다는 것이다.

약한 학생(그들의 표현은 '밥')들은 그렇게 금품 갈취(그들은 '빌린다'고 하지만)를 비롯한 온갖 방법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더구나 놀란 것은 김00과 김00이 얘들의 괴롭힘에 이기지 못하고 자퇴를 했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담임은 허수아비가 아니었는가?

 

말할 수 없는 자책과 배신감에 그들이 곁에 있다면 죽지 않을 정도로 두들겨 주고 싶은 심정이다.

화가 풀리지 않아 집에 돌아와 그들의 부모에게 화풀이를 했다.

며칠 후엔 또 봉투를 들고 찾아오지 않을까 몰라.

급장의 자퇴원 사건

 

1996년 5월 일

 

급장이 찾아와 면담을 하자고 한다.

5월 일 수학 시간에 수학 선생님에게 "급장이란 놈이 이것도 못해 !"

하면서 못이 박힌 판자 막대로 몆 대 맞았단다.

 

자존심이 상한 대다 옛날 급우에게 맞은 악몽이 되살아나 가슴이 뛰어 학교를 다닐 수 없단다. 혼자서 검정 고시 준비를 하여 대학을 다니겠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달래고 ..담임과 서너 차례 면담을 하고 주변에 계시는 선생님들이 달래고 법석을 떨었다.

 

고집은 끝내 꺾이지 않고 학교

를 포기하겠다는 힘 겨루기가 부자간에 자존심을 놓고 겨루다 열흘이 지난 6월 9일에야 겨우 아들의 판정패로 끝났다.

3일 후 다시 찾아 온 급장이 "선생님 양호실에 누워야겠습니다."

깜짝 놀라 왜냐고 물었더니 " 수학 선생님은 저의 인사도 받지 않고 수학 시간에 다시 무안을 준다"는 것이다.

 

고심 끝에 수학 선생님과 면담을 하고 '교권의 문제냐 무관심으로 돌릴 것인가' 고민하다 자조 섞인 웃음으로 이야기를 끝냈다.

15,000 - 20,000의 금품 횡령의 내용

 

- 천방지축

5월 일 차00이 급장과 함께 찾아와 "선생님 우리 반 최00가 저의 전화카드를 빌려가서 주지 않습니다. 좀 찾아 주십시오" 하는 것이었다.

평소 늘 "남의 피해를 주는 어떤 행동도 하지 말라고 밥먹듯이 타일렀는데 어찌 이런 일이......."

 

최00 학생을 불러 남에게 빌린 어떤 종류의 금품이나 가해를 적어라고 몰아 부쳤다

 

경 위 서

 

제 1학년 3반 46번

성명 : 최 00

1. 일시 : 1996. 6. 3.

2. 장소

3. 내용 : 돈은 빌린 날짜는 잘 모르겠습니다. 돈을 빌린 아이들은 00, 00,000, 00, 그리고 잘 기억이 안 납니다. 그리고 벨트를 바꾸었습니다. 이름은 잘 모릅니다. 돈을 빌리고 벨트를 바꾼 이유는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잘 모르지만 돈을 빌린 아이들 이름을 잘 모르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돈은 대강 1,5000원-20,000원 정도인데 확실히 잘 모르겠습니다.

옷- 00, 티를 3일 빌리고 내 티와 바지를 주었다.

 

지갑-이00이 지갑과 내지갑을 바꾸었다.

밸트-송00 벨트와 내 벨트를 바꾸었다.

카드- 00이 한테서 토요일 전화카드를 빌리고, 00이 한테도 빌렸다.

톡력-지난 토요일 김00이르 때리고 00이하고 장난을 치고 있는데, 차00이가 모르고 내 입을 쳐서 00의 얼굴 등을 때렸다.

채00-수련회때 맞고 학교로 와서 내가 웃으면서 말을 건네니 좀 건방져서 욕을 하고 겁을 주었다.

 

이00-축구 시간에 축구를 하는데 혼자 공을 차고 해서 처음에 웃고 말았으나, 내가 패스를 하라고 하니까 들은 척도 안 해서 그냥 얼굴을 때렸다.

권00-장소 미상, 얼굴을 2대 내지 1대 때렸다.

홍00-청소시간에 청소를 안 해서 때렸다.

 

권00-장난으로 때림

김00-나를 쳐다 봐서 얼굴을 때림

정00, 권00이 하고 싸움을 할 때 내가 00를 때림.

현금-라00-2,500, 김00-2,000, 김00-100, 김00-1,000, 김00-1,000,

김00-? 김00-1,500, 이00-500, 이00-1,000, 이001;000,

정00-200, 조00-2,000, 이00-?, 김00-?, 김00-?, 차00-2,000,

추00-1,000, 송00-2,000, 이00-?, 김00-?, 박00-?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렇게 强調하고 있을 동안 최00는 선생님의 이야기는 한쪽 귀로 들어 넘기고 제 하고 싶은 일 다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손도 대지 못하고 어머니를 불러 경위서를 보여드렸더니 어머니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학교에 오시면서 가져 온 음료수를 선생님들에게 일부 나눠 드리고 몇 개 남은 것을 뒷자리에 그냥 두고 이튿날 출근하여 남은 몆 개를 다른 선생님들에게 나눠 드리다 봉투 한 개가 튀어 나왔다

 

10만원이 든 봉투다.

어쩌자는 것인가? 이튿날 최00를 불러 지도과에 넘겨 징계를 의뢰했다.

7일간의 유기 정학이 떨어 졌다.

봉투를 돌려주고 부모와 이 학생의 장래에 대하여 진지하게 논의할 시간을 만들어야겠다.

00 어머니의 '비뚤어진 자식 사랑'

 

지독하게 학교 다니기 싫어하는 송00는 하루가 멀다 않고 등교 도중에 오락실이나 친구 집에서 지각이나 무단결석을 하기 일 수였다.

성이나 집에다 잔소리 같은 전화를 자주 했다.

그것이 어머니에게는 무엇을(?) 바라는 담임의 성화로 보였는가 보다.

 

무단결석을 3일이나 하고 학교에 데리고 온 어머니는 예외 없이 음료수를 들고 왔고 성이 난 나는 아이를 데려 가라고 짜증을 부렸고, 수업에 들어갔다 나온 나는 서랍을 열다가 봉투를 발견하고 2십만원이나 든 봉투를 확인하고 다시 전화로 '그럴수가 있느냐'라고 항의하고

10여일이 그대로 돌려 줄 기회가 없어 그대로 지났다.

 

그 후 공납금과 보충 수업비를 내지 못해 독촉을 하는 과정에서 2만 1천1백원만 가져오면 공납금을 주겠다고 했더니 그 돈을 가져 온 것이다.

서무실에서 공납금을 맞춰주고 영수증을 찾아 00에게 주면서 어머니에게 "꼭 전해라" 는 말을 잊지 않았다.

 

문제를 해결하고 퇴근 하는 그날의 발걸음은 훨씬 가벼웠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우리 교육이 어쩌다 이지경이 됐는지 참으로 암담한 생각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여름 방학이 지나고 2학기 가 되어서 00이는 다시 예의 그 농땡이 기질이 재발했는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친구와 어울려 가출을 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내용을 알아보니 어머니가 자기 아들 통장을 만들어 주고 그 통장으로 스쿨 뱅킹 구좌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 구좌에 있는 돈을 챙겨 친구와 같이 가출하여 신나게 하고 싶은 일, 갖고 싶은 것을 사고 다녔던 것이다.

 

학교 친구를 통하여 겨우 겨우 찾아 놓고 학교를 다니지 않겠다는 것을 설득 설득을 하여 이틀 동안 학교에 나왔는데 상업계산 시험을 친다고 (상업계산 선생님이 학기초에 호랑이를(?) 잡았단다.) 결석을 하고 말았다.

 

이주일 동안 학교 간다고 가방을 들고 노래방이며 비디오방으로 전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훈이 엄마와 약속을 하고 시내 다방에서 만났다.

담임에게 면목이 없어 하는 것과 학교에 대한 공포를 해소 해 줘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이튿날부터 학교에 나왔다.

 

얼마 동안 또 조용히 다닐지 지켜 볼 일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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